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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종찬 Apr 18. 2019

블록체인 산업의 현실

Reality of the blockchain industry

진실을 말하는 것과 사회통념적으로 허용된 말을 하는 건 엄연히 다르다. 사회통념은 때로 진실이 입밖에 나오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옳던 그르던 시대정신을 따르는 집단에 포함되는 것이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In order to be able to think, you have to risk being offensive
- Jordan Peterson


토큰은 사기다

모두가 속으론 알고 있다. 사람들이 ICO를 한 이유는 100% 자금모집이다. 단순히 빠르게 부자가 되고 싶어서, 또는 허덕이는 사업의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서 (=Reverse ICO) 하는 거다. 한편으론 이해한다. 백서라는 이름의 계획서를 작성하고, 법적 구속력이 없는 기부라는 이름으로 수백억을 자금을 유치하는 방법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다단계 사기 피해가 1조 원이 넘어가도록 피해자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ICO 투자자들은 이미 재산을 털어 넣었기 때문에 이러나저러나 프로젝트가 잘되길 빌거고, 혹여나 누군가 건설적인 비판을 하면 무조건 반발한다. "기술이 훌륭해 투자했다"며 자기 위로하는 사람들은 '커뮤니티'라는 집단에 소속되어 논리를 강화한다.


가끔 사용자로 둔갑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투자자 모임인 '커뮤니티'가 블록체인 업계의 중요한 요소인양 자리 잡히면서 커뮤니티 매니저라는 직업까지 생겨나게 되었고, 이들은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에서 떠드는 성난 투자자들의 비위를 맞춰준다. 주로 상장이나 에어드롭한다는 소식을 알리고 (도대체 왜 이게 중요한 건지 모르겠지만) 채팅방의 사람 수를 올리는 게 주요 업무다. 이러한 이상한 생태계가 형성되면서 커뮤니티 관리나 언론홍보를 전문으로 해주는 블록체인 PR 에이전시가 우후죽순 생겨나기도 했다.


ICO를 고민만 해본 회사와 실행에 옮긴 회사의 차이는 "왜 토큰이 필요해?"라는 질문에 솔직한 답을 했는지에 있다. 토큰이 필요 없음에도 불구하고 ICO를 실행한 회사들은 명분을 찾기 위해 사용자에게 인센티브를 준다는 말도 안 되는 경제학 (=토큰이코노미)을 창조해냈고, 이러한 논리는 더욱 강화되어 수많은 프로젝트의 기본철학이 되었다.


토큰이코노미 얘기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토큰경제학자 (Token Economist)라는 타이틀을 붙여가며 토큰경제를 설계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고, 멋모른체 트렌드를 따르는 회사들은 구인란에 토큰경제학자 자리를 만들기도 했으며, 경제를 대신 설계해주겠다는 업체도 생겨났다.


결국 탐욕에 이끌려 크라우드펀딩된 코린이들의 돈과 노인들의 노후자금은 ICO 프로젝트 임원들의 빌딩이자 스포츠카가 되었다. 일 예로 해외 ICO의 임원은 홍콩에서 가장 비싼 빌딩 중 하나를 통째로 현찰 인수했고, 국내 한 ICO 프로젝트의 전 대표는 300억 원을 가지고 깨끗이 이 바닥을 떠났다.


거래소는 카지노다

지금 현재 모습의 거래소들은 바다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A의 코인을 B로 바꾸고, 투자 흐름에 따라 C, D, E 코인으로 바꾸는 게 전부다. 그 과정 속에서 엄청난 유동성과 환금성이 생기고, 투기자, 마켓메이커, 크립토 펀드들의 도박장이 된 거다.


2014년도 이더리움의 상장마저도 조심스러워하던 거래소들은 상장으로 거래량을 모으는 신규 거래소들과 경쟁하기 위해 다 같이 도박장에 뛰어들었다. 코인원의 이더리움 클래식, 코인네스트의 큐텀, 업비트의 비트렉스 거래 페어가 좋은 예다. 신규 거래소들의 전략적 상장은 실제로 많은 거래량을 모아 왔고, 그 거래량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거래량으로 이끌어온 거래소가 그나마 명목을 유지하고 있다.


