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알랭 드 보통
1년이 넘도록 불확실하고도 불확실한 나날의 연속이다.
'모르겠다'를 이렇게 많이 말해본 적이 없다.
'계획'이란 것이 이렇게 쓸모없어 본 적이 없다.
내가 인지하는 상황이 왜곡된 것인지 사실인지 분간도 되지 않는다.
어디까지 믿고 어디까지 걸러들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중심을 잡으려 할수록, 단단히 뿌리내려보려 할수록
우습다는 듯이 상황은 더 흔들렸다.
삶의 근간은 일과 사랑이라 생각하는데
그 둘 모두 흔적도 없이 부유하게 되자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에까지 의문이 든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살아온 시간의 의미는 무엇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허공으로 흩어지는 물음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주변이 뭐 라건 흔들림 없이 내 길을 갈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이 정도 나이, 이 정도 학벌에 이루어 놓았음직한 것들을 기대하는 주변의 시선과 상황에 따라
나의 걸음이 그들의 시선처럼 정말 현실감 떨어지는 꿈은 아닐까 의심을 하게 된다.
이렇게 흔들리는 것은 내가 그저 관종이었던 것뿐이라는 소리일까
아니야 그래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걸 보면 내 꿈과 도전에 대한 애착이 크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은 어드메에서 잠시 쉬지도 못하고 터벅터벅 항정 없는 길을 걷는다.
생각이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니 스스로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겠어서
누군가에게 말도 못 한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하소연도 생각이 어느 정도 잡힌 상태라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미 처리해야 하는 생각이 많은데
사람을 만나면 상대가 보내는 온갖 언어, 비언어적 신호들을 받아들이고 처리해야 하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경험상 혼란은 기회였다.
차라리 그걸 모르고 마냥 흔들렸다면 덜 불안했을까
이번 혼란은 역대급인데 이런 때일수록 정신줄 붙들어야 기회를 현명하게 잡는 거라는 생각을 하니,
안 그래도 혼란한데 불안까지 가중된다.
그 와중에 이 책을 집어든 건 필연이었다.
여러 가지 불안에 대해 다루진 않고 지위에 대한 불안이 초점이라
일과 사랑으로 불안한 내게 딱 맞는 책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누구나 불안하다고 다독이며,
불안이 왜 생기는지 심리적인 이유를 담담히 풀어주고,
이 시간과 이 상황에만 매몰되어 있던 내 시선을 들어 올려
저 먼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류가 불안을 다뤄온 역사를 거시적으로 보게 해 주어
주의를 환기시켜 주었다.
덕분에 다시 조금 여유가 생겼다
충분히 치열하게 고민을 하고 있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 환경을 새롭게 세팅했으니 잘하고 있는 거라고.
앞이 안 보여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임을 되새기고
세상에 옳은 선택은 없고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과정만 있음을 되뇐다.
어딘가에서 나처럼 흔들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혹시나 또다시 미래에 흔들릴 나를 위해
이 방황의 시간도 기록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