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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Dec 11. 2023

사우디아라비아를 스쳐 지나가면서,

어쩌다 보니 2030 엑스포 유치의 실패로 나라가 떠들썩한 시기에, ‘오일 머니를 앞세워 우리의 엑스포를 빼앗아 갔다’고 지탄받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출장을 오게 되었다. 며칠 되지 않는 시기 동안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치며 느낀 점은, 여타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유의 깊게 살펴보면 모든 것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고, 단순히 하나의 단어로 정의 내린다는 것은 의외로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었다. 막연하게 두렵게 느껴졌던 중동과 사우디아라비아도 며칠 지내다 보니 친숙하게 느껴졌고, 우버와 애플페이, 그리고 범람하는 영어 덕에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친숙해질 수 있었다.

뒤틀려버린 생활시간대와 시간관념

출장을 와서 며칠 돌아다니면서 지나치게 한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모든 회의 약속이 11시 이후인 것이 상당히 의아했는데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너무나 더운 나머지 사람들이 낮에 일을 할 수가 없었고, 해가 지고 난 뒤에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곳이었던 것.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을 만나 말을 들어보니, 현장은 아예 새벽과 해가 어느 정도 떨어지고 난 늦은 오후 시간대의 두 가지 근무표로 운용될 정도라고 한다. 심지어 도시 중심부에 있는 구 시가지  모든 상가들이 오후 5시부터 열기에 낮에 간 나는 황량하고 삭막한 환경을 마주했다. 반면, 해가 지고 나면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근처 공원에 나와서 양탄자와 의자를 펼쳐놓고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를 먹거나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사람을 보채고 쪼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신선한 조건

사우디에서 머물면서 친절하지만 답답하고 무능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를 할 때에도 상당히 우호적인 자세로 제시되는 모든 것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상당히 놀랐다. 문제는 그다음에 발생하는데, 보통 지금까지 내가 마주쳤던 상대자들은 일의 진척 상황 유무와는 상관없이 최소한 연락은 되었었다. whatsapp 메시지를 보내면 어느 정도 뒤에 읽음 확인이 뜨고 난 뒤 그제야 ‘확인해 보겠다'는 말이 돌아오는. 최소한의 연락이 되기 때문에 상대방과의 끊임없는 연락을 통해 사람을 보채고 일을 진척시키는 것이 가능했는데, 사우디에서 만난 사람들의 경우 이러한 연락 자체가 원천적으로 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각기 다른 업체와 기관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놀랍게도, 단순한 메시지도 아예 읽지 않는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이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 일주일 전에 보낸 whatsapp에 녹색 tick이 뜨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위아래로 아웃소싱 되는 인적 자원, 인프라와 소프트파워

이런 사람들을 맞이하다 보니, 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모두 오후 5시 이후가 되어서야 기어 나와서 밤 10시에 커피를 마시고 있는 기이한 행태를 보이고, 사람들은 도무지 일을 할 생각이 없는 것 같고. 그렇게 찬찬히 살펴보다 보니 깨달은 점이 있었다. 회사의 실무자들과 중간 관리자들은 모두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고, 거리에 보이는 단순 노동자들은 모두 아랍인이라기엔 동남아시아인에 더 가까운 사람들이다.

결국 나라가 자체적으로 체계를 잡지 못하고 단순히 해외로부터 체계를 수입해 온 뒤, 해외의 값싼 인력으로 그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강하게 받는데, 과연 자국 인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물론 공공 부문에 있는 사우디 국적 인력들을 만나보면 10년, 15년 전에 국가 차원에서 해외로 보내서 교육시킨 인재들이 이제 사우디로 돌아와서 공공 분야에서 많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직접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는 인식을 받지는 못했다.

물론, 왕국이라는 특성상 이러한 체계를 능가하는 Royal Connection과 그들의 영향력이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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