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의 학습능력과 선발을 위한 평가에 대한 생각
아직도 그때 생각이 난다. 2005년 가을, 나는 날짜를 착각해서 6개월 동안 준비했던 서울대 수시 서류 제출을 하지 못했다. 만으로 열일곱, 고3의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선생님들은 황당함과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했다. 나는 누가 속을 파먹은 것처럼 끙끙대며 그 해 가을을 보냈다.
당시에는 아직 대학에 입학사정관 제도라는 것이 없을 시절이다. 나는 이우고등학교라는, 생긴지 얼마 안 된 제도권 대안학교의 1기 학생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다양한 지적 탐구와 사회활동에 관심을 두고 산만하게 살았다. 그해 봄에 서울대 입학처에서 직원이라는 사람들이 둘 다녀갔고, 선생님들은 나를 학교의 첫 서울대 지원자로 염두에 두고 내 생기부를 보여주었다.
이 학생은 정시로는 어렵겠네요, 라고 학교를 방문한 두 명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이 사실은 당시 고3 담임 선생님께서 내게 서울대 수시 지원을 제안하는 자리에서 알려주었다. 그게 그해 이른 봄의 일이었다.
나는 당시에 중앙대나 경희대 정도를 갈 수 있을 정도의 점수 수준이었다. 하지만 시골에서 상경해서 도시형 대안학교로서 첫 발을 내딛은 이우학교의 첫 입학생으로 교사들의 눈에 금세 들었다. 이우학교는 그 무렵까지만 해도 전국 모의고사 평균 1등을 놓치지 않는 서현고가 있던 분당에 세워졌다. 분당은강남권과 연계된 사교육 1번지였고, 학교에는 사회적으로 명망가이면서도 나름의 정치의식을 가진 집안의 아이들이 많았다.
그들 틈에서도 나는 제법 말을 잘했고, 글을 잘 썼고, 다양한 비교과 활동에 참여하면서 리더십과 사회성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었다. 공부도 잘하고 똘똘하고 비판의식도 있는 아이들 틈에서 시골출신의 공무원 집안 자녀가 두각을 드러냈던 것이다. 스토리도 괜찮고, 분명히 나는 잠재력도 있는 아이였다.
문제는 성적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집중해서 공부하는 연습을 별로 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서는, 지금도 그렇지만 공부를 잘하는 것 그러니까 세상에서 공히 성취라고 인정하는 무언갈 추구하는 것보다는 내가 의미있다고 여기는 것을 하는 데에 더 관심이 많았다. 점수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옆에 있는 친구가 나보다 나은 점수를 받는 것을 보면 불쾌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렸다. 학생회를 하고 동아리를 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게 더 재밌었다. (그래서 지금도 쓰고 있다.)
나는 공부는 좀 대충 했지만 교사들 말을 잘 듣고 그들과 관계를 맺을 줄 아는 아이였다. 부분적으로는 아버지가 교사인 탓도 있다. 초등학교때부터 아버지가 소속된 교사 사회를 의식하면서 눈에 띄지 않고 지내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관심 있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그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점 때문에 어떤 교사는 나를 알 수 없는 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이 서울대 수시 준비를 제안했을 때에는 놀라기도 했지만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고 기회였기에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6월 모의평가와 내신 관리에 전보다 더 신경을 썼고, 원래 수능 이후에 준비하는 졸업논문을 여름방학동안 마무리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학교가 문을 연 2003년 여름에 고향을 떠나 학교가 있는 분당으로 왔다. 첫 해에는 입학 동기인 친구네 부모님의 호의로 그 집에서 한 학기, 그 다음해에는 외할머니와 상경한 형과 함께 살았고, 그 해 말 외할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면서 고3 때에는 이모와 살았다. 그때는 무슨 일이 벌어진 지도 몰랐지만 심리적으로 엄청나게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물건을 자주 잃어버렸고, 지키지 못할만큼 많은 시간약속을 해서 친구와 관계가 틀어지기도 했고, 감정기복이 심했다. 그 와중에 학교에 적응을 하고 이런저런 활동을 했다는 것 자체가 지금 돌이켜보면 기이할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 수시 준비를 했는데, 결국 온라인 지원서를 제출하는 날짜와 입시 서류를 우편으로 부치는 날짜를 착각해서 반년간의 노력 혹은 그 이상의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이듬해 나는 재수를 시작했다. 재수학원을 다니는 내내, 이 학생은 정시로는 어렵겠네요'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공부를 했다. 공부에만 집중해야 하고,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고 있으면 강사한테 지적을 당하는 학원의 환경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그 담당자의 말에 대해 '아닌데...' 하는 심심한 반발심이 나를 추동했던 것도 같다. 그때 나는 서울대 입학이 아니라 수능 만점을 목표로 공부를 했다.
