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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지는 별 Dec 06. 2023

하! 하! 하! 하!! 학교를 안 갔어!!

신에게 내 아들을 부탁드리다.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명상하 듯 걷는다.


아이를 너무 자유분방하게 키운 내 탓이라며 아이의 등교거부에 대해 나를 비난한 엑스(전남편)의 말이 가슴에 와서 콕 박힌다.  


한 달 가까이 아이가 우리의 레이더망을 잘도 피하며 학교를 일주일에 가는 날보다 안 가는 날이 더 많아지면서 나의 일상도 함께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학교선생님과 오랫동안 통화를 했고, 아이도 선생님과 상담을 받으면서 아이가 자신이 살던 곳과 동떨어진 곳에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친구를 사귈 수 없었고, 선생님은  또래 무리 안으로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전학을 가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모든 학업을 접다시피 한 아들에게 검정고시 또한 결코 쉬울 리 없다는 결론과 함께 고등학교 2학년 과정만 잘 다니고, 3학년부터는 아이아빠의 회사로 실습을 나가는 것으로 마무리하자며  통화를 끝냈다.  


아들도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으나 무언가 아쉬웠는지 조금 머뭇거리다 학교가 너무 멀어서 버스 타는 것이 힘드니 바이크를 사달라고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고등학생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등하교를 하고 있고, 등하교를 잘했는지, 혹은 사고가 없었는지 매일 가슴 졸이며 하루를 시작할 용기가 엄마는  없다고 말하며 아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들과 나는  나의 지병으로 인해 떨어져 산지 3년 정도되었다.  아이의 인근에 집을 구해서 자주 식사를 함께 하고 매일 카톡을 주고 받으면서 충분히 소통하고 그로 인해  아들이  훌쩍 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학교의 학력과 고졸의 학력의 차이가 사회에서 얼마나 큰 것인지 설명하는 내 말에 아들은 절대 동의하지 않았고, 중졸의 학력으로도 충분히 간단한 아르바이트나 배달, 택배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나름 자신의 생계를 고심했구나 싶어 대견했다.  


하지만 아무리 간단한 아르바이트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지연관계도 없이 이력서를 제출하더라도 중졸의 학력과 고졸의 학력을 비교해서 사장 입장에서는 무언가 이유가 있든 없든 왜 학력이 중졸에서 그쳤는지 의아해 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일반적인 고졸의 학력의 사람을 선택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그래서 학교에서의 성적도 성실도를 판단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제출이 가능하지만 그저 학교만 졸업을 하더라도 그게 증명서가 되는 이유를 긴 시간 설득했다.  

전문대 입학을 고민할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졸업을 위해 이렇게 아들과 고군분투하게 될 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일주일 동안 학교를 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벌였던 신경전과 반복되는 거짓말을 확인하는 과정들은 실로 조용한 전쟁이었다.  그 긴 실랑이를 통해 다행히 거추장스러운 변명이나 거짓을 다 걷어내고 서로의 진심을 내어 보일 수 있었다.  


평소 부모로서  자식의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는 걸 알기에 오랫동안 우리는 각자의 원하는 바를 표현하고 그 사안에 대해서 서로 이해를 구하기도 하고, 타협을 하기도 했다.  

다 자란 성인들과의 대화도 힘들지만 이해의 폭이 그렇게 넓지 않은 아이와의 대화는  그렇게 쉽지 않았다.  


이야기 하는 내내 아직은 어린 아들의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몰려왔고, 심지어는 어렵게 울며불며 키운 내 자식이 혹여 나의 부족함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싶어 심한 자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간신히 아들과 통화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앉았다.  다시 신경쇠약증세가 시작되어 업무에도 집중하기 어려웠고, 감정조절도 되지 않아 아무 때나 눈물이 났다.   또다시 흔들리는 자신을 느끼며 내 안의 아이를 다독거렸다.  


남은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을 최선을 다해 마치기로 합의를 보고나서 오랫만에 단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해서 공원을 걸으며 명상하는 내내 지극한 감사와 가족의 안녕의 염원을 가득 담아 나의 신께 절명상으로 아침 인사를 드렸다.  걷는 내내  수많은 감정이 올라오며 눈물이 났고 불안감에 떨며 무겁게 내려앉았던 마음이 사뿐 날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자식을 가진 부모는 늘 겸손할 수밖에 없다.  신은 자식을 통해 부모의 교만한 무릎을 꿇게 하시고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드시는  것 같다.   또다시 1년을 버티며 무수한 문제와 반복되는 배신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또한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넘게 하실 신의 계획이리라.  


두렵다.  다가오는 하루하루가 두렵다.  하지만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믿어주고, 다시 희망을 가지는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지루하고 힘겨웠던 이 시간 동안 나는 그 어떤 특정한 종교도 없지만 마음속으로 나의 신을 찾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자식의 행보와 미래를 신께 맡겨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또한 나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을 더욱 자각하며 자연과 신에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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