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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찡 Oct 30. 2015

그가 아프다.

03. 간병인이여, 일어나라.

그의 얼굴에 뾰루지 같은 것이 났다. 

적응하기 힘든 스케줄 때문인지, 요즘 얼굴에 무엇이 많이 난다고 투덜댔다.  

평균 체격보다 훨씬 마른 그는 일년 새 살이 계속 빠졌다. 여자친구는 날이갈수록 푸둥푸둥해지는데 말이다.

그도 무리를 많이 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난 뾰루지는 단순히 바이오리듬이 깨져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물집같은 것이 잡히고 상처가 생기더니 목 부분이 둥그렇게 부어올랐다.

그의 이마를 짚어본다. 아니, 열도 나잖아.

 

"어우 야, 너 볼거리 아니냐? 열도 나는데?"


그와 2년 가까이 교제하면서 내가 아프면 아팠지 그는 드물게 앓았다. 기껏해야 감기몸살 정도?

지금은 달랐다.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환자 생활을 오래해보니 - 환자의 감에 의하면-  뭔가 감기몸살 같진 않았다. 주말부터 거슬리는 듯한 아픔을 느낀 그에게 꼭 병원에 가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아니래 자기야- 나 임파선염이래."


휴 다행이다. 임파선염은 그냥 내가 늘상 겪는 지병 중 하나였다. 푹 쉬면 나을테니 약 잘챙겨먹고 쉬라며 

폭풍 잔소리를 했다.  그의 얼굴에 난 빨간 뾰루지도 아닌 상처들이 기분을 찝찝하게 했지만 말이다.


다음 날이 되자 남자친구 얼굴에 난 상처들은 성가시도록 아프게했다. 

관자놀이부터 두피쪽을 지나 입술까지 물집이 잡히고 따끔거리며 그를 짜증나게 했다.

피부과에 가서 연고를 처방받아야겠다며 병원을 찾은 그에게 의사가 하는 말. 

하나님 맙소사, 대상포진이었다.

초기증상이라 연고도 바르고 항바이러스제까지 처방받아 잘 먹고 쉬면 낫는다 그랬다며 날 안심시키려는 그의 목소리가 마음이 저렸다. 걱정 됐다.  난 대상포진이란 녀석이 얼마나 지독하게 아프게 하는 나쁜놈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내 남자친구는 아팠다. 공식적으로.


무서웠다. 그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가장 먼저 내가 느낀 감정은 공포였다. 

내 남자친구가 아프다니. 순간 심장이 발등 위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유월 말부터 칠월 초까지 날 힘들게 했던 대상포진을 기억하고 있었다. 머리카락만 스쳐도 아팠고 등에 난 포진 덕분에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옆으로 누워 잠을 청해야 했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낯설고 성가신 아픔이 그에겐 굉장히 짜증스러웠던것 같다. 평소답지 않게 날카로웠다. 아, 가여운 사람.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목소리를 듣고 자야 한다던 그가 급기야 나와 통화를 거부했다. 


무력감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고, 내일 출근도 해야하고, 아직 내 몸도 정상이 아니었다. 당장 일도 해야 했다. 

마침 그도 나를 도와 행사에 쓸 데이터 정리를 해주고 있었는데 데이터가 워낙 많아 그는 쉴 수 없었다. 

차마 그에게 이제 그만 하고 쉬라 말할 수 없었다. 지체되면 큰일 나는 빡빡한 일정에 그의 아픔을 외면하고 말았다. 이렇게 못된 여자친구가 세상에 나 말고 또 누가 있을까. 남자친구는 아픔에 신음하는데 일이 더 중요한가. 온갖 상념들이 스쳐 밤을 지샜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견딜 수 없었다.  혼자 밥도 못 먹고 앓고 있을 생각을 하니 이성을 차리기 전에 내 발걸음은 그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일 뭐 까짓 거 내가 밤에 더 늦게 자면 되지 뭐. 반대 상황이어도 그는 기꺼이 나를 보러 왔으니까. 


수척해지고 엉망이 된 그의 얼굴을 보니 미안함이 몰려들었다. 삽시간에 그 감정이 나를 삼키고 굴복시켰다. 


교제하는 2년동안 남자친구는 내 간병인에 가까웠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굉장히 자주 골골 댄다. 특히 편도선 때문에 자주 고열 증세를 겪는데 그때마다 정신을 못차리고 누워있을 수 밖에 없다.  그때마다 그는 편도로 한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달려와 물수건을 깨끗하게 빨아서 내 이마에 올려주곤 했다. 수건이 미적지근해지면 다시 깨끗하게 빨아서 이마에 갈아주었다. 

고열에 시달리던 어느 날,  잠결에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게슴츠레 눈을 떠보니 그가 내 손을 붙들고 울고있었다. 아프지 말라며 훌쩍이는 그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주 아픈 부실한 여자친구라 익숙해질 법 한데도 늘 속상하다고 했던 그였다. 그리고 습관처럼 '내가 대신 아파줬으면 좋겠다.' 고 하던 그였다. 

맙소사 그런데 그가 그렇게 아프다. 내가 아팠던 것처럼 똑같은 증상으로 내 눈앞에 있는데 눈물이 왈칵 났다. 

그가 이렇게 아픈 원인은 나 때문이다. 하도 속을 끓이고 밤새 돌보고 일종의 수발을 드느라 말이다. 

사실 이렇게 내가 자주 아프다면 남자친구가 한 번은 '그래 혼자 병원 다녀와.' 라 할 법 한데도 꼭 나를 보러 와서 식사와 약을 챙기고 물수건을 갈아주고 잘 자는지 챙기는 사람이었다. 반면 나는 어떠했나. 미안하단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 외에 다른 말을 할 자격이 없었다. 그의 애정을 당연하게 받을 줄만 알았지, 이렇게 주는 게 없었을 줄은 몰랐다. 그를 마르게 하고 아프게 한 원인은 나의 무심함이 아니었을까. 


이기적이지만, 그가 빨리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다시 회복되어져서 내 곁을 지켜주는 그의 자리로 돌아오길. 

이젠 고마워할 줄 아는 여자친구가 될 수 있을것 같다. 


그리고 Zion T의 노랫말처럼 함께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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