거래소들은 거래량을 늘리기 위해 마켓메이킹이라는 명분의 자전거래를 하거나 심지어 거래량을 일으키면 인센티브를 준다며 거래소 토큰까지 발행했다. 거래소 토큰은 유행처럼 자리 잡아 신규 거래소는 마치 필수사항인듯 토큰을 발행하기 시작했고, 거래소들은 토큰 가격을 올리는데 혈안이 되었다. 시스템을 소유한 거래소에게 거래소 토큰은 여러 가지 설계를 통한 조작이 유리하기 때문에 초기 가격이 오르는게 패턴화 되었고, 투기자들은 거래소 토큰을 '메타'라고 표현하며 Pump&Dump 눈치싸움을 하곤 했다.


거래소들은 블록체인 기술의 수호자인양 말하지만 결국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로 눈을 가린 채 동전을 던지는 게임을 만든 거다. 하지만 나는 거래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끔찍한 경쟁 속에서 잘 살아남아 운영하고 있는 거래소들은 철저하게 사용자들이 원하는걸 성실히 제공했다. 사용자들은 메이저 코인 이외 다양한 투기 옵션을 원했고,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그 니즈를 잘 이해하고 빠르게 서비스를 제공한 거래소들은 대단한 거다. 단지 사용자가 도박꾼일 뿐.


거래소 사업은 보수적으로 운영하느냐 대놓고 카지노가 되느냐로 나뉜다. 어차피 상용되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기술의 기준 잣대와 원칙 아닌 원칙을 내세우는 거래소가 있는 반면, 대놓고 도박장을 만드는 거래소도 있다. 내부거래가 이루어지는 건 안 봐도 비디오고, 여기저기서 이 코인이 곧 어디 상장하니 매수해야 한다는 선전지가 돈다. 거래소 토큰을 발행해 어느 시점까지 가격을 올려 구매하면 스포츠카를 주는 이벤트도 열린다.


크립토펀드는 시장 조작자이다

크립토펀드는 회사의 주식이 아닌 ICO 프로젝트의 토큰을 구매하는 펀드를 의미한다. 프로젝트들은 ICO를 하기 전 펀드들에게 디스카운트를 주고 토큰을 판매한다. 프로젝트는 크립토 펀드에게 투자받았다며 자랑스럽게 정당성을 홍보하고 토큰 구매자들은 좋은 시그널인양 ICO에 참여한다. 크립토펀드와 결국 적대적인 관계라는 걸 모른체 말이다.  

크립토펀드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토큰이 거래소에 상장되어야 엑싯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거래소들과 관계를 만든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일한다면 룸살롱 상장 딜이 만연하다는 걸 알거다. 기존 금융과 비교하자면 벤처캐피털이 한국거래소에 로비하여 상장하는 거나 다름없다. 사회적으로 멋지고 기술지향적인 집단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정보의 장벽을 이용하고 거래소와 결탁해 무지한 개인투자자들에게 덤핑 하는 게 전부다.

갓토스..


기술을 바라보고, 현실의 적용과 가능성을 바라보고 투자를 한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기업의 성장 (사실 성장이 없기도 하지만..)과는 별개로 거래소에 상장되는 순간 또는 펌핑이 온 순간 내던진다. 즉 벤처캐피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헤지펀드와 유사하게 유동성과 환금성이 엑싯의 주된 메트릭이다.


돈이 된다고 생각한 전통 벤처캐피털도 ICO 버블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토큰 투자가 법적으로 안되니 ICO 프로젝트들과 기존 방식대로 주식 매입 계약을 맺고, 그에 따른 토큰을 배당받는 방법으로 투자한다. 배당받은 토큰의 주소는 당연히 임원의 주소다.

거래소와 크립토펀드 임원들은 블록체인 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ICO를 법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떠든다. 토큰이 없으면 제2의 인터넷인 블록체인의 국가적 기회마저 해외에 빼앗긴다는 애국의 논리를 피기도 한다. 블록체인 기술과 "나의" 암호화폐는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논리를 앵무새처럼 따라 한다.


