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핸드폰이 싫었다. 한 손에 쥐고 걸어 다니며 한 손으로 메시지를 칠 수 있는 사이즈가 좋았고 응당 그러하기에 휴대폰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 생각했다. 매년 새로운 기종이 나오면서 화면이 커지고 카메라의 개수도 하나 둘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저 무겁고 큰 것을 주머니에 넣고 손에 쥐고 다닐 수는 없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치가 문제였다. 화면은 화면이요, 베젤은 베젤이라고 굳게 믿던 나에게 화면의 영역을 침범하는 베젤이라는 콘셉트는 왠지 모를 거부감을 일으켰고, 노치가 사라지기 전엔 절대로 다음 폼팩터로 넘어가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위기는 있었다. 사이즈와 노치 중 그나마 후자만을 견디면 사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아이폰의 미니 라인. 아이폰 13을 끝으로 더 이상 미니 기종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루머가 파다하게 퍼지면서 결국 이 마지막 기회를 잡아 휴대성이라도 지켜내며 목숨을 연명해야 할까 하는 꽤나 긴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등장한 Dynamic Island라는 이름의 혁신
게다가 온갖 호들갑을 떨며 도입된 USB-C 커넥터를 기다렸던 듯 나의 아이폰 SE는 홈 버튼 불량을 일으켰고, 2024년 청룡의 해를 맞이해 나는 푸른빛의 아이폰 15를 구매했다. 많은 생각이 있었지만 노치 디자인을 더 이상은 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같은 것도 있었고, 홈 버튼과 베젤이 결국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인 결과이기도 했다. 그렇게 2015년의 아이폰6S를 시작으로 아이폰 7, 그리고 아이폰 SE를 거치며 꾸준히 사용해 온 4.7인치 디스플레이의 구형 아이폰 폼팩터와 9년 만에 작별을 고했다.
홈버튼이 사라지면서 걱정되었던 건 크게 두 가지였다; 과연 지문 인식이 아닌 안면 인식을 신뢰하며 원활하게 쓸 수 있을지,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새로운 작동 방식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우스운 고민이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화면을 직접적으로 스와이프 하는 방식에 익숙해졌고, 홈 버튼을 두 번 누르는 방식에 대응하는 가장자리 스와이프 혹은 지긋이 스와이프 하는 방식에도 곧 익숙해졌다. 페이스 아이디는 또 얼마나 스무스하게 작동하는지. 잠금장치가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문이 들 때마다 얼굴을 잠시만 다른 곳으로 돌려도 바로 멈춰버리는 안전한 암호화 구조에 적잖이 놀라게 되었다.
의식하지 않은 채 같은 형태의 기계를 10년 쓰기만 해도, 새로움에 대한 반발감이 모르는 사이에 나를 지배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한 편, 혁신이라 생각했던 Dynamic Island와 USB-C 단자에 대해서는 의외로 다른 느낌을 받았다. 전자는 결국 화면을 침범하는 베젤의 다른 형태였고, 무선 충전이 일상화된 환경을 살고 있는 나에게 라이트닝 단자는 사실 있으나 없으나 한 구멍에 불과했다. 물론 USB-C를 통해 다양한 확장의 가능성이 열린 것은 맞지만 아직까지는 그 확장성을 경험할 기회가 오지 않은 것 같고, 결국 영상을 재생하게 되면 화면의 일부는 까맣게 남아있는 것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막상 아무것도 아닌 것을, 왜 이렇게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일까?
마지막으로, 지금 가장 인상적인 것은 되려 MagSafe와 큰 화면이 주는 눈의 편안함이다.
MagSafe, 핸드폰을 새로 사는 과정에서 애초에 고려하지도 않았던 충전 방식. 다양한 거치대와 스탠바이 화면 등을 통해 핸드폰이 얼마나 다양하고 흥미롭게 일상생활에서 사용될 수 있는지를 느끼며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는 중이다.
게다가, 막상 손에 잡고 들어본 아이폰 15는 그렇게 무겁지 않았고, 9년 동안 4.7인치 화면을 쓰면서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던 지라 약간의 묵직함 대신 얻게 된 맑고 큰 화면에 나도 모르게 편안함을 느꼈다. 두 번의 백내장 수술, 그리고 한 번의 망막박리 수술, 그리고 다가오는 녹내장 탓에 나에게 필요한 것은 맑고 밝고 큰 화면이라는 것을 막상 큰 화면이 손에 쥐어지고 나서야 깨닫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