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위화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유명하다는 중국 작가 위화.
하지만 나는 작가 한강님도, 위화님도 이렇게 주변에서 권해서 접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작가 위화님은 중국의 역사적 맥락을 소설에 잘 녹여내는 분이라고 한다.
영화로도 나왔는데 칸 영화제를 비롯해서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책에서 느낀 2가지 굵직한 주제를 꼽아보았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푸구이라는 노인이다.
그가 살아온 인생을 담담하게 나그네에게 풀어서 이야기하는 형식이다.
푸구이는 굴곡진 삶을 살아왔다.
할아버지 대부터 물려받은 많은 재산으로 호화롭게 살다가 도박으로 재산을 모두 날리고 하루아침에 대궐 같은 집에서 쫓겨나 오두막에 살게 된다.
그리고는 도박에서 자기 돈을 다 뺏어간 사람에게 자기가 살던 집도 빼앗긴다.
나 같으면 그 동네에서 얼굴 들고 못 살 것 같다.
게다가 내 집을 빼앗아간 그 사람이 내게 엣헴하고 뒷짐 지고 하대하는데 나는 거기에 굽신거리며 존대하고 그가 나를 비아냥 거리는 것에도 네네 그렇습죠 한다고?
그리고 거기에 큰 불만이 없다고?
놀랍게도 푸구이는 조아린다.
더 놀라운 건 그렇게 굽신거리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것이다.
화가 치밀어 부들부들한다든지 이 악물고 다음에 꼭 복수하겠다든지 하는 마음이 없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공감할 수 없었다.
푸구이의 기구한 삶은 이 사건에서 끝나지 않는다.
푸구이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하나씩 죽고 결국 자신만 남는다.
심지어 그 소중한 가족이 죽는 이유가 허탈하기 그지없다.
화장실 갔다가 죽고, 기쁜 마음으로 헌혈하다가 죽고, 콩을 먹다가 죽고...
그런데도 푸구이는 역시나 그저 다 받아들인다.
한두 번이 아니라 모든 변화에 이렇게 대응하는 것이 처음에는 나약하게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넉넉하게 흔들리는 힘이 느껴져 오히려 질긴 생명력으로 다가왔다.
나그네가 노인 푸구이의 삶을 들으며 놀랐던 점은 푸구이가 생생하게 과거를 기억하고 담백하게 말한다는 점이었다.
다른 노인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푸구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덮치는 일에 그저 휩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런 일들을 묵묵히 겪어내며 온몸과 마음으로 넉넉하게 변화를 흡수하는 것이 아닐까.
그 변화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 삼켜내어 소화시킴으로써 그 변화가 더 이상 이질적이고 두려운 남이 아니라 자신이 되도록 순응했기 때문에 자신의 굴곡진 과거를 자연스럽고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이 아닐지.
저자 위화는 말한다.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늘 찾았는데, 삶의 의미와 삶의 목표는 서로 다른 것인가 보다.
저자의 말은 삶의 목표를 굳이 거창하게 정할 것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삶의 목표라는 뜻 같다.
그리고 그 하루하루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서로 아끼며 살아가는 것이 삶의 의미라는 뜻 아닐까.
그런데 한 편으로는 그 시대 상황 때문에 그런 결론이 나온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삶의 의미와 목표는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내며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시대배경을 보면, 전쟁과 각종 혁명으로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때는 내 한 목숨 이어가는 것이 나의 모든 능력을 쏟아붓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 자체만으로 산다고 하지 않았을까.
생명의 위협이 있는 상태라면 이 말이 적합하다.
그런데 생명의 위협 없이 오히려 고령화가 문제라고 하는 요즘에는 맞지 않는 말 같다.
지금 시대에는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쉬운 일이 되었다.
더 이상 하루하루 목숨을 더 이어가는 것에 용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남는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아부어야 살아가는 의미를 느끼고 만족스러울 수 있는 것 같다.
그냥 살아가는 것 자체를 위해 산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자살을 한다.
그 이면에는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다른 생명과의 연결됨을 느껴야 비로소 존재가치가 있다고 만족하지 않을까.
이 소설에서도 푸구이가 정말 살아가는 것 자체만을 위해 사는 것이었다면, 주변 가족이 모두 죽고 자신 혼자 남았을 때 그냥 혼자서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이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제 자신과 닮은 늙은 소를 사 온다.
그리고 그 소와 함께 교감하며 살아간다.
푸구이의 행동은 어떻게든 연결됨을 느끼고자 하는 발버둥처럼 느껴졌다.
작가는 왜 푸구이를 늘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인물로 묘사하면서도 사랑이든 무엇이든 다른 이유가 아니라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 사는 이유가 된다고 한 것일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