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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Dec 31. 2020

Mom, open your eyes.

베스 하먼의 인생 게임, <퀸스 갬빗>


엄마!

엄마!!!

나는 엄마가 나의 부름에 답하지 않고 그렇게 가버릴까 봐 늘 불안했어요.


엄마가 가겠다고 선택한 그곳은 최선이던가요?

엄마가 말했지요.

‘대개 사람들이 뭔가 최선이라고 말한다면 최악인 거야. 그런데 이건 정말 최선이야.’

하지만 엄마, 엄마가 최선이라고 말한 엄마의 그 선택도 최악이었어요.

엄마가 그렇게 가버리고 난 뒤 나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곳에서 궁금하던가요?

엄마가 궁금해하실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내가 만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어 편지를 씁니다.


엄마랑 헤어지고 나는 머슈룸 홈 여자 보육원에 갔습니다. 처음 만난 디어도프 원장님은.... 아,  그분은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본다면 훌륭한 분일 거예요. 원장님은 우리가 친구가 될 거라 하셨지만 안타깝게도 친구가 되는 방법은 모르시더라고요. 그분은 나의 슬픔이 가라앉고 나면 기도와 믿음이 나를 들어 올려줄 거라 하셨지만, 나를 들어 올려 준 것은 체스와 안정제였습니다.


보육원에서 내가 친구가 되고 싶었던 사람은 머슈룸의 관리자인 샤이벌 아저씨였습니다. 저에게 체스를 알려주셨지요.

  


음, 뭐, 원하는 만큼 알려주진 않으셨어요. 하나씩, 하나씩, 아저씨는 자신의 마음과 싸워가며 한 발자국씩 가는 법을 알려주셨지만, 저에겐 정말 달콤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답니다. 아저씨에게 5달러를 빌려서 생애 첫 토너먼트에 나갔는데, 빌어먹을. 우승을 하고 나니까 10달러로 갚겠다던 약속은 까맣게 잊고 말았습니다. 왜 아저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그 5달러가 생각나서 500, 5000 달러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지. 아저씨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기분이었답니다.


보육원에서 진짜 친구가 된 사람은 졸린입니다. ‘좆빠는 놈’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길래 인생을 내던지고 사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건 그냥 아픈 마음을 감추는 졸린 버전의 허세였어요. 거친 욕, 담배, 도둑질만으로 졸린을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졸린은 진짜 친구가 무언지 잘 알고 있는 저의 가족이니까요.


운이 좋게도 저는 입양이 되었습니다. 저를 입양한 두 번째 엄마, 앨마 휘틀리입니다. 엄마가 앨마 엄마의 피아노 연주를 들었다면 좋아했을 거예요. 앨마 엄마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는 사람의 마음에 속삭일 줄 안답니다. 양아버지였던 올스턴 휘스턴 씨와 별거를 하고 저를 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엄마가 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며 저와 함께 하셨지요. 엄마는 날 버려서는 안 되는데 버렸지만, 앨마 엄마는 날 버릴 수 있는데 버리지 않았어요.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엄마보다 앨마 엄마가 그리울 때가 더 많아요.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은 정말 최고의 시간이었답니다. 앨마 엄마와 처음 호텔에 가서 내가 침대에 뛰어들 때 앨마 엄마가 행복을 만끽하는 웃음소리는 분명 천국까지 들렸을 겁니다. 엄마에게서 들을 수 없었던 그 싱그럽게 살아있는 웃음소리가 저에게 가장 필요한 엄마의 모습이었어요.

언젠가 우린 다 혼자가 된다는 엄마의 말처럼 난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요. 앨마 엄마가 쓸쓸하게 떠난 후, 빈집으로 돌아와 엄마의 립스틱 자국이 묻은 컵을 보며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앨마 엄마가 그리워지면 엄마의 옷을 입고, 엄마와 처음 마셔 본 깁슨을 마시며 엄마를 추억합니다. 정말 강한 사람은 혼자인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난 두려웠어요. 엄마는 떠나고 나는 두려워하던 상대에게 처절하게 패배했으니까요.



그래도 내 인생에 패배의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아니, 오히려 승리의 기쁨을 누리며 주변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가 더 많았지요. 재미있는 건 엄마가 멍청하다고 했던 남자들이 제 주위에 더 많았답니다. 처음엔 엄마 말대로 나보다 ‘똑똑하지도 않은 것’들이 나를 무시하고 얕잡아보려 했지요. 하지만 체스에서 박살이 난 이후 저를 대하는 눈빛부터 달라지더라고요. 대체로 마음이 찢어져 아파하며 내게 승복하거나 숭배했지요. 어쨌든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은 즐거웠습니다. 유쾌한 쌍둥이 형제 맷과 마이크, 해리 벨틱, 타운스는 나의 적수이자 친구랍니다.   


하지만 특별히 엄마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친구는 바로 베니 와츠입니다.


엄마가 내 옷에 내 이름을 예쁘게 수 놓아주며 했던 말 기억하나요? ‘남자들은 온갖 걸 가르치려 들어. 그렇다고 똑똑하지도 않아. 많은 면에서 멍청하지. 맘껏 가르치라고 해. 실컷 나불대게 두고 넌 네가 생각하는 대로 밀고 나가는 거야.’라고 하셨지요. 정말 그렇게 살려고 했어요. 하지만 베니는 그렇게 두지 않았어요.



엄마는 혼자가 되어야 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 인생을 망치게 두지 말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베니는 달랐어요. 세계 최고인 소련 선수 보르고프와 맞서 싸우려면 팀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함께 해야 한다고 했지요.

그리고 베니의 말이 맞았어요. 나 혼자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나에겐 친구들이 있었지요.



 졸린이 맨 처음 나를 만났을 때 나에게 물어본 건 엄마가 죽기 전 마지막에 한 말이 뭐냐는 거였어요.

엄마, 엄마는 기억하나요? 나는 또렷이 기억해요.


‘Close your eyes!’


하지만, 엄마.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Open your eyes!”


나의 크고 아름다운 눈을 뜨고,

주변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의 웃음을 봅니다.

그들과 함께여서 나는 행복합니다.


엄마의 딸, 베스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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