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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찡 Oct 12. 2015

두유 노 인생?

#05. 어디로 갈 지 모를 때는 손바닥에 침을 퉤 하고 뱉어보세요.

갈팡질팡해질 때가 있다.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지 의심부터 될 때.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

막연하게 모든 것은 잘 될거라 희망을 갖기도, 내 인생은 망했다고 좌절하기도 어정쩡한 상태가 있다. 아마 이건 권태기? 사춘기? 이 기분 나쁜 멍함은 도대체 무엇일까. 단순하게 이것이 일이 지쳐서 받는 피로감과 권태로움이라면 오히려 행사가 임박한 지금 쉼에 대한 동기부여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냥 놓아버리고 싶기만 한 것을 보니 이건 단순 피로누적이 아닐 것이다.  도대체 이건 뭐지?


존중이란 걸 모르는 사람에겐, 존중을 바라는게 아니에요.

A(존칭생략)는 오늘도 메일로 사람을 갈아마신다. 휴일에 왜 일을 안하냐는 둥, 자기 일정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둥 '말이 안 되는 소리'를 자주 하시는 분이다. 제작물에 반드시 자기 이름이 들어가있어야 한다고 유선상으로 고함을 치시던 분이 메일에는 자기는 그런 상황을 바라지 않았으며 PCO가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했다는 분.

사람을 이렇게 피를 말리게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매너가 없는' 분이다.  이 분에게 누군가가 '밤 12시에 전화를 해선 안 되는 이유 101' 이나 '휴일학개론' 이런 것을 좀 강의를 해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B(또 존칭을 생략한다.)는 자정이 넘어서 갑자기 오늘 9시에 방문하겠다고 카톡을 보냈고, 새벽 다섯시에 자기가 못가게 생겼으니 출근하자마자 전화를 달라고 했다. 해외에 있어서 시차 때문 아니냐고? 전혀 이 분은 강남 한복판에 있는 분이었다. 나는 상사들에게 보고하고 일정을 조율하느라 그날 밤은 잠들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 메신저에 발달로 인해 한 순간도 업무와 동떨어져 쉴 수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아니 이 정도는 기본 아닌가? 

내 시간은 시간도 아닌가? - 결국 나는 상사와의 상의 후 카카오톡을 탈퇴해버렸다. -  

배울만큼 배우신 분들의 매너없는 행동은 사람의 맥을 풀리게 한다. 화도 많이 나고. 

 그런 나에게 우리 과장님 왈 

                "존중이란 걸 모르는 사람에겐 존중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에휴 우리가 바랄 걸 바라야지.."

 

사실 쉬운 일이 세상에 어딨겠냐만은. 어디 아픈가를 자랑하는 병원 할머니들의 일화들처럼, 요즘 우리 세대도 본인의 아픔을 드러내며 산다. 그래도 대놓고 "그거 본인이 선택한 거 아님? 요즘 취업 어려운 사람들 생각해서 찡찡대는 거 자제좀 ㅇㅇ" 이라 한다면 상처가 된다. 선택에 대한 댓가를 불평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내 선택은 근무시간 내에 나의 일을 해내는 것이지, 내 생활에 대한 우선순위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인생도 이런 디렉션이 있다면 얼마나 좋아.


사실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건 제작물을 오늘도 엎어버렸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거야 다시하면 된다. 뭐 어렵다고. 단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아픈 몸을 돌볼 시간, 운동을 할 시간, 밥을 먹을 시간, 한 달 넘게 다듬지 못한 앞머리를 자를 시간, 거칠어진 얼굴을 가꿀 시간,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 놓고 사랑을 말하는 시간 같은 것.


 다 때려칠까? 


 투정일지 권태일지 모를 지치고 볼멘 소리의 희생양은 착한 남자친구가 됐다. 내가 업계에 발을 들인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럴 때마다 남자친구는 '행복한 선택을 해' 라고 조언했다. 곧 스물 일곱과 작별하고 서른줄에 들어갈 취업시장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인문계 졸업생인 여자가 관련 경력을 무시한 채 때려칠까를 고민하더라도 그게 내 '행복'을 위해서라면 과감하게 선택하라는 이 사람이 있어서 그래도 버티고 산다. 


큰 걸 바라는 건 아니고, 내 일에서 바라는 건 언제나 그랬듯이 소박하다. 

예의없는 행동을 했을 때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 


"미안합니다." 그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려운가 뭐.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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