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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Oct 05. 2020

락다운을 돌아보며

런던 외딴방에서 고양이가 이어준 소중한 인연

*이 글은 런던 유학 중인 친구가 페이스북에 친구공개로 영문으로 쓴 것을, 혼자 읽기가 아까워 번역한 것입니다. 아주 약간의 의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9년 9월 굿이너프 칼리지에 도착하여, 나는 1층에 있는 1인실을 배정받았다. 커다란 창문 두 개가 딸린 내 방은 조그만 정원과 맞닿아 있었는데, 햇살은 어쩌다 가끔 비칠듯말듯했다. 지인들의 산발적인 방문은 겉보기에 탐탁찮은 어둡고 조그만 방에 내가 오랜 시간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켰으나, 그래도 나는 런던에서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곳에 만족했다. 지난 3월 중순 영국 전역의 폐쇄조치(lockdown)가 실시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폐쇄란 말 그대로 실내에 자신을 가두는 것을 의미했다. 어디에 있든지 간에, 그건 신체적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리라. 특히 내가 견디기 힘든 점은 폐쇄조치가 갖는 은유적인 감각이었다. 국제 학생, 그러니까 모두 집을 떠나온 사람들로 가득찬 기숙사에 살면서도, 서로 교류할 수 없는 상황은 내게 이해하기 힘든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모두가 함께, 하지만 떨어져서 지낼 것. 그 사실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가운데, 나는 매일 아침 창문을 통해 정원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필경 우울하였을 락다운은 갑작스런 반전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것은 내가 관목 사이로 살금살금 다가오는 조그만 녀석을 발견하면서부터다. 그 녀석이 '타이거릴리(Tigerlily, 참나리) 굿캣'이라는 이름의, 대학 기숙사 1층에 기거하는 것으로 유명한 고양이라는 것을 알아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원래 쥐잡이로, 또 대학원생들의 정신보건을 위해 입양되어 학교에서 지낸지 거의 6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거리낌없이 살아온 고양이마저도 코비드-19의 유해한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녀석을 담당해온 관리인은 강제휴직되었고 원래 기숙사 입구에 놓여 있었던, 타이거릴리가 즐겨찾던 소파는 학생들이 모여들지 못하도록 다른 곳으로 치워졌다. 내 생각으로는 녀석이 우리 집 앞 정원으로 찾아든 것은 새로운 피난처를 탐색하던 와중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녀석의 이름을 소리내 부르면서 내 쪽으로 불러들였다. 내 부름에 응답하듯이, 녀석은 냉큼 달려와 자신의 폭신한 몸통을 창문에 바싹 붙이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가 내 지하 외딴방이 비인간 이웃을 만나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 탈바꿈한 순간이었다. 그날 아침 이후로, 녀석이 정원을 가로질러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꾸준한 일과가 되었다.


열흘 동안 빠짐없이 나를 찾아오던 녀석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발길을 끊었다. 유일한 오프라인 인맥을 갑작스런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남는 시간 대부분을 녀석의 소재를 알아내는 데에 바쳤다. 나는 타이거릴리가 다시 놀러올 수 있도록 녀석이 즐겨찾던 1층 맞이방의 소파를 청소했다. 기숙사 쪽에 공용 공간을 청소해도 되는지 물어보자, 한 직원을 소개받았다. 그이는 팬데믹 기간 중에 치료용 고양이 두 마리를 돌보는 추가적인 책임을 맡을 정도로 사려깊은 사람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와 타이거릴리의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주고받고, 녀석의 (변덕스런) 정서와 신체적 (비만) 상태에 관한 우려를 주고받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나는 교목과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녀석의 변덕에 대한 힌트도 얻을 수 있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녀석의 변덕은 쥐를 잡기 위해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던 고양이적 특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녀석의 변덕스러운 충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녀석이 몇달간 규칙적으로 방문하는 장소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닥터 왓슨을 능가하는 친구 베티의 조력과 내 세심한 관찰에 따르면, 그곳은 바로 어떤 한국인 부부가 사는 아파트였다. 약간의 질투심과, 녀석이 그 부부에게 지속적인 애착을 갖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한 결연한 마음으로, 나는 부부 중 아내 분에게 온라인 채팅을 시도했다. 얼마지 않아 나는 이유를 알아냈다. 아내 분은 겉보기에 거리낄것 없이 지내는 타이거릴리의 연약한 이면을 잘 아는 교내 몇 안 되는 사람으로, 녀석을 사랑으로 - 매저녁 구워낸 유기농 닭가슴살로 - 보살피고 있었던 것.


전혀 기대치 않게, 나의 수사는 락다운의 와중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여러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타이거릴리의 발끝을 따라 녀석이 학교 사람들과 교감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는 부족하나마 우리가 서로 다르지만 의미있는 방식으로 아직 연결되어 있다는, 위로가 되는 확신을 얻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할 법적 의무가 없는 타이거릴리는, 서로 떨어져 지내는 사람들을 함께 묶어주는 전령(messenger)이었다.


돌아보면, 이것들이야말로 락다운 아래 100일 가까이 보내는 와중의 유일하게 분명한 기억들이다. 타이거릴리와의 만남에 잇따른 주변 이웃들과의 연결은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어둠 속에서 전혀 예기치 않게 맞닥뜨린 매일의 작은 기적이자 빛이요, 성냥불"이었다(그녀는 우리처럼 블룸스버리의 주민이었다). 어쩌면 나는 폐쇄조치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을 극복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기다린다. 덧없기에 눈부신 소중한 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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