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추석은 안녕하십니까?
저는 공원에 나와있습니다. 추석 전날은 하루 종일 기름 냄새 맡으면 부지런히 전을 부치고 있어야 할 것만 같았는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니네요.
코로나 때문에 고향에 가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명절 준비로 바쁠 것 같은 추석 전날인데 공원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무척 한가해 보입니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 하늘을 보는 사람, 자는 사람, 아이들과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 공놀이 하는 사람, 연인의 어깨에 기대어 핸드폰을 보는 사람, 흙놀이하는 아이들도 보이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는 사람. 모두 마스크를 끼고 여유롭게 행복을 만끽하는 듯 보입니다.
결혼을 하고 난 후 명절은 늘 노동의 시간이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싶었는데... 생각도 못했던 사건으로 시어머니와 연을 끊겠다고 선언한 후 가장 달라진 것은 명절입니다. 명절 전날 프라이팬 앞에서 전을 부치는 대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앉아있었습니다.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아이 밥도 차려야 하고 못 읽던 책을 읽어도 되련만 어찌 된 일인지 그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멍하니 그냥 앉아만 있었습니다. 남편도 아이도 시가로 가버린 명절 당일은 더 멍해졌습니다.
그 멍한 시간에 무언가에 홀린 듯 컴퓨터를 켜고 ‘시어머니와 연을 끊었다’라는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글이 벌써 꽤 모아졌네요. 그런데 갑자기 또 멍해졌습니다. 왜 그런지 저도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다 말고 그냥 그 멍한 상태로 몇 개월을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포레스트라면 달리기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순간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되는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레스트 검프가 아니네요. 무릎도 나갔고, 요통도 심하고, 멍한 상태라도 계속 챙겨야 하는 아이도 있는 아줌마입니다. 그래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바삐 몸을 움직이며 내가 왜 이런 건지 알아야 했습니다.
왜 이렇게 머리는 멍하고, 일은 손에 하나도 안 잡히고,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심난하고 우울한지 알아야 했습니다. 갱년기인지 코로나 우울증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알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저는 꿈을 잃었습니다. 저를 멍하게 만든 것의 정체는 상실감이었습니다. 작가라는 꿈을 놓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마음속 깊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었나 봅니다. 부끄러움 때문에, 혹은 소심함 때문에 차마 누군가에게 말도 꺼내지 못했던 오랜 꿈을. 그래서 심연 깊은 곳에서 홀로 남겨서 색이 바래버린 꿈을 버려야겠다고. 이젠 너무 늦었으니 그냥 잊어버리자고 생각하며 상실감에 빠졌나 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의 추석은 안녕하신가요?
저의 추석은 안녕하지 못합니다. 저는 꿈을 잃었고, 상실감에 젖어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왜 그런지 몰랐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 더 괴로웠지만, 이제는 알겠습니다. 이제 잃어버린 꿈 대신 새로운 꿈을 찾을 계획입니다. 내년 추석에는 더욱 안녕한 추석을 만들기 위해 저는 오늘 묵묵히 땀 흘리려 합니다.
여러분의 추석도 내내 안녕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