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브 인터레스트]조나단 글레이저
아우슈비츠에 지난달에 다녀오신 일본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영화이다.
아우슈비츠 영화라고 해서 처참한 모습을 볼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잔인한 장면은 1도 나오지 않는데 잔인하다.
영화는 그저 보여준다,
평화로운 가족의 모습을.
낙원처럼 아름다운 독일 장교 가족의 일상인데
곳곳에 유대인의 고통이 대비되어 머릿 속에 떠오르도록 해놓았다.
상상은 관람객들의 몫으로 남겨두어 대비가 극대화된다.
영화 도입부에 검정화면만 꽤 길게 보여주면서 장엄하고 우울한 효과음만 들린다.
뭐지 싶을 즈음 어울리지 않는 새소리가 조금씩 섞여 들린다.
화면이 밝아온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천국과 지옥이 있다.
화목한 가정 바로 옆 높은 담벼락과 철조망,
그 너머로 굴뚝들이 보인다
평화로운 집 마당 위로 폭격기들이 유유히 지나간다
저 폭격기들은 어딘가에 또 있을 이 평화를 깨기 위해 가고 있을 것이다.
독일 장교 집에 모피코트가 배달오는데
새로 산 건 줄 알았더니 주머니에서 누군가 쓰던 립스틱이 나온다.
독일 장교 부인은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발라보고,
모피코트를 입어보고 이리저리 보며 잘 맞는지 거울로 확인한다.
주인은 어디 간걸까
장교부인은 정말 아무렇지 않았을까
집에 와서 장교가 벗어둔 군화를
유대인 청소부가 흐르는 물에 닦는데 피가 흥건하게 씻겨 나온다.
누구의 피였을까
장교 부인과 친구들이 장교네 집에 모여 수다를 떠는데
다이아몬드 어디서 났냐하니 치약 안에 있더라며
하여간 잔머리는 하고 비웃는다.
다른 방에서는 남자들이 모여
쉴새없이 많은 유대인을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해서 소각실을 어떻게 건축할지 의논한다.
다른 방에서는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전쟁놀이를 하고
유대인 소각 후 남은 금이빨을 장난감 삼아 놀고 있다.
아우슈비츠가 지옥이라 떠나고 싶을 유대인들과
아우슈비츠에서의 지금 생활이 평생 꿈꿔오던 모습이라며
어떻게든 남고 싶어하는 장교 가족이 대비된다.
또다른 대비 기법으로 흑백기법이 쓰였다.
유대인 포로들이 먹을 수 있게
아무도 없을 때 몰래 작업장에 과일을 군데군데 숨겨놓는 어린아이가 나온다.
그 아이가 나오는 모습은 흑백으로 그려져
알록달록하게 아름답던 독일 장교네 정원과 대비된다.
잔인한 모습을 한번도 보이진 않지만
잔인함을 상상하게 하는 장치가 많다.
아우슈비츠의 아기, 여자, 남자 울음소리, 때리는 소리를 들려주기도 한다.
정원이 예쁘다며 자기 엄마에게 자랑하는 독일 장교 부인.
그런데 그 아름다운 식물들은
바로 옆 수용소 굴뚝에서 나는 사람 태운 공기로 광합성해서 자랐을 것이고
사람들 태운 재를 거름으로 주어 먹고 자랐을 생명이다.
영화는 그 알록달록 싱그러운 식물들을 하나씩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독일장교 가족이 강에서 낚시하며 물놀이하고 노는데 잿색의 강물이 위에서 내려온다.
물 속에 있던 장교의 발에 뭔가 닿아서 보니 타다 남은 뼈였다.
사람을 소각한 재들을 물에 떠나보내는 것이었다.
거기에 몸이 닿았다고 아이들을 집에 데려와 욕조에서 빡빡 씻긴다.
장교집에 가정부로 일하는 유대인 여자가 나온다.
여자는 잿물에 더럽혀진 아이들을 씻기고 나서 욕조 청소를 하려다가
욕조에 남은 재를 한참 쳐다본다.
영화는 인간의 이중성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실제로 존재했던 가족의 모습이라고 한다.
독일 가족에게 공존하던 다정함과 잔인함이
서로 아무 충돌 없이 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내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특별한 사람들도 아니고
그냥 보통의 사람들인데
양심의 가책이 한톨도 없이
오히려 자신들이 모범적으로 살고 있다고 말하는 그들을 보여주며
영화는 내게 묻는 것 같았다
너라고 다를 수 있었을까?
독일장교는 식물을 좋아해서 수용소 미관을 유지하려고 라일락을 꺾지말라고 지시한다.
가족들에겐 한없이 다정하던 장교 부인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유대인 가정부에게 "누구 덕분에 이렇게라도 사는 줄 알고!!" "남편한테 말하면 너 아무도 모르게 재로 만들 수 있어."라고 서늘하게 말한다.
다른 독일 군인은 하루에 만이천명씩 소각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사람의 왼손 약지에서는 반지가 빛나고 있다.
장교가 전출가느라 가족들과 떨어지게 되자 장교 부부는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린다.
그래, 분명 그들은 사랑을 원하고, 사랑을 줄 수도 있는 그냥 보통 사람들이었다.
홀로코스트를 자행하던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영화 후반부에 독일 장교가 회색 빛 건물을 계단으로 내려오는 장면을 한참 보여준다.
한층을 내려왔는데 윗층과 똑같이 생겼다.
또 한층을 내려왔는데 또 똑같이 생겼다.
그러다가 다시 계단을 내려가던 장교가 속이 안 좋은지 구역질을 한다.
갑자기 장면이 바뀌며 현재 시점의 아우슈비츠가 보인다.
이제 아우슈비츠는 박물관이 되었고 직원들이 청소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신발과 소지품이 진열된 그곳을 직원들은 무심하게 닦는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도 되는 걸까
또다시 장면은 계단으로 돌아온다.
장교는 다시 똑같이 생긴 계단을 내려간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뜻인 것 같았다.
이 영화는 단순하게 '나치는 나빠요'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모순적임을 그저 가만히 보여준다.
특별히 그들이 악해서 그런 것도 아님을,
홀로코스트는 그저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너도 나치와 다르지 않다는.
나치가 잘못했네 하고 남일처럼 쉽게 넘기지 말고
이 역사는 언제든 다시 되풀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나치나 나나 모두 잔인함을 속에 갖고 있음을,
동시에 사랑 또한 모두가 갖고 있음을 인정하고
말과 행동을 할 때
의식적으로 사랑을 기반으로 선택해서 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