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llacy of tokenization
블록체인 업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토큰화 (Tokenization)는 블록체인을 이용해 특정 자산 (예. 화폐, 증권, 부동산, 예술작품 등)을 전산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금융자산은 대부분 이미 전산화되어있지만, 블록체인을 사용하여 토큰화를 하려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소유의 용의성 (Ownership)
개인키 (Private key)를 소유하면 토큰화된 자산을 '기술적'으로 소유한다.
2. 범국가적 접근성 (Global accessibility)
개인키가 곧 소유권이기 때문에 키를 소유한 자의 국적, 나이, 등은 중요하지 않다.
3. 가분성 (Divisibility)
암호화폐처럼 토큰을 거의 무한정으로 쪼갤 수 있기 때문에 자산의 가분성이 증가한다.
위의 논리를 가지고 사람들은 예술작품을 블록체인으로 토큰화하여 소유권을 쪼개가지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하고, 기업의 증권을 토큰화해서 글로벌 시장에서 자유롭게 자금조달을 하자고 한다. 또는 부동산을 토큰화하면 부동산 거래시장의 유동성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Business is not a concept.
비즈니스는 컨셉이 아니다. 기술의 이해만으로 미래 가능성을 아무리 상상하더라도, 서비스의 적용은 현실에 대한 논리적 탐구와 사용자에 대한 이해, 끊임없는 변화와 노력의 산물이다. "A의 기술로 B의 컨셉을 구현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건 아무 의미없다. 블록체인의 토큰화 역시 현실성을 고려해야 한다.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은 다섯 가지 요소를 가진다:
1. 탈중앙성 (Decentralization)
토큰의 사용과 보안이 분리되어있다. 전 세계에 분산된 네트워크 유지자들은 토큰 사용에 간섭하지 않는다.
2. 비가역성 (Irreversibility)
한번 트랜잭션이 일어난 (=키의 소유권이 옮겨간) 토큰을 절대 되돌 일 수 없다.
3. 기술적 거래의 완결성 (Technical settlement finality)
트랜잭션의 완결이 기술적으로 보장된다. 비가역성과 같은 맥락이지만, 결제가 일어나면 그 결제는 완결된다.
4. 완전 자동화 (Full automation)
블록체인 트랜잭션은 금액 크기의 중요도와 상관없이 암호서명적으로 자동화되어있다.
5. 가명성 (Pseudonimity)
토큰의 키 (=자산의 소유권)와 소유자의 신원을 매치하기 어렵다.
토큰화의 다섯 가지 요소는 기존 전산화 방식과 정반대이다. 전산화 방식에선 중앙시스템 (Central depository)이 운영하고, 거래 오류나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수정이 가능하며, 결제의 완결은 기술이 아닌 법적으로 보장하고, 인간의 개입이 가능한 수준의 자동화를 적용하며, 자산 소유자의 신원이 명확해야 한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탈중앙성 그 자체만으로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운영주체가 하나냐 여러개냐는 시스템의 견고성 (Robustness)과 회복성 (Resilience)의 영역이고, 중앙화된 시스템도 백업체계를 둬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다. 특정 '주체'가 블록체인이랍시고 노드를 분산시키는 게 의미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블록체인과 기존 분산시스템의 궁극적인 차이는 네트워크 운영에 제삼자가 '경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느냐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블록체인 형태의 탈중앙화가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비가역성, 완결성, 자동화, 가명성에 있다. 토큰화의 목표는 자산의 유동화다. 모나리자 작품을 0.1% 소유했다고 해서 예술을 0.1% 만큼 만족하려는 게 아니라, 0.1%의 소유권을 자산화하여 유동성과 환금성을 만들기 위해 토큰화를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토큰화는 금융거래를 위함이다.
