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선씨, 오랜만이에요.
우리가 헤어지고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게 3월 초였으니, 어느새 4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어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저는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정신없는 생활이었어요. 회사는 언제나 그렇듯이 한 달이 멀다 하고 계속 뭔가 바뀌고 있어요. 팀의 인원들도 더 많아지고, 역할들도 조금씩 바뀌었어요. 어쩌면 변하지 않은 건 저인 지도 모르겠어요. 여전히 삶의 대부분의 열정과 시간을 회사일에 쏟고 있습니다.
희선씨와 헤어지고... 많이 힘들었어요. 우리가 사귀었던 게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말이죠. 헤어지자고 말할 땐 이렇게 힘들지 몰랐어요. 희선씨보다 더 오래 사귀었던 연애도 어찌어찌 잘 이겨냈었기에, 너무 쉽게 생각한 게 아닌가 싶어요.
희선씨가 나오는 꿈을 여러 번 꾸었어요. 어려움에 빠진 희선씨를 외면하지 못하고 도와주는 꿈도 있었고, 다시 우리가 사귀게 되어 함께 놀러 가는 꿈도 꾸었어요. 꿈 속이었는데도, 희선씨와 함께하면서 느꼈던 그 감정들이 생생하게 다시 떠올랐어요. 편안하면서도 배려받는 느낌. 나를 존중해주면서도 전적으로 신뢰하는 눈빛. 희선씨의 손을 잡았을 때의 감촉과 나긋한 목소리까지. 그래서 잠에서 깨면 아주 아주 마음이 많이 아팠답니다.
희선씨는 어떠셨나요? 헤어지자는 제 말에 더 많이 아프셨겠죠? 하지만 금방 이겨내셨나요? 혹시 이미 다른 좋은 인연을 만나셨나요? 희선씨처럼 아름다운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희선씨의 소식은 되도록 모르려고 노력합니다. 참 바보 같죠. 이럴 거였으면 왜 헤어지자고 했을까요. 지금 후회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7월 16일. 오늘은 제 생일이었어요. 아마 희선씨도 알고 계셨을 거예요. 저는 오늘 하루 종일 혹시나 희선씨에게 연락이 올까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쩌면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별을 통보한 입장에서 참 염치없다는 거 잘 알아요. 하지만 언제나 저보다 먼저 다가와준 당신이었어요. 소개팅을 주선한 친구를 통해서 호감을 표현한 것도, 우리가 사귀기로 한 날 내 손을 잡아 준 것도, 그리고 희선씨를 데려다주고 돌아가려는 그 버스 정류장에서 한 발작 다가와 제 볼에 키스를 해 준 것도... 인연을 만들어감에 머뭇거렸던 저보다 현명한 당신이었기에, 어쩌면 오늘,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연락이 오면,
만약 당신에게 문자 한 통을 받는다면.
제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것 같아요.
누군가는 답답해하며 이렇게 얘기할 거예요.
"그렇게 아직 마음이 남아있다면, 네가 먼저 연락을 하면 되잖아!"
하지만 그 날 당신을 보내며, 차갑게 거절했던 그 말들과 표정이 스스로를 무겁게 짓눌러 차마 당신에게 먼저 연락을 못하겠어요. 저에게는 당신과의 인연을 되돌릴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미 당신이 저를 잊고 그 누군가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면, 스스로 떠나버린 이가 거기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밤 11시가 넘어가네요. 이제 저의 서른세 번째 생일이 딱 1시간 남았어요.
아마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것조차도 제가 받아들여야 할 당신의 의사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제 1시간이 지나고 나면, 되도록 당신을 잊어보려 노력할게요.
여름을 좋아했던 희선씨.
언제나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저도 더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할게요.
그럼 이만,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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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의 모든 인명과 지명은, 실제와 다르게 변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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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