나는 부모님께서 마련해주신 전셋집으로 이모와 함께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종로학원에서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공부하는 생활을 딱 10개월 하고 서울대 법대를 지원해도 괜찮을 정도의 수능 성적을 얻었다. 물론 내신이 좋지 않아 배치표상으론 인문대나 사범대에 걸칠 수 있는 정도였다.
그 1년 전 수시를 준비할 때에는 내 관심사와 활동 내용을 바탕으로 사회학과 지원하려고 했다. 재수 수능 성적표를 받아든 나는, 이번에는 여러 이유로 교육학과를 지원하게 되었다. 그 중에는 이우학교와 재수학원 경험에서 비롯된 '학교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나는 서울대 교육학-윤리교육과군에 지원해 07학번 신입생이 되었다.
정시로는 어렵겠다던 학생이 이듬해에 정시로 입학했다. 물론 그 입학담당자는 그 시점의 내 기록을 바탕으로, 나의 잠재성이나 역량이 아니라 성취 수준이 합격선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 뿐이다. 그 사람이 18살 당시의 어린 아이에게 혹은 담임 교사에게 감정을 섞어 유감을 일으킬만한 말을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닐 거다.
이후에 대학원에서 생애주기에 대해 배우고, 특정 시기가 아니라 전생애에 걸친 인간의 학습역량에 대해 공부했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지금의 나와 어린 시절의 나, 그리고 18살 봄의 나와 이듬해 재수학원에서 단련된 19살 가을의 나를 비교해보곤 한다. 나는 시간이 흐르면서 경험, 감정, 지식 측면에서 계속해서 많은 것을 배웠고 어떤 점은 쇠락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더 나은 내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18살의 나는 서울대에 입학하는 데에 필요한 어떤 지점들이 부족했고, 이듬해 가을에는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18살의 나와 19살의 나, 그리고 거의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의 나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내가 바라는 변화를 만들어가는 패턴까지도 거의 유사하다. 재수학원을 다니지 않고 서울대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하더라도 나는 그 이후의 인생경로는 물론 사회적 성취도 유사하게 가져갔을 것이다. 재수학원 1년이라는 괜한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 이후 한동안 성격이 덜 모나게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완전히 보장된 사회가 아니라면, 좋은 교육기관은 입학자들에게 진로선택권을 넓혀주는 사회적인 보상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 결국 지원자들간의 경쟁이 생기고 결과적으로 누가 지금 더 잘하는지를 평가하게 된다. 그렇지만 학교는 실제로 일을 하는 곳에 비하면, 지원자의 현재 역량보다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본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없을 '만약'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만약' 18살의 내가 실수를 하지 않고 서울대 수시 서류를 제출하게 되었다면, 그리고 '만약' 지금의 내가 입학사정관으로 그 학생의 서류통과 여부를 판정할 권한을 갖게 된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말이다. 아마 18살의 나라면 면접과 논술에서는 아슬아슬하게 통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서류는 다른 문제다. 이 아이는 합격선에 걸쳐 있는 것도 아니고, 합격선에서 평균보다 15% 정도는 낮은 정도의 성적표를 갖고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 사회의 입장에서 굳이 한해를 더 들여서 특정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노력을 들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서울대학교라는 이름값은 그 자체로는 여러가지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한 인간의 삶에서 어떤 대학을 들어가는지는 길게 보면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세우는 삶의 이정표이고, 그 와중에 마주하게 되는 그 사람의 고유한 경험들뿐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서울대에 입학한 게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그런 성취에 별로 관심이 없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결국 그렇게 좋은 교육환경과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스스로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던' 나의 실수 덕분이라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런 자가당착적인 실수 없이는 오히려 좋은 기회를 만들기는커녕 추구할 생각조차 못하는 나는 유능한 인간인가 무능한 인간인가.
18살의 나에 대해서, 지금의 나는 여전히 어떤 판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교육학과를 졸업하고서 학교나 입시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두고 살았던 것은 어쩌면 그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