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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음 Jun 18. 2024

7. 우울증엔 덕질 (1)

내가 이 덕질을 끊지 못하는 이유


이 덕질이 시작된 건 어언 2n년 전의 일이다.

당시 아직 어린이였던 나는, 습관처럼 틀어놨었던 공중파 음악방송을 보다가 '덕통사고'라는 것을 당하고 만다. 생글생글 웃으며 춤을 추던, 레몬색깔의 머리카락을 가진 그에게 거하게 치이고 만 것이다.

그에 대한 사랑은 곧 그룹 전체의 사랑으로 급속하게 번져갔다.


그 전까지는 분기에 한 번씩 좋아하는 아이돌이 바뀌었던 나는 결국 그들에게 정착해 십대를 보냈다.

그들은 내 성장기와 사춘기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내게 많은 추억과 친구들을 남겼다.

내가 십대에 경험한 기쁨과 슬픔, 사랑과 상실엔 모두 그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 인생의 목표였으며, 꿈이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의 내게, 그들은 여전히... 중요한 무언가다.






이제 막 세를 불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고, 때 아닌 비 소식마저 있던 지난 토요일.

동생과 함께 난지 공원에서 열린 한 음악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나는 고질적으로 덥고 습한 것에 취약해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름에 장시간 외출하는 것은 당연히 지양하고, 남들이 다 가는 여름휴가도 가을로 미루는 편이다.

덥고 습한 동남아 여행에선, 야외활동 보다는 맛집과 마사지로 대부분의 일정을 보내는 걸 선호한다.


그런 내가 한참 더운 6월 중순에 야외 페스티벌이라니.

게다가 내가 이 페스티벌의 티켓을 구입한 건 3월이 끝나갈 때 즈음이었다.

더운 계절에 야외 활동을 하는 것도, 6월에 있을 페스티벌 티켓을 3월에 '미리' 구입한다는 것도 평소의 나라면 생각할 수 없는 선택.


내가 나답지 않은 선택을 할때엔, 늘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가족, 연인, 친구, 반려동물 등등. 대개 사랑과 애정을 기반으로 한 모종의 이유들이 말이다.

한 여름의 페스티벌을 계획한 모종의 이유는 바로, '덕질'이었다.

나의 <그들>이 헤드라이너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크게 관심이 없었던 페스티벌의 티켓을 얼리버드로 샀다.

 

당시의 내게 6월의 날씨가 어떨지 따위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이제 막 봄이 완연해지던 계절이었으니, 6월의 무더위가 먼 얘기처럼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7월이 아니니 괜찮을 거라고 그렇게 심한 땡볕은 아니지 않겠냐며 희망회로를 돌리기도 했었다.

무엇보다도 그땐, 결코 예상하지 못했었다.  

우울증을 진단받고, 항우울제를 먹게 되는 여름날의 내 모습을 말이다.  

페스티벌 티켓을 사던 3월의 나와, 지금을 사는 6월의 나 사이에는 너무나 큰 간극이 존재했다.

그때의 내겐 아직 더 태울 수 있는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었지만, 지난 두 달 간 나는 그 불씨를 모두 활활 태워 모조리 소진시켜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당시의 내가 예측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무기력증, 번아웃, 우울증, ADHD 등등의 병명이 붙게되는 여름을.  

괜찮다 여기던 것들을 하나도 괜찮지 않았던 것으로 인정하면서 한껏 유약해진 나와 대면하는 여름을.

봄을 보내는 동안, 나의 주변을 둘러싼 많은 상황과 여건들 또한 달라져버린 여름을.


덕질로 고단한 현생을 위로 받을 수는 있다고 하지만, 그 덕질을 굴려가는 데에도 에너지가 드는 법이다. 무대에 서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언제나 나의 시간과 비용, 노력이 투여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나의 에너지를 투자해, 일상을 굴려갈 무한한 동력을 충전하고 돌아오는 것이 내가 어른이 되고 받아들인 덕질의 선순환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내겐 당장 그들에게 투여할 수 있는 에너지 자체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영혼까지 끌어 모은대도 간신히 내 일상만을 삐걱대며 굴릴 정도가 전부 아니던가.


그 때의 내가 신나게 질러버린 페스티벌 티켓이, 현재의 나에겐 부담으로 다가왔다.

페스티벌은 그야말로 '축제'인데, 나약해진 마음과 몸뚱이를 이끌고 내가 과연 즐길 수 있을까.

하루 놀다 오면 그 뿐, 내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데 굳이 내 에너지를 더 들여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지금의 내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것도 내가 싫어하는 이 여름에.

이 뙤약볕에. 비 소식도 있다는데?


하지만 기대에 잔뜩 부푼 동행자의 얼굴 앞에서,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의 친동생이자 친구, 그리고 덕메인 그녀가 이 날을 얼마나 고대해왔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나와 달리 동생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정해진 루틴으로 근무하는 직장인이다.

지겨운 루틴이 일상인 그녀는, 6월의 페스티벌만을 기다리며 힘든 '현생'을 하루하루 버텨왔을 터.

그런 그녀의 행복과 기대 앞에, 언니가 돼서는 초를 칠 순 없었다.

설령 내가 축제를 온전히 즐기지 못할 지언정, 동생의 행복에 누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런 생각으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강 난지 공원에 닿았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품고 있던 나약하고 어리석은 생각은 순식간에 날아갔다.



페스티벌 베뉴에 대문짝 만하게 걸린, 나의 <그들>을 마주한 순간.

푸른 하늘과 나란히 서 있는 지오디(god)를 보자마자, 내 어깨를 짓누르던 부담이 거짓말처럼 녹아내렸다.


또한 불현듯 떠올랐다.

내가 오랜 세월 이 덕질을 끊지 못하는 이유가.



- 2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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