법적 분쟁의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는 현실에서 금융거래는 비가역적일 수 없다. 토큰화된 아파트의 일부가 담긴 키를 잃어버리는 인간적 실수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현실에서 거래가 완결되는 기준은 기술이 아니라 법적으로 지정한다. 즉 내가 실수로 돈을 잘못 보내면, 인간의 정책적/법적 개입을 통해 수정될 수 있어야 하고 영원히 분쟁을 이어갈 수 없으니, 결제의 완결이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오류를 검토하고 판단하는 건 기계가 할 수 없다. 기계가 고장나면 사람이 고쳐야 하듯, 100% 자동화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가능성을 얘기하는게 아니라, 기계의 결정을 사람이 무조건 따를 것이냐라는 철학의 문제기도하다. 비트코인은 관리주체가 없는 프로토콜이기 때문에, 당연히 암호학적으로 외부 개입에 의한 변화가 일어날 수 없게 설계되었고, 비트코인 자체가 실물과 연결되어있지 않으니 모든 거래에 있어서 원자성이 보장되지만, 실물과 연결된 자산을 그럴 수 없다.
좀 더 쉬운 이해를 위해선 원자성 (Atomicity)과 진본성 (Authenticity)이란 단어를 알아야 한다.
원자성
원자성이란 거래가 (1) 일어나거나, (2) 일어나지 않거나 100% 확실한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가 물건을 구매할 때 지폐나 동전으로 지불하면, 그 거래는 원자성을 지닌 거래다. 내가 물리적으로 다시 빼앗지 않는 이상, 그 돈의 소유자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페이팔은 원자성이 보장되는 거래가 아니다. 페이팔 데이터베이스의 장부만 업데이트 되었을 뿐, 내 은행에 있는 현금은 거래가 일어난 순간 가맹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거래가 취소될 수 있는 이유도 원자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진본성
진본성이란 유동성을 지닌 자산이 원본임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내 지갑 속 만원은 내가 완전히 소유한 진본이다. 반면에 내 은행 잔고의 돈은 데이터상으로만 존재하는 가본일 수도 있다. 물론 여러 복잡한 레이어로 구성되어있어 개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현재 선진국의 증권은 (100%는 아니지만) 대부분 전산화되어있고, 전산화된 증권은 그 데이터 자체로 진본성과 권위성을 가진다. 단순히 종이증권을 전산적으로 '표현'만 한게 아니라 종이증권에서 전산화된 증권으로 진본성이 아예 넘어간 것이다.
블록체인을 통한 토큰화는 단순히 실제 자산을 토큰 형태로 '표현'만 하기 때문에 원자성과 진본성을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중앙은행, 예탁결제원, 금융결제원, 은행 등의 기관들이 블록체인을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블록체인을 적용하려면 기존의 시스템을 미러링 (또는 쉐도잉)하는 토큰시스템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재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치의 최소단위
기술적 논의를 벗어나서, 토큰화는 '가치의 최소단위'를 무시한다. 무형이든 유형이든 가치는 사용성이 있는 가장 작은 단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아파트 빌딩의 최소단위는 에어비엔비로 수익화 할 수 있는 방 (Room)이다. 그 방을 백만 개로 쪼개서 판매한다고 한들, 백만분의 일의 가치로는 어떠한 사용성이 없기 때문에 애초부터 가치가 생성될 수 없다. 모나리자를 토큰화해서 백만 개로 나누더라도, 작품성을 가지는 최소단위가 그 작품 전체이기 때문에 토큰화 할 수 없다.
토큰화를 하고픈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업을 진행하면서 알게 될 거고, 이미 깨달은 기업들은 위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 기술을 바꾸기 시작한다. 이들은 자체 블록체인을 만들고 자신들이 블록체인의 노드 운영권을 독점하거나 파트너에게만 열어놓음으로써 기존 분산시스템보다도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든다. 또한 블록체인의 암호적 설계상 스스로 reorg를 해버리지 않으면 비가역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자신들이 사용자의 키를 관리하거나 토큰을 파괴하고 새로 생성하는 등의 중앙집중적 방법을 쓴다. 따라서 암호학적 완결성이나 자동화도 무력화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당연히 신원이 증명되지 않은 사람이 자산을 가져가는 게 현행법상 불법이니, 이들의 시스템은 회원가입 절차와 개인인증을 통해 자신들의 플랫폼 이용자들의 모든 신원을 확인하고 키 역시 대신 관리한다. 현실에 기술을 맞추기 위해 눈물겨운 변화를 이뤄낸 결과, 그냥 AWS를 쓰는 웹서비스와 다를 바가 없다. Dapp도 마찬가지지만, 결국 AWS와 웹브라우저에서 구동되는 서비스에 엔진만 블록체인을 쓰는 건 경이로운 수준의 멍청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