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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종찬 May 02. 2023

스테이블코인: 금융자유를 수출하다

Stablecoins: Exporting economic freedom

짧은 역사

블록체인 산업의 시작인 비트코인의 백서제목은 "개인 간 디지털 현금"이다. 가치의 전송이 근본적인 테마이다 보니 국제송금, 글로벌 소액결제 등 다양한 아이디어와 시도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가치변동성 (volatility)이 문제였다. 가격이 매 순간 30%까지 변동하는 암호화폐의 특성상 현실에서 송금과 결제는 작동할 수 없었다.  


2019년 즈음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치가 미국달러에 묶여있는 다른 형태의 암호화폐였다. 2014년부터 꾸준히 발전해 온 토큰화 (tokenization) 기술 덕분이었다. 테더 (Tether)라 불리는 회사는 은행에 달러를 예치하고, 예치금을 담보로 달러를 토큰화했고, 이 스테이블코인은 은행 없이도 자유롭게 전송될 수 있게 되었다. 


스테이블코인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가장 큰 사용처는 거래소였다. 로컬통화 또는 비트코인으로만 거래가 가능했던 거래소들은 빠르게 스테이블코인을 적용했다. 가격변동성이 큰 비트코인 대신 안정적인 스테이블코인으로 다른 암호화폐를 거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그렇게 비트코인의 거래페어 (trade pair) 역할을 대체했다.  


암호화폐 시장이 흔들릴 때면 스테이블코인은 헷지 (hedge) 역할을 하며 더 빠르게 규모를 키웠다. 사람들은 자국화폐로 현금화하지 않고 다른 기회를 찾기 전 스테이블코인으로 자산을 보관했다. 특히 중국이 암호화폐를 전면금지하면서, 수십조의 중국자본이 위안화가 아닌 스테이블코인으로 흘러들어 갔다. 이렇게 스테이블코인은 4년 만에 200조 원 가까운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기회가 보이자 서클 (Circle), 팍소스 (Paxos) 등의 회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서클은 단순 거래페어, 헷지수단의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다음을 보았다. 바로 결제와 송금이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200조 원을 넘어 1경 이상의 규모를 만들어낸다면,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벗어나지 않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면, 그때야 진정한 인터넷 경제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미국의 온라인 결제업체 스트라이프 (Stripe.com)의 기업강령은 "인터넷의 GDP를 높이자"이다. 인터넷이 성장하면서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의 커머스, 송금, 결제가 증가하고 있고, 스트라이프는 이러한 온라인 성장을 돕는 금융 및 결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트라이프 이외에도 토스, 밴모, 캐시앱, 알리페이 등 수십조 원대의 스타트업이 인터넷 송금/결제 영역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스트라이프를 비롯한 핀테크 기업에게도 한계가 존재한다. 편리하고 간편한 UIUX로 전통은행들이 하지 못하는 영역에는 진출하였지만, 여전히 기존 금융시스템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글로벌 거래에 있어서는 더욱 취약하다. 토스는 한국, 캐시앱은 미국, 알리페이는 중국에서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처럼, 기존 금융시스템에 의존하는 방법으로는 범국가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 


기존 금융시스템의 한계

핀테크 기업들이 대부분 내수시장에서만 운영하는 이유는 돈이 정보처럼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에서 정보의 전송에는 아무런 장벽도 존재하지 않지만, 현실에서 돈은 정보와 분리되어 있다. 돈은 중앙은행과 청산기관, 은행, 금융사 사이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핀테크 기업들은 이러한 기존의 금융시스템을 유지한 채, 은행과 직접 API통신을 하거나 은행망에 연결할 수 있는 오픈뱅킹 인프라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로컬서비스의 경우 별문제는 없지만, 글로벌 수준의 오픈뱅킹 인프라는 존재할 수 없고, 여전히 코레스은행과 스위프트망을 통하기 때문에 비싸고 느리다. 

