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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츄 Jun 12. 2017

6월 첫 주말

남편 사촌 결혼식

 나는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며, 관심사가 동일하지 않은 사람들이 20명 이상 모이는 자리에 잘 가지 않는다. 

20대에는 호기심에 각양각색의 군상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지만, 관심사나 가치관이 너무 다르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다 보니 그런 자리에 나가서 겉도는 이야기를 또다시 해야 할까라는 의구심이 들고, 그런 생각만으로도 조금 피로하달까. 

그래서 어떤 사람과도 이야기를 오랫동안 잘 나누고 금세 친구가 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고 존경스럽기는 하지만, 내가 그런 성격이 아닌 걸 굳이 바꾸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나는 사회적 생물체이므로, 가까운 친구나 가족의 결혼식이나, 내가 꼭 축하해 주고 싶은 사람들의 결혼식에는 참석한다. 


 그래도 남편 사촌들은 몇 번 만난 적이 있기 때문에 결혼식 참석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무리하게 '우리 가족은 모든 것을 함께하는 정말 행복하고 가까운 사이!' 같은 모습을 보이려는 계시어머니가 부담스러웠을 뿐. (사실 그 정반대이거늘.)

서구의 사람들이 개인주의적이고 가족 간에 왕래도 명절 때 정도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만난 대부분의 영국 친구들은 굉장히 가족 중심적이다. 다만, 가족의 범주가 사돈에 팔촌 같은 대가족으로 확장되지는 않고, 부모와 자식 정도의 소가족 범위에 머문다. 가족 개인의 결정에 강요나 간섭은 확실히 덜 하다. 어디를 가도 자식 걱정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다만, 인생의 결정에 있어 꼭 하라- 절대로 하지 말라-는 식의 대놓고 강요는 하지 않는다. 돌려 돌려 말하는 식. 


 근데, 참 드물게 있는- 자식의 인생을 좌지우지하고 싶어 하고, 면전에서 아이에게 윽박과 강요, 비수를 꽂는 일을 일평생 해오신 중년 부인이 우리 '계'시어머니이시다. 어릴 때 이 중년 부인에게 정서 파괴를 당한 자식들은 그래서 가능하면 어머니에게서 멀리 떨어져 살고 싶어 한다. 한 명은 태국 치앙마이에, 한 명은 콘월에(차로 4시간 반 거리), 한 명은 리버풀(4시간 거리)에서 학교를 다니지만, 이 막둥이마저 내년에 학업을 끝내고 미국으로 갈 계획이다. 이 세 명이 친자식이고, 내 남편은 재혼한 남편의 자식이다. 지금은 다들 나이가 먹고, 결혼도 하고 자식도 생기면서 인내와 관용심으로 버티긴 하는데, 아이들이 대부분 10대 후반, 20대였던 시절에는 밥상머리 끝은 항상 비아냥과 울분 섞인 말타툼이었다.

 외국인인 데다 아시안, 고정 수입 없는 예술가라는 직업까지- 이 중년 부인에게 무시당할 이유 삼종세트를 다 갖춘 나로서는 짜증을 불러오는 말들을 들어도 일단 그냥 넘긴다. 가까이 사는 데다 남편이 원만한 인간관계를 중요시하고, 이 분 특징이 혼자서 이랬다 저랬다 하는 식이라서. 종종 필요 이상으로 잘 해 줄 때가 있다. 

그게 뭐든 가능하면 엮이지 않으려고 노력만 한다.

겉으로는 별 일 없는 듯이 10년째 인사치레에 가까운 대화 정도나 나누는 사이인데, 이 분이 자꾸 자신을 '배다른 자식들과도 친자식처럼 친밀하게 잘 지내는 성공적인 재혼, 행복한 가정에 사는 괜찮은 사람'으로 남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게, 아- 부담스럽다. 그건 정말 아닌데. 그런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가족들이 모두 자신이 계획하고 원하는 식으로 행동하고 삶을 꾸리기를 바라는 조절 강박까지 있다. 


 그러니까, 지난 주말에 다녀온 사촌의 결혼식이 그 절정이었다. 온 가족이 머물 숙소로 집 한 채를 얻은 것까지는 이해할 만한데, 이것을 '가족여행'으로 혼자 생각하고 계획하고는, 자기 뜻처럼 가족들이 신나 한다거나, 한 몸처럼 다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혼자 부화가 치밀기 시작한 거다. 그래서 다시 자식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아... 

여차 하면 나도 막말 어퍼컷 크게 한 방 먹이고 서울로 튀던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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