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이야긴 언제나 짜릿하다. 엠마가 엠마였던 시절을 그녀는 모두 부정하게 된 건 아닐까, 걱정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일까, 늘 고민하게 된다. 아니면 애초에 나라는 사람을 두 명 이상으로 부풀릴 수 있는 거라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키티쉬, 그리고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엠마. 그렇게만 한다면, 매 순간이 그때의 나로서, 진심이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풀이 한창인 여름이다. 여름이 여름인 줄도 모르고 더운 스카프를 어깨에 두르고 다니던 날들이 있었다. 풍족하고 바쁜 일상들이지만, 땅에서 힘차게 솟아난 것들처럼 태초의 모습을 향해서 살아가고 싶었던 때가, 엠마에겐 있었다. 이름 모를 풀과 꽃 같은.
두 번째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 그건, 첫 번째의 이름을 잊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허락한 것일까. 언젠간 기억나지도 않게 기억의 저편에 아주 묻어버려도 괜찮다고, 결심 같은 지난날의 나의 허락. 하지만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흔적이 있었다. 바로 ‘우하’. 맛으로 과거를 기억한다는 건 꽤 강렬하다. 눈만 감으면 혀끝으로 추억의 감각을 느낄 수가 있다. 언제든 레시피를 읊으며 맛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녀는 안토니오가 요리사인 게 좋았다. 언제든 그 감각에 대해서 털어놓을 수 있을 테니까.
엠마는 안토니오가 지닌 열정이 부러웠다. 결핍에서 오는 열정. 불가피한 열정. 가장 최선을 다한다는 방법이, 열정을 연료로 힘차게 꿈을 꾼다는 것. 지금의 엠마에겐 그게 필요했다. 그녀는 그가 당찬 요리사의 꿈을 욕망하듯 자신을 욕망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도 자신의 욕망을 주저하지 않았다. 널브러진 소파에 약간 먼지가 일렁이는 바닥. 바깥의 흙이 이 공간에 굴러다녀도 참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는 태초의 모습으로 그의 옆에 누워 있다. 돌이켜 보면, ‘엠마’라는 이름을 선택할 때도 늘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단 것을 기억해 낸다. 키티쉬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그녀는 안토니오의 수염을 매만지며 지난 자신을 용서하기로 한다.
엠마는 에도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어쩌면 태어나서 그녀가 처음으로 후회한 선택. 그녀는 정확하고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려고 했을까? 아니면 그저 둘러대기를 선택했을까. 다급하면 모든 게 엉망이 되고 만다. 가장 사랑하는 것을 잃은 다음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자유로워졌다. 잃을 것이 더 이상 없기에 자신의 욕망을 숨길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천장에 부딪치며 불안하게 날아다니는 까마귀. 모든 책임을 버리고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 욕망을 고백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고뇌가 있었다면, 그리고 그 짙은 흉터를 평생 가슴 한구석에 표식처럼 지니고 다닐 각오였다면, 난 기꺼이 엠마의 짐가방을 챙겨주며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울 자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