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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작가 Dec 30. 2021

듣는 귀가 없어서
글로 이야기 하던아이

방송 작가를 꿈꿨던 계기


 충남 서천군 한산면 나교리. 방안에 창문을 열면 논밭과 작은 집들이 먼저 보였다. 이따금씩 좁은 흙길 저편에서 강아지 울음 소리와 사람들의 말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매일 저녁 8시. 마지막 버스가 끝나는 이른 저녁이 되면 작은 가로등 불빛이 무색하게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거리를 바라보기 위해 창틀에 걸터 앉아 하염없이 밤 하늘만 바라보던 아이는 말할 사람도 들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이제는 서울에서 부모님과 13년 동안 살았던 아이가 아닌 홀로 할머니 댁에 얹혀 사는 아이가 되었다. 방안에 있는 외로움과 적막함을 깨보려 라디오 주파수를 맞췄다. 카세트 플레이어의 은색 안테나를 붙잡고 이리저리 돌리면 지지직 지지직 소리가 났다. 음악 소리와 DJ의 목소리가 들리다가 소리가 선명해질 때 멈추었다.  밤새 라디오를 들으며 공책 제일 뒷면에 생각 나는 글을 아무렇게나 적었다. 13세 소녀가 적기에는 심오해보이는 시를 쓰기도 하고, 소설이나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를 적기도 했다. 무엇이든 끄적였다.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은 손 끝으로 옮겨 갔다. 그렇게 아이의 사춘기는 공책에 채워지는 글과 함께 지나갔다. 


 사람을 만났을 때 보다는 텔레비전을 켰을 때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보며 더 많이 웃었다. 초등학교 때는 연기를 하고 싶었던 어린 아이는 거울 속 현실을 금방 잘 깨달았다. 대신 TV 화면 속에 나오는 사람들 뒤편의 직업을 하고 싶었다. TV속에서만 보는 연예인들과 일할 수 있는 직업, 그리고 내가 이렇게 울고 웃을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주는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생각만해도 설레고 재밌을 것 같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재밌어 하는 두 가지 TV와 글쓰기! 이 것들을 한꺼 번에 할 수 있는 '방송작가' 라는 직업은 나의 천직처럼 느껴졌다. 방송작가가 아니더라도 방송국에서 청소라도 하고 싶었다. 방송국은 그렇게 나의 꿈의 직장이 되었다.


 내 주변에는 방송 종사자가 없었기에 먼저 네이버에 방송작가가 되는 법부터 검색해보았다. 그리고 전공은 상관 없었지만 이왕이면 글쓰는 과를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대학 전공도 자연스럽게 문예창작학과로 가게 되었다. 문예창작학과를 가면 내가 좋아하는 글을 내내 쓰고 좋은 책도 많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전공은 전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흰 여백만 보이면 어디든 글을 쓰던 아이는 대학 진학 이후 내가 원하는 글이 아니라 매주 자판기처럼 글을 써야만 했다. 내가 좋아하는 글이 아니라 교수님들과 동기들에게 평가 받기 위한 글을 쓰게 되면서 어느 순간 내 진짜 글쓰기는 멈추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방학숙제를 '동화 쓰기'로 정할 정도로 글쓰기란 나에게 가장 재미있고 편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 진학 이후 글쓰기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동안 내가 썼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이 정리 되지 않은 채, 꾸역꾸역 전공 수업을 들었다. 이론 수업 보다 실기 수업에서 낮은 평가를 받으며 복잡한 생각들은 꼬리의 꼬리를 물었다. 이제 더이상 아이로 보이지도 않는데 여전히 어린 시절의 아무도 없던 칠흑 가운데 갇혀 있는 듯 했다. 답답함은 계속 풀리지 않았다. 문예창작학과는 나에게는 방송작가가 되기 위한 밑거름이라고 생각했지만 순수문학을 원하는 전공 특성상 이게 적합한 공부일까 라는 생각이 전공 수업 듣는 내내 들었다. 


 방송작가는 연차로 경력을 따지기에 방송 데뷔 처럼 일찍 일을 시작할 수록 좋다는 것을 보았다. 하루라도 빨리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덕분에 3학년 2학기 까지 학점을 꽉꽉 다 채우면서 조기졸업까지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글쓰기를 하나의 작품.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교수님들의 성향 상 조기 졸업을 좋아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사실 졸업하면 끝이고, 다시 보지 않을 교수님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괜히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조기졸업을 하고 싶진 않았다. 결국 4학년 학기를 다니면서 방송작가가 되기 위한 관문인 방송 아카데미를 병행하기로 했다. MBC 아카데미는 일주일에 5번, SBS 아카데미는 일주일에 3번만 출석하는 것을 보고 학생수와 인지도는 MBC 아카데미가 있었지만 수업 일수가 적은 SBS 아카데미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방송작가에 한 걸음 바짝 다가 선 것 같았다. 곧 방송작가가 되어 내 꿈을 펼칠 생각에 매일 가슴이 두근 거렸다. 그렇게 행복한 일들만 있을 것 같았다. 방송 아카데미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럴 것 같았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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