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 한번 살아보겠습니다] 작문의 지음
브런치에서 구독하던 의사 작가 선생님인 ‘작문의’님이 얼마전 책을 내셨다. 작년에 인턴을 하셨는데, 인턴평가에서 A를 받고 경쟁률 높은 성형외과에 합격하셨다. 스스로도 인턴생활을 돌아봤을 때 후회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신다. 인턴으로서 경험한 병원 이야기와 성공적인 인턴생활을 위한 꿀팁을 이 책에 담았다.
예비인턴인 나는 어떻게 하면 인턴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많은데 마침 이렇게 책을 내주셔서 반가웠다. 읽으면서 작문의 선생님의 어떤 점이 성공적인 인턴생활을 만든 것인지 주의 깊게 찾아보았다. 그 결과 한가지 중요한 키워드가 특징적으로 계속 반복된다는 걸 알았다. 작가님이 다른 여러 꿀팁을 생생하게 담아주셨지만, 내가 발견한 이 키워드는 작가님이 직접 꼭 집어서 “이게 중요해요!”라고 해주시진 않았다. 하지만 제3자가 봤을 때 작가님을 성공적인 인턴생활로 이끌어준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것은 바로,
감사함.
작가는 “덕분에”, “고마움”, “감사함”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었다.
의사 국가고시 준비 기간 동안 도시락을 준비해주신 도시락 가게 사장님께 감사함
대단한 스펙의 동기들과 함께 수련 받을 수 있음에 대한 감사함
바쁜데도 자신을 도와주러 온 짝턴에 대한 감사함
위급한 환자 처치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온갖 과에 연락하고 찾아가니 도움을 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함
힘들 때 챙겨주신 간호사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함
멋진 레지던트 선배님 롤모델을 찾은 것에 대한 감사함
핸드 드립 커피의 세계를 알려준 룸메이트 형에 대한 감사함
힘든 하루의 끝에 동기들과 맥주 한잔, 인생네컷 찍는 시간에 대한 감사함
당직실을 늘 깨끗하게 청소해주시는 미화여사님에 대한 감사함
1년에 두번 평일에 인턴동기들과 야유회를 가서 재밌게 놀 수 있음에 대한 감사함
병원 홍보영상에 출연해서 인턴 시간을 추억할 수 있게 해준 병원에 대한 감사함
바쁜 와중에도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고 관습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소속감과 안전감을 느낄 수 있음에 대한 감사함
전공의 시험이 다가오는 12월에 시험 준비를 위해 배려해주시는 교수님들에 대한 감사함
원하는 병원, 원하는 과에 지원하기 위한 정보를 알아봐주시는 레지던트 선배님들에 대한 감사함
우수 전공의 상과 의무기록 우수상을 받게 도와준 많은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함
쟁쟁한 경쟁자 사이에서도 성형외과 레지던트로 합격한 것에 대한 감사함
레지던트 합격 사실에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는 가족과 동기들에 대한 감사함
감사함이 바탕이 되어야 내가 일하고 있는 병원에 대한 애사심도 생기고, 동료애도 생기고,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열정도 생기고, 윗사람에 대한 존경심도 생긴다. 꾸준한 긍정적인 힘은 바로 일상에 대한 감사함에서 나온다.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끼는 독자에게도 느껴질 정도면, 직접 부대껴 일하는 동료와 윗사람 눈에는 얼마나 예뻐보였을까. 한방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생활을 해보며 여실히 느꼈지만, 잠이 부족하고, 밥은 못 먹고, 체력은 떨어지고, 일은 밀려있고, 교수님과 레지던트와 환자와 간호사 선생님 모두 나를 재촉하고, 심지어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일상의 감사함을 느끼기는 아주 어렵다.
지금은 덜해졌지만 10-20대 때 나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스스로를 계속 밀어붙였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 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번아웃이 오기도 했다. 행복하지 않았다. 과정을 즐기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랐다. 내가 기껏 해본 방법은 억지로 일과 생각의 속도를 늦추어 보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여유 있어 보이는 약간의 효과는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행복감이 들진 않았다. 그러다가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을 알게 되었다. 바로,
감사일기.
의대 편입 이후 지금까지 4년 넘게 감사일기를 쓰고 있다. 하루에 3가지씩 쓰고 있다. 감사일기를 쓰는 처음에는 무엇을 써야할지 몰라서 한참 생각했다. 무엇을 감사일기에 쓸지 염두에 두고 생활하다보니 점차 생각보다 감사할 것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거창할 것 없다. 오늘 가족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오늘 친구가 오랜만에 연락을 주어서 감사하다, 오늘 출근길에 신호등이 바로 파란 불로 바뀌어서 감사하다, 오늘 비가 온댔는데 내가 나갈 땐 비가 오지 않아서 감사하다 등등. 감사일기를 쓰면 이 책에서 작가가 자주 쓰는 단어인 “덕분에”, “감사함”, “고마움”을 저절로 많이 쓰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그 사소한 일상이 더욱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 무탈한 일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수많은 감사한 우연이 쌓인 것이므로. 오늘 저녁에 가족들이 모여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으려면 가족들이 모두 아무 사고 없이 귀가해야하고, 논밭에서 땀흘려 농부들이 추수한 곡식이 우리집 식탁까지 긴 여정을 거쳐 와야 하며, 음식을 보고 맛보고 냄새 맡고 삼키고 소화시킬 수 있는 건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소하지만 위대한 일상이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쌓이다보니 예전보다 과정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어떻게 일상의 감사함을 찾았는지를 눈여겨 보고 배운다면, 힘든 인턴 생활 속에서 에너지가 꺼져갈 때 감사한 것들을 돌이켜보며 다시 한번 힘을 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