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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Aug 19. 2019

18일: 마인드 뮤지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던 일요일 데이트

박물관 견학

마닐라에 오기 전부터 보니파시오(Bonifacio Global City)에서 꼭 방문할 곳으로 키자니아(KidZania)와 함께 마인드 뮤지엄(The Mind Museum)을 리스트에 올려두었다. 키자니아가 직업체험 놀이터라면, 마인드 뮤지엄은 과학 박물관이다. 전시 구성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입구로 들어서서 1층 좌측은 우주과학을 테마로 하고, 반대쪽 우측은 미니어처 자연사 박물관처럼 구성되어 있다. 2층은 중력, 거울 대칭, 전기, 프리즘과 같이 간단한 과학 원리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설치물들이 몇 가지 배치되어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전시 구성이 짜임새 있고 흥미로웠다.


오늘따라 아이가 통 일어나지 않는다. 기다리다가 안 되겠어서 미리 밥을 짓고 간단히 김밥을 만들어 아이를 깨워 아침을 먹였다. 10시 30분이 넘어서야 문 밖을 나설 수 있었다. 11시가 다 되어 도착한 박물관은 짙은 회색의 세련된 디자인으로 주변의 획일된 고층 건물과 확연히 구별되었다. 2012년에 개관한 이 박물관은 계속 자라나는 세포 구조에서 모티프를 얻어 설계했다고 한다.


마닐라의 "마인드 뮤지엄(The Mind Museum)"


아이에게 무슨 과목이 제일 좋은지 물으면 늘 "과학"을 꼽는다. 특히 우주와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지 좋아한다. 특히 별자리를 찾고 태양계 안팎에 있는 행성의 이름과 특성을 반복해서 확인하고, 그 지식을 나에게 자랑하듯이 늘어놓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아이와 마인드 뮤지엄에 오면서 지난번 키자니아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미리 온라인으로 구매한 티켓을 매표소에서 입장권으로 교환한 뒤 입구로 들어섰다. 안은 어두웠고 천장에 매달린 몇 개의 행성과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인드 뮤지엄의 우주 과학실


세련된 전시물들은 교육적 성격이 강했는데, 그중에는 별의 탄생과 죽음의 과정을 모형과 함께 자세히 보여주거나, 우주의 생성 원리 정교한 일러스트를 이용하여 친절하게 잘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달이 삭에서 보름달까지 변화하는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거대한 체험형 설치물이 있었다. 해당하는 시기의 버튼을 누르면 벽에 설치된 큰 달의 빛이 반응하면서 지구에서 관측되는 다양한 모습의 달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이는 여러 설치물 중에서도 우주의 생성 원리를 설명한 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비록 그곳에 적혀있던 수많은 복잡한 영어 용어는 알지 못했지만) 우주과학에 무심해 보이는 엄마에게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누려고 애썼다.


변화하는 달 형태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체험 시설물


우주과학에 무지한 엄마를 계몽시키기 위해 애쓰는 아이


체험중심 교육

마닐라 마인드 뮤지엄에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관람을 해보니 (성인들에게도 좋겠지만) 특히 지적 호기심의 싹을 틔우기 시작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정말 좋은 박물관이었다. 규모도 아담해서 반나절이면 충분히 이 곳의 모든 전시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또한 지루한 설명식 전시물이 아니라 여러 과학적 원리를 직접 체험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VR 기어를 착용하고 우주선 내부를 탐험하는 체험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곳을 방문한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놀이공원에서나 즐길법한 감각적 유희를 응용하여 회전하는 우주 공간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도록 한 탑승물도 인상적이었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박물관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VR 기어로 생생하게 체험하는 우주공간


회전하는 우주 공간 속으로


특히 시간별로 계속 상영되었던 여러 가지 주제의 우주 다큐 관람이 가장 즐거웠다. 상영관이 크기는 작았지만 360 돔 상영관이라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즐기며 거의 누운 자세로 캄캄한 밤하늘을 쳐다보듯이 영상물을 즐길 수 있었다. 둥근 하늘 위로 펼쳐지는 하늘과 머나먼 우주의 영상이 다이내믹하게 펼쳐지면서 가끔 좌석이 회전하거나 위아래로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했다. 해설은 모두 (당연히) 영어였기 때문에 나는 아이의 한쪽 귀에 손을 대고 귀속말을 하듯이 빠르게 (어설프나마) 통역을 해주었다. 종종 내가 잘 모르는 별의 이름이나 용어는 별 수 없이 들리는 대로 전달해주면 아이가 그것들을 다시 나에게 설명해주기도 했다. 서로가 배우는 것이 많은 시간이었다.


