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컬러풀 Dec 09. 2016

아이를 변화 시키는 믿음

일 년 가까이 상담을 지속한 아이가 있었다.

부모의 손에 끌려온 아이는 상담의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했고 당연히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호하게 상담의 끈을 놓지도 못했다. 아이에게는 이별과 상실에 대한 불안이 있었고 상담관계에서도 끝을 두려워했다.


상담의 주체인 아이가 마음을 먹지 않으니 경과는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속내를 잘 드러내지도 않았고, 종종 진전이 있다가도 금세 되돌아가기 일쑤였다. 상담 일정을 잡아 놓고 갑자기 연락이 안되거나 당일에 취소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나는 고민했다. 분명 상담이 필요한 아이였지만 이대로는 의미있는 결과를 얻기가 힘들었다. 아이와의 몇 차례 대화 끝에 잠시 상담을 멈추고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단, 다시 상담을 시작할 때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올 것이 아니라 진짜 자기 의지로 오기를 권고했다.




한 달을 기다렸지만 아이는 여전히 '모르겠다'고 답했다. 나는 한 달을 더 기다리기로 했다. 아이가 상담을 하던 시간에는 다른 상담을 잡지 않고 비워뒀다. 아이가 '이쯤이면 이 선생님도 내 손을 놔버리겠지?' 라고 생각할 때까지 아이가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남겨두는 것이 이 아이에게 치료적인 의미가 될 것 같았다.


그 사이 아이의 어머니는 발을 동동 굴렀다. 이대로 상담이 종결되고 아이의 일탈행동이 더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억지로 상담에 끌려와봐야 자기 의지가 없으면 변화도 없다. 물론 상담 초기에 동기강화를 시도하지만 거기도 한계가 있다.


두 달이 지날 무렵 의향을 묻자 아이가 상담에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주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멋쩍은 듯 웃었다. 두 달 간 아이가 지나온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새롭게 시작되는 상담에 대한 의지가 궁금했다.

고맙게도 아이는 자기 의지로 상담에 왔다고 했다. 전에 없이 미래에 대한 걱정을 했고, 충동적인 스스로에 대해 변화 필요성을 느꼈다. 기쁜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새로운 상담의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잡았다. 기대감에 마음이 들떴다.


그러나 부푼 기대는 고작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한 주가 지난 금요일, 상담 한 시간 전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는 어제 학원을 빠졌다며 상담을 취소하고 학원에 한 시간 일찍 가겠다고 했다. 아이가 어제 학원에 빠진 것도, 오늘 상담을 취소하는 것도 내게는 패턴화된 충동성으로 보였다.

특별한 이유 없이 상담을 취소하면서 학원에 간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아이의 말이 의심스러웠다.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며 결정을 만류했지만 결국 아이는 오지 않았다. 기대한만큼 아쉬웠고, 이제는 나도 흔들렸다.


그러나 아이에 대한 실망감이 이내 자기 반성으로 이어졌다. 아이는 오지 않을 수도 있는건데, 아이에 대한 나의 기대가 무너졌다고 아이에게 실망감을 전달한 스스로에게 아쉬움이 느껴졌다. 아이의 어머니께 확인해보니 아이는 이 날 실제로 학원에 일찍 갔다고 한다. 아이를 의심한 것이 미안했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고 다시 아이를 만났다. 아이에게 나의 경험을 전달했다. 이해가 안돼 의심스럽고 안타까웠던 마음, 그리고 이어진 반성과 미안함까지. 내 이야기를 듣고 아이가 말했다. 자기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 같다고. 자기를 믿고 기다려준 선생님의 신뢰를 그동안 자기가 무너뜨린 것 같다고.


아이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종종 놀라운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아이는 지난 주 학원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불안을 느꼈다고 했다. 상담을 취소하고라도 빨리 가야만 학원 선생님과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지 않고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던 모양이었다. 그 날도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높아졌던 것이다.


덤덤히 자기 이야기를 하는 아이의 성숙함에 놀랐고, 의심을 품은 스스로에게는 더욱 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미안해 할 수만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사과를 건넨 나는 아이의 변화에 대한 감격스러움을 나눴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다시 신뢰를 쌓아가보자 마음을 모았다.


그 날 이후 아이는 약속을 지키려 애썼고, 나도 있는 그대로 아이를 믿으려 노력했다. 무엇이 무엇을 바꾸게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우리는 변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신뢰가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 번째 부모교육(feat. 현대백화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