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아이는 새로운 영어 선생님들과 수업을 시작한다. 진키와의 수업을 모두 합하면 오늘이 아홉 번째 수업이기도 하다. 한 달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영어 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다만 '영어'는 교과서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알았으면 했다. 영어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고 글과 말로서 함께 소통하고 이해하는 도구라는 것을 체험하게 하고 싶었다.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 아이가 영어를 배워나갈 때 방향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새로운 선생님들은 두 살짜리 딸이 있는 결혼 3년 차 신혼부부다. 올해로 29세인 아내의 이름은 메이(May) 그리고 그녀보다 세 살 어린 남편의 이름은 집시(Jipsy)이다. 어제 처음 만났을 때 특히 집시의 유려한 영어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특유의 필리피노 억양이 전혀 없는 네이티브 그 자체였다. 어떻게 된 일인가 물었더니 집시는 특이하게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자랐다고 한다. 거기서 아랍어와 영어를 사용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 부모님이 몰몬교(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신자였던 관계로 자신도 미국으로 건너가 알래스카에서 선교사 활동을 2년간 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온 생활이 어려운 이민자들을 위한 무료 영어 강습 봉사활동을 도맡아 했고 그 과정에서 수준급 이상의 스페인어를 습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집시는 영어, 아랍어, 스페인어, 그리고 따갈로그어에 능통하다. (그 외에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언어가 몇 가지 더 있다고 했다)
그의 아내 메이는 집시가 선교활동을 끝내고 마닐라에 돌아왔을 때우연히 (혹은 운명처럼) 만났다고 한다. 메이 또한 몰몬교 신자로 선교활동을 위해 워싱턴과 그 부근에서 4년간 머물렀는데, 그때 한국인 목사 부부와 매우 각별한 사이였다고 한다. (사실 몰몬교는 목사가 없는 평신도 중심 교회이다. 일반 교회의 목사에 해당하는 역할을 '감독'이 하게 되는데 감독은 평신도 중에서 선임된다.) 그래서 한국인들에 대해 각별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필리핀에서 나고 자라서 몇 년간 선교활동을 위해 영어를 집중적으로 사용했던 것 외에는 영어교육과 관련한 경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지만 두 살배기 딸아이의 엄마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아이와의 친밀한 소통만큼은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새로운 인연
원래는 메이가 면접을 보러 온 것이었고 집시는 그 자리에 함께 따라와 준 것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다. 메이뿐만 아니라 괜찮다면 집시도 수업을 해 줄 수 있는지, 부부 모두에게 2시간씩 수업을 받고 싶다고 했다. 집시와 메이는 이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고 오전과 오후에 나눠 두 번에 걸쳐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현재 집시는 미국계 콜센터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밤 11시에 출근해서 아침 8시에 퇴근한다. 그의 회사가 바로 SM 몰 안에 있기 때문에 그레이스 레지던스로 오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오전 수업은 퇴근 후의 집시가 맡고, 오후 수업은 집으로 돌아온 집시에게 아이를 맡긴 후 메이가 수업을 하러 오기로 했다. 집시가 피곤하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두 사람은 괜찮다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 목소리로 나를 안심시켰다.
내가 머물고 있는 건물 18층에 집시의 형이 살고 있다. 아이를 출산하면서 '경력단절'을 겪게 된 메이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집시의 형수가 우리 집주인이 올린 글을 보고 메이에게 알려준 모양이었다. 그렇게 이 부부와의 인연이 닿게 되었다. 또한 우리의 인연을 만들어 준 집시의 형수를 우연히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났다. 그녀가 먼저 나를 알아보았다. '어린 사내아이와 함께 지내는 한국인 여자'는 그 건물에 (아마도 그레이스 레지던스 통틀어) 나 하나뿐이었다. 나에게 먼저 자신이 영어 과외교사를 소개한 사람이라고 밝히면서 그들이 마음에 드는지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둘 모두 선하고 좋은 사람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집시의 형수도 그 부부야말로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며 나의 말에 기쁘게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이웃의 모습으로 서로 웃으며 살가운 말들이 오고 갔다.
세상에! 예상하지도 못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지내는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얼마 전에 읽은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작가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여행자였던 자신이 경험한 '환대'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하였다. "인간이 타인의 환대 없이 지구라는 행성을 여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낯선 곳에 도착한 여행자도 현지인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 이 대목을 읽을 때만 하더라도 이 문장이 고스란히 내 경험 속에서 체화(體化)될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