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밤바람
학기말, 대학원 수업에서 받은 과제를 마무리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다. 보통 뭔가에 몰두할 때에는 "뭐뭐 하느라 여념이 없다"고 표현한다. 근데 그 말은 틀렸다. 잡념이 시도때도 없이 지친 심신으로 저며든다.
특히 지나간 기억들이 시시때때로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곤란한 것은 부끄러운 기억이다. 그때 대체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가 껌딱지처럼 붙어서 바쁜 나를 자꾸만 수치심에 붙들어맨다.
온라인 게임에 빠져서 전화비가 9만원이 나왔던 일, 선거때 데면데면한 지인들에게 전화로 후보 영업을 했던 일, 가장 최근에는 페이스북에 곧후회할 글을 올린 일까지. 갑작스레 떠오른 기억을 대면하면 가슴이 욱신거리고, 얼굴에는 열이 오른다. 안 그래도 앉아만 있느라 답답한 속은 더 무겁다.
부끄러움 때문에 괴롭다가, 조금 시간이 흐르면 혼자 있는데도 숨고 싶어진다. 어디 갈 데도 없는데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진다. 요즘에 부쩍 해외여행 가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드는데 혹시 옛날 기억들 때문일까?
저녁이 되면 좀 진정이 된다. 그래선지 요즘 낮에는 계속 딴짓을 하고 해가 떨어져야 글쓰기를 겨우 시작한다. 밤바람이 불면 그때야 마음에 든 열이 식는 것이다. 칸트처럼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싶은데 21세기형 인간에겐 어려운 일인가보다.
마음이 진정되고 나면 그제서야 지나간 기억들과 거리두기가 된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본다. 지나간 기억에 부끄러워할 수 있지만 그 경험들 위에 지금의 내가 있다. 모든 안타까운 기억과 경험은 옅은 자기 혐오로부터 되살아난다. 작업 스트레스로 생긴 화가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향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본다. 나는 계속해서 성숙해가고 있다. 저만치 떨어진 먼 미래에 나는 사라질 테지만, 그래도 이렇게 씩씩하게 하루를 산다. 그 모습이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