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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Oct 06. 2020

네?! e 학습터를 하면 파충류 뇌가 된다굽쇼?!

코로나 우울증도 서러운데 말입니다.

 아이를 재우려고 씻고 나왔는데 먼저 씻고 침대에 있던 아이가 눈이 벌게지도록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고 있다. 평소 잘 울지 않는 아이다. 태어날 때부터 잘 울지 않았다. 산후조리원에서 다른 아가들은 다 우는데 우리 아이만 울지 않아 남편과 둘이 걱정을 했더랬다. 아이 백일 떡을 옆집에 갖다 드리자 옆집 할머니는 어째 밤낮으로 애 울음소리 한번 들리지 않았는데 벌써 백일이냐며 신기해하셨다. 그만큼 아이는 울지 않았다. ‘울지 않는 아이 문제’라는 검색어로 인터넷을 한참 찾아보기도 했다. 기질적으로 울지 않거나 울자마자 양육자가 문제를 해결해주어 더 이상 울 필요가 없으면 울지 않는다고 한다. 하긴 아이가 울 기미만 보이면 바로 문제를 찾아 해결하려고 참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 아이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고 있더니 엄마를 보자 서러움에 북받쳐 아예 대성통곡을 한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엄마, 나는 파충류 뇌가 되고 싶지 않아. 엉엉.”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일까? 이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말인가! 그야말로 황당 그 자체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왜 파충류 뇌가 되니?”

“내일부터 또 줌에서 화상수업이랑 e학습터 해야 하잖아!”

“그런데 그게 파충류 뇌랑 무슨 상관이야?”

“아이패드 많이 보면 파충류 뇌가 된다고 했단 말이야! 엉엉.”

“그건 또 어디서 들은 거야?”

“미래수업에서. 엉엉.”

“미래수업?”

“응. 미래수업에서 그랬잖아. 디지털 기기 많이 보는 알파세대는 파충류 뇌가 된다고. 내가 e 학습터랑 줌이랑 하기도 싫은데 얼마나 참고 했는데 파충류 뇌가 돼야 해? 10살이 제일 심하다고 그랬단 말이야. 엉엉. 억울해!”


 ‘아이고, 이 상상초월 알파세대야! 화상 수업과 e학습터 하기 싫다는 너의 핑계는 날이 갈수록 참신하고 리얼하구나!’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왔지만, 우는 아이를 품에 안고 토닥거리다 보니 웃을 일이 아니다.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서도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아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날까.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아니겠는가!



저 아저씨의 말이 아이의 귀에는 “아이패드 하면 파충류 된다!” 는 협박으로 들렸을까?


 아이는 e 학습터도 줌으로 하는 화상수업도 하기 싫어 몸을 베베 꼬며 억지로 참고  참아가 100% 참석과 시청을 기록했다. 그런데  결과 파충류 뇌가 된다니! 아이 입장에서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로 들렸을 법도 하다. 하늘이 무너진 아이에게 솟아날 구멍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은  엄마 숙제다. 아이고, 아들아! 엄마도 울고 싶다.


 코로나로 학교를 못 가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나도 일을 쉬면서 처음에는 차라리 좋았다.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이 없었으니 이 참에 아이랑 못해본 것을 실컷 해보자며 책도 읽어주고, 보드 게임도 하고, 요리도 하고, 과학 실험도 하고, 동화책도 만들고, 일기 쓰기도 하고, 마스크를 쓰고 동네 공원에 나가 자전거도 탔다.


 해볼 만한 것을 다 해보자 모두 시들해졌다. 일 년 동안 제대로 벌지 못해 대출금을 하나도 갚지 못했고, 갈수록 빈 통장은 불안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니 체중은 6kg이나 불었다. 이 와중에도 누군가는 아파트 값이 올라 수억을 벌었다는데 나는 당장 살 곳을 걱정해야 했다. 틈틈이 쓰던 브런치에서 공모전 탈락 소식까지 들은 후에는 ‘그래, 내가 무슨 글이냐. 나보다 잘 쓰는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내가 언감생심 뭘 바란 거냐. 이제 와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버린 꿈을 또 주워 들고 청승을 떠냐. 그만 두자.’ 싶은 마음도 들었다. 우울했다. 갈수록 늙어가는 몸뚱이의 다양한 신호까지 겹쳐 우울한 기분을 더 진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거의 2개월을 폐인처럼 지냈다.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고 기억도 나지 않을 시답잖은 것들만 찾아보며 킥킥거렸다. 그동안 아이는 방치되었다. 밥만 해주면 알아서 수업을 듣고, 숙제를 하고, 문제집을 풀었다. 자기 할 일을 다 한 후에는 아이도 유튜브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문득 이래도 되나 싶어 아이에게 푸념하듯 말했다.


“아휴, 엄마나 너나 둘 다 아이패드를 너무 많이 보는 거 같아. 이러다가 둘 다 중독되겠어. 정말 걱정이다. 걱정.”


그렇게 나보다 성실했던 아이에게 푸념을 던지고 씻고 나왔더니, 아이는 눈이 벌게지도록 울고 있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봤던 미래수업이라는 프로그램의 영상이 떠올랐나 보다. 우는 아이를 품에 안고 도닥도닥 달래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가 일 년 내내 아이패드만 본 건 아니잖아. 책도 읽고, 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어제는 오이무침도 네가 스스로 만들었잖아. 그러니까 파충류 뇌가 되지는 않을 거야. 줌이랑 e학습터도 하는데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건 아니잖아. 앞으로 더 잘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엄마랑 보드 게임 한 판 하고 잘까?”

“아니, 책 읽어 줘.”

“알았어.”


아이에게 세계사 책을 읽어주고 재운 후 다시 그 영상을 찾아보았다.



천만다행. 협박만 한 게 아니라 해결책도 알려준다.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라고 한다. 아이를 파충류 뇌로 만들지 않도록 하고, 성인들은 뇌의 노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란다.

하하하하!!!!!

읽고 토론하고 쓰라니. 그건 내 직업이 아닌가!

참, 감사한 일이다. 내일은 아이에게 보여주며 확실하게 안심시켜야겠다.


“아들! 책 읽고, 토론하고, 감상문 쓰래! 그러면 파충류 뇌 안된대!”


아들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이미 들리는 듯하다.


“그게 뭐야! 숙제만 더 늘었잖아! 나 안 해!”  


하늘이 무너진 아이가 솟아날 구멍을 찾아놨으니 이제 우울증에 빠졌던 내 마음을 달래 주어야겠다.



괜찮다. 괜찮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돈은 벌면 되고,

살은 빼면 되고,

집값이 제 아무리 하늘 높은 줄 모른다 해도 우리 세 식구 발 뻗고 잘 공간은 어떻게든 만들 수 있을 것이며,

진짜로 작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글을 쓰는 건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괜찮다. 괜찮다.

우리는 아직 살아 있고,

실패하더라도 계속 시도하라고 응원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


괜찮다. 괜찮다.

지금 좀 넘어졌더라도 엎어진 김에 잘 쉬었다 가면 된다.

나는 살아있고,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앞으로 또 열심히 살면 된다.






덧>

더불어 브런치를 다시 해야 할 이유도 생겼다! ^^;;

브런치는 돈도 안되고, 당장 진짜 작가를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지만

최소한 뇌의 노화는 막아줄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하핫.

오늘처럼 잠이 안오는 밤에 친구에게 수다떠는 마음으로 꾸준히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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