오프체인에서 온체인으로

이제 스테이블코인의 등장으로 인터넷에서 정보를 주고받듯 돈을 전송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 금융시스템을 통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블록체인을 통해 오프체인 (Off-chain; 블록체인 밖 체계)에 있던 돈이 온체인 (On-chain; 블록체인 내 체계)로 옮겨오는 순간, 그 어느 누구의 허락 없이도 자유로운 글로벌 금융거래가 가능하다. 


작은 개발팀이 2년 만에 하루 1조 원 이상 거래되는 탈중앙 거래소를 만들고, 개발자 혼자서 오픈소스코드를 이용해 대출 플랫폼을 만든 것처럼, 이제 어느 누구나 전 세계가 사용하는 금융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인터넷이 정보의 장벽을 허문 것처럼, 블록체인이 금융의 장벽을 허문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변화를 겪은 것처럼, 오프체인에서 온체인으로 같은 변화를 겪고 있다. 온체인 GDP을 높이는 웹 3의 스트라이프가 필요한 시점이다. 


금융포용 (Financial inclusion)

모든 금융서비스의 시작은 은행계좌 개설로부터 시작한다. 은행계좌가 있어야 대출, 송금, 온라인결제 등이 가능하다. 은행계좌를 만들려면 자본과 신용, 주민등록번호나 여권처럼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인증서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에서 은행계좌는 보편화되어 있지만,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지역의 개발도상국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금융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한다. 

은행은 가난한 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본과 신용이 없는 자들은 은행에게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알리페이와 카카오페이와 같은 핀테크 기업들이 은행계좌 없이도 금융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만드려 해도, 국가는 자금세탁을 이유로 제재를 가한다. 은행계좌가 없는 개발도상국의 국민들은 로컬 현금경제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다. 


나이지리아는 하루 평균 소득이 6달러다. 필리핀은 9달러, 한국은 약 88달러이다. 개인의 능력이 소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국가의 물가와 노동가치가 소득을 결정한다. 우리는 한국기업에서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며 원화를 받고 세금을 내고, 우리나라 물가에 맞는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고 살아간다. 한국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필리핀 국민의 10배 가까운 소득을 받는다. 

웹 3와 스테이블코인은 20년간 풀지 못한 금융포용을 해결하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이제 더 이상 나이지리아에 산다는 이유로 석탄공장에서 하루 6달러를 받으며 일할 필요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글로벌 기준으로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새로운 대안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가 약 50억 명 정도이고 이 중에서 17억 명은 은행계좌가 없다. 인터넷 인구의 약 1/3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근은 할 수 있지만 금융활동을 하지 못한다. 17억 명은 자본과 신용 없이도 핸드폰 버튼 몇 번을 누르면 암호화폐 지갑을 만들고 스테이블코인을 주고받을 수 있다. 


현재 많은 블록체인 기업들이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직원들에게 스테이블코인으로 급여를 주고 있고, 급여지급 소프트웨어 기업인 Request, 온체인 분석을 통해 세금계산을 해주는 Taxbit, 현금으로 바꿔주는 Wyre와 Moonpay, 이들을 지원하는 거래소와 지갑 등 거대한 온체인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나의 능력에 대한 가치가 글로벌 시장에서 정해지는 국경 없는 경제의 시작이다. 

금융자유의 수출

웹 3와 스테이블코인은 결국 금융의 자유를 수출하는 역할을 한다. 기술의 본질적 존재가치는 모든 이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전기, 자동차, 휴대폰, 비데 등 모든 이로운 기술의 결과는 초기 혜택 받는 자들의 소유품에서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전파된다. 우리는 2008년 비트코인의 발명으로 그동안 변하지 않았던 금융시스템의 구조적인 진화를 지켜보고 있다. 자본의 소유와 이전, 거래의 자유가 모든 국가와 계층에게 비로소 전파된 새로운 경제의 탄생이다. 



Export economic 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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