시장이 무너지고 아무도 ICO를 하지 않게 되면서 존재의 이유가 없어진 지금, 많은 펀드들은 하염없이 암호화폐 광풍이 불기를 기다리고 있거나 트레이딩, OTC, 차익거래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마치 암호화폐 시장이 투자사이클에 의해 잠시 주춤한 거라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펀드뿐만 아니라 투기자, 마이너 거래소들 역시 그저 'bull market'만 기다리고 있다.


어드바이저는 어드바이징을 하지 않는다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이상하게 자리 잡힌 관습 중 하나는 어드바이저에 대한 집착이다. 프로젝트들은 과거 블록체인 업계에서 이력이 있거나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관련 직종 또는 전문성과 상관없이 무조건 얼굴과 이름을 웹사이트에 붙이려고 한다. 그들은 어드바이저라는 타이틀을 달고 프로젝트의 공인성과 평판을 쌓는데 기여하고 토큰의 일부분을 인센티브로 받는다.


ICO붐일 때 블록체인 업계에 뛰어든 펀드 또는 투자자들은 그대로 이 관습을 받아들였고, 어드바이저의 유무가 투자의 기준까지 돼버렸다. 결국 '사용'이 본질이 아니라 무지한 대중의 눈에 얼마나 평판있게 보이느냐가 더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전통 벤처캐피털 업계도 마찬가지지만, 결과가 적나라하게 보이지 않을 때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엑셀러레이터는 컨설턴트다

이들은 물론 Y Combinator나 Techstars 같은 멋진 엑셀러레이터를 꿈꿨겠지만 정작 하는 일은 어드바이저와 마찬가지로 네임밸류를 부여하고 토큰의 일부를 갖는 사업모델의 컨설턴트다. 사실상 컨설팅을 할 것도 없다. 블록체인 서비스의 성공사례가 단 한 개도 없는 상황에서 엑셀러레이터가 뭘 가속화할 수 있겠는가. 결국 이들은 어떻게 하면 법적문제없이 재단을 설립하는지 알려주고, 어드바이저를 모아와라 등의 꼰대질을 대가로 많으면 15%까지 토큰을 요구한다.  


아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혼돈의 업계였기 때문이었는지, 엑셀러레이터나 PR 에이전시, 어드바이저가 있어야 자금을 모을 수 있다는 착각이 프로젝트들을 휘감았고, 그들은 자금유치 실패의 불안함을 심리적으로나마 해소하는 대가로 엑셀러레이터들에게 많은 비중의 토큰을 넘겼다. 그 토큰은 곧 거래소에 내던져져 개인 도박꾼들의 피해로 전가된다. 결국 제로섬 게임에서 누가 폭탄을 언제 넘기느냐의 싸움이다.





기술의 발전이라는 명분 하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트렌드와 키워드를 만들어낸다.

Altcoin -> Colored coin -> Metacoin -> Sidechain -> Anonymous coin -> Memecoin -> PoS coin -> DAC -> dApps -> DPoS -> Private Blockchain -> DLT -> DAO -> ICO -> Tokenization -> ERC -> Token economics -> Utility tokens -> DAG -> Web3 -> DEX -> Stablecoin ->  Lightning Network -> Interchain -> STO -> IEO -> Defi ->?


초기엔 이러한 트렌드의 등장이 기술의 발전이라고 생각했었다. 마치 블록체인이라는 큰 생태계의 컴포넌트로 작용하고 서로 융화되어 기술적/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기술의 다변화/다각화는 아예 다른 개념이다. 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기계 간 통신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토콜이기 때문에 단일의 프로토콜 위의 개발이 아닌 이상 발전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 업계에 몸담은 지난 6년보다 지금이 가장 희망적이다. 이렇게 파티가 끝나고 망하는 게 아니라, 잠시 취해있었던 것이구나란 생각이 든다. 더 알아갈수록 이 기술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원대하고, 앞으로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을만하다. 지금이야말로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간접적으로든 비간접적으로든 블록체인 업계에 있었다면 위 내용이 불쾌하게 느껴질 거다. 나 스스로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고, 자신이 주어진 환경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내린 개인의 결정에 대해 비난하는 글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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