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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Jul 28. 2023

스페인: 양당제와 다당제 사이의 림보에 빠지다

2023년 7월 23일의 스페인 총선 결과는 지금부터의 정치를 더욱 예측불가능한 방향으로 안내하고 있다. 가장 많은 의석수를 얻어 제1정당이 되는 데 성공한 PP당은 오히려 집권이 요원한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했고, 제2정당인 PSOE당은 지금 이 순간 스페인 정치에서 가장 민감한 정당인 카를레스 푸지데몬(Carles Puigdemont)의 Junts per Catalunya의 마음을 얻어야만 아슬아슬하게 집권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제3정당인 Vox는 19개 의석을 잃으며 집권 정당을 결정짓는데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렸고, 새롭게 등장하며 열풍을 일으킨 욜란다 디아즈(Yolanda Díaz)의 Sumar는 예상보다 적은 31개 의석에 만족하며 나중을 기약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전체 350개의 의석 중 258개의 의석수가 양대 정당에 돌아갔다. 극우정당은 19개 의석을 잃었고, 카탈루냐/바스크를 비롯한 지역 정당은 14석을 잃고, Unidas Podemos를 계승한 Sumar는 7석을 잃었다. 이 모든 의석수에 더해 궤멸되어 사라진 시민당(Ciudadanos)의 10석이 그대로 PP로 돌아가 총 47석을 추가하며 136석의 승리자가 된 것.

우선 흥미로웠던 지점은, 극우정당의 몰락과 대비되는 중도우파 정당의 압승이었다. 2019년 PP/Vox의 의석수가 나름 비슷해지며 국내외 언론의 주목과 우려를 받은 것과 달리, 2023년 Vox의 의석수가 쪼그라든 것과 달리 PP의 의석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9년 PP와 Vox의 의석수는 각각 89석과 52석, 총 합치면 141석이다. 완전히 궤멸되어 사라져 버린 시민당(Ciudadanos)의 10석까지 합치면 2019년의 우파는 총 151석을 차지했다. 2023년의 총선에서 우파는 지역 우파 정당인 UPN(Unión del Pueblo Navarro)까지 170석을 얻어냈지만 이 중 80%에 달하는 136석이 오롯이 PP에게 돌아갔다. 통상적인 논리로 생각해 보자면, 한 사회가 어떠한 이데올로기로 기울기 시작한다면 해당 영역의 전체 사이즈가 커지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린 것일까?

다양한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합당한 설명은 PP가 Vox의 이미지를 잠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 대표인 알베르토 누녜즈 페이호(Alberto Nuñez Feijoó)는 계속해서 공개석상과 토론에서 뒷받침되지 않은 날조와 거짓말로 좌파 연정 정부를 비난하고, 언론의 팩트체크에도 아랑곳 않고 본인의 거짓말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PP당의 또 다른 실세 이사벨 디아스 아유소(Isabel Díaz Ayuso)와 함께 산체스주의(Sanchísmo)를 타파하고 전통적인 스페인의 가치를 되찾겠다는 주장을 일삼기도 했다. 이러한 좌파에 대한 직접적인 적대감과 보다 극우정당에 가까운 프로파간다 정치는 Vox의 이미지를 도리어 퇴색시켰고, 정치의 중심에서 Vox를 밀어내버리는 데 성공한 셈이다.

15-M의 사회운동으로 활력을 얻었던 스페인의 다당제는
전반적인 우경화로 힘을 잃었지만
극단적인 양당제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고,
그 결과 누구도 쉽사리 집권할 수 없는 림보 상태에 놓였다. 

언뜻 보기에는, 그나마 집권의 가능성이 좀 더 큰 PSOE의 페드로 산체스(Pedro Sánchez)가 장기적으로는 이번 총선에서 승리했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우려되는 지점은 Vox의 등장으로 인해 PP당이 더욱 극우에 가까운 방향으로 기울었고 이미 충분한 기반을 가진 정당이 극우에 소구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향후 스페인의 정치 사회에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될 지에 대한 걱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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