엄마와 아들 모두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돔 상영관


모두 다 함께 달의 표면에 착륙


그 외에 우주과학관 건너편에 있던 자연사 전시관은 티노사우르스의 모조 뼈 화석이 분위기를 살려주었다. 영화 <쥐라기 공원>을 떠올리게 하는 티노사우르스 앞으로 높게 관람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가족 단위 관람객들은 그 위에서 기념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 외에 화산 폭발의 원리나 다윈의 진화론을 그림으로 쉽게 설명해 놓은 전시물 등이 보였다. 한 바퀴 둘러보니 마인드 뮤지엄은 우주과학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과학박물관이 다루는 주제와 내용의 범위를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시 구성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서 간단한 과학 실험들을 해보았다. 90도로 꺾인 거울의 반사, 만화경 체험, 그리고 중력과 바람의 원리 등이 간단하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 꾸며져 있었다. 단순하고 반복되는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는 역시 이곳을 좋아했다.


전 세계 자연사 박물관의 마스코트


신나게 돌려보자, 만화경


아이가 유독 재미있어했던 거울 반사, 대칭 실험


졸리비(Jollibee)

아이는 음식에 대한 탐험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먹어본 것들과 형태나 냄새가 비슷할 때 겨우 한 입 정도 시도해본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바로 건너편에 졸리비가 보였다. 박물관 출구에서 겨우 스무 걸음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웠다. (대한민국에 롯데리아가 있다면 필리핀에는 졸리비가 있다.) 다른 선택은 필요 없었다.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는 아이를 데리고 졸리비로 들어가 스파게티와 치킨 밥 세트를 시켰다. 주말의 졸리비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옆에서는 꼬마 숙녀들의 생일파티가 한창 중이었다. 아이는 졸리비 치킨도 겨우 한 조각 정도 먹는다. 무엇인가 미묘하게 한국식 치킨과 맛이 다른 모양이다. 예민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래서 이번에는 (먹을지 안 먹을지는 모르겠지만) 스파게티도 함께 주문했다.


졸리비의 치킨과 스파게티


아이는 뜻밖에 졸리비 스파게티가 너무 맛있다며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물론 아이 몫의 치킨은 거의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그동안 먹어본 스파게티 중에서 여기 졸리비 스파게티가 가장 맛있다며 나름 맛 평가도 빠트리지 않았다. 역시 아이의 입맛은 나를 닮아 서민적인 듯싶다. 오늘 졸리비에서의 점심은 303페소(약 7000원)로 가성비가 역대 최고였다.


산책과 카페

소박하지만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보니파시오 하이 스트리트(Bonifacio High street) 주변을 산책했다. 날씨가 여행자의 마음을 마구 들뜨게 했다. 하늘은 새파랗고 기온은 더운 듯 적당했으며 거칠 것 없는 시원한 바람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끈적임 없이 쾌적한 기온이었다. 아이도 내 손을 잡고 뒤꿈치가 들린 가벼운 발걸음으로 종알종알 떠들며 연신 싱글벙글했다. 우리 둘 다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 마주 잡은 손으로 전해졌다.


세련된 빌딩 숲 도심을 걷다가 한적한 공원을 마주하고 있는 한산한 카페에 들어가 잠시 쉬기로 했다. 아이는 플레인 치즈케이크를 나는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그동안 마닐라에서 마신 커피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맛이었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카페라테를 한 잔 더 주문했다. 눈 앞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가 보이고 길고양이가 바로 내 앞에서 낮잠을 청했다. 간간히 근처 주민들이 강아지들을 산책시키며 카페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잔을 즐기고 일어섰다.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여유롭고 조화로운 시간이었다. 아들과의 데이트가 이렇게나 즐거울 수 있다니, 이 모든 공을 보니파시오의 쾌적한 환경과 환상적이었던 날씨 그리고 기가 막히게 맛있었던 카페라테에 돌려야겠다.


일요일 오후의 여유로운 카페 풍경


치크 케이크와 카페라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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