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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Gwon Mar 11. 2024

의사도 죽음이 어렵다

웰다잉 인터뷰

의사는 직간접적으로 환자의 죽음을 자주 경험한다. 그런데 병원 실습에 나가서 잠깐씩 뵙는 교수님, 레지던트, 인턴 선생님들은 다들 의연해 보였다. 괜찮을 수가 없을 텐데 선배 의사 선생님들은 환자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웰다잉 인터뷰에서 여쭈어보았다. 다양한 반응을 볼 수 있었다. 인터뷰를 거부하시거나 '환자를 살릴 생각을 해야지 그럼 환자를 죽일 거냐'하는 분도 계셨고, 환자는 천국에 가실 거라고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분도 계셨고, 다음 환자도 봐야 하니까 감정이 올라오는 걸 꾹 참는다는 분도 계셨다.


국내 대학병원 내과에 근무하시는 P교수님은 담당 암환자가 사망했을 때 당신께서 좀 더 많은 지식을 알고 있었다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죄책감과 다른 사람의 슬픔을 보며 느끼는 연민, 그리고 인간의 불완전성에서 오는 절망감으로 인해 힘들다고 하셨다. 그래도 다음 환자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슬픔과 연민을 최대한 느끼지 않으려고 애써 잊으려고 한다셨다. 또 다른 내과 교수님 K는 주변에 잘 이야기하지 않고 울고 술을 마시면서 홀로 힘듦을 삼킨다고 하셨다. 혈액암을 보시는 L교수님께서는 의사로서 말기 환자를 보면서 어려운 점으로 무력함을 꼽으셨다. 환자가 낫는 걸 보고 싶어서 의학을 배웠는데 말기 환자는 나아지는 것 없이 자꾸 나빠지다가 돌아가시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어느 의사는 임종기 환자를 볼 때 자신은 어느 선까지만 진료하고 그 이후에는 다른 병원으로 보낸다고도 하셨다. 완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떤 의학적 목적을 갖고 진료할지 의사 스스로 주관이 뚜렷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영국 호스피스 실습 때 만난 완화의학 전문의 J는 아버지 임종도 당신께서 의사로서 돌보셨다. 아버지 임종을 떠올리게 하는 환자를 볼 때에 힘들었다고 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즈음 비슷한 연배, 같은 진단명의 말기 환자를 보면 아 우리 아버지도 저렇게 돌아가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힘들었다고 하셨다. 임상 경험이 적을 때에는 이런 생각으로 힘들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감정적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하고 주변에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 더 힘들었다고 하셨다. 


괜찮은 줄 알았던 선배 의사 선생님들은 알고 보니 대부분 번아웃을 경험했고, 환자 앞에서 되도록 감정을 숨기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계셨다. 다음 환자를 바로 진료해야 하고, 환자가 의사를 걱정하게 해서는 안되며, 환자가 의사에게 기댈 수 있게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환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으니 감정에 휩쓸림을 지양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위태로워 보였다. 환자도 부자연스러운 담당 의사에게서 벽을 느끼지 않을까. 번아웃은 죽음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누르기만 해서 생기는 것 같았다. 그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의사도 죽음이 어렵다.


의사는 의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기도 하다. 의사도 당연히 감정을 느끼고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 환자를 잃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을 건강하게 소화시켜야 번아웃을 줄이고 의사이자 한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을 인터뷰에서 여쭈었다. 


여러 선생님께서 의사가 환자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도 괜찮다고 하셨다. 국내 대학병원 내과에서 근무하시는 L교수님께서는 특히 젊은 의사가 하는 실수로 의사가 자기감정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꼽으셨다. 감정을 숨기는 이유는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의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힘든 감정에 휩쓸리는 것이 무섭고 스스로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라고 짚으셨다. 일본 호스피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쿠니히코 이시타니 선생님께서는 인터뷰에서 당신께서 운영하는 호스피스 병원에서는 의료진에게 울어도 된다고 교육한다셨다. 인간 대 인간으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자 임종 후 병원 내 조문실을 만들어 유족뿐 아니라 의료진도 언제든 찾아가 애도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감정이 아니더라도 사적인 이야기를 환자와 나누는 것도 의사가 감정을 건강하게 드러내고 교류하는 데에 도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프기 전 건강했던 환자의 삶에 관심을 갖고 물어본다든지, 예술가 환자가 만든 작품을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단, 의사가 감정을 드러낼 때와 드러내지 말아야 할 때를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신 분도 계셨다. 환자 성격에 따라 의사 감정을 어느 정도 개방할지 결정해야 한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강박적인 환자에게는 의사가 친근하게 감정을 보이며 다가가는 것이 좋을 수도 있으나, 감정이 불안정하고 충동적인 환자에게 의사가 섣불리 감정을 보이면 오히려 환자의 감정 조절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의사가 감정을 드러내는 것 외에 의료진끼리 서로 지지체계를 만드는 것도 의사의 번아웃 방지와 감정관리에 도움이 된다. 미국의 어느 호스피스에서는 환자를 잃을 때마다 의료진이 느끼는 상실감을 줄이기 위해 병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그 주에 돌아가신 환자분들을 의료진끼리 추억하며 그분들의 이름이 적힌 돌이나 종이학을 모으는 시간을 갖는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호스피스 T에서는 의료진을 위한 정신과 상담이 상시 준비되어 있고 그 수요도 많다. 이 호스피스에서는 동료 의료인의 지지를 매우 강조해서 동료가 오래 일하거나 휴식을 취하지 못한 상태는 아닌지 서로 돌봐주며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결국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는 것보다는 의사도 인간으로서 환자와 감정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이 보다 건강한 유대관계를 위해 필요하다. 다만 감정과 사적인 이야기를 어느 정도 드러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의사마다, 만나는 환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균형점을 잡아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평소에 의사이자 한 인간으로서 죽음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의학교육은 물질적인 것과 질병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내가 하는 치료가 환자의 질병 자체에 미치는 영향을 아는 것에서 더 나아가 환자의 삶 곳곳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환자와 진심 어린 소통을 할 수 있을 때에 의사도 의사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더욱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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