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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형 Feb 03. 2023

쓸 수 없는 문장들

가끔 나는 당신을 상상하곤 했다.

우리가 되기 전, 지금의 당신을 만들어 낸 그때를.


​적당한 풍경과 때를 그려놓고 당신을 초대했다.

그리곤 당신이 말하는 입모양과 표정을 줄곧 상상했다. 내게는 참 쉬운 일이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그 일이 잦아졌다. 사랑할수록 우리가 되기 전 당신의 모습이 그리웠고, 미워할수록 지금의 당신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필요했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용서와 이해를 핑계 삼아 그때의 당신을 내 마음대로 마음껏 상상했다.​


당신은 화를 냈다 엉엉 울기도 하고, 눈물을 참고 아무 일 없던 적 일상을 보내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하하호호 웃다 금세 지쳐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그 많았던 순간속 당신에게 나는 손 한 번이라도 내민 적이 있었나. 단 한 번 없으면서도 눈앞에 당신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겠다는 허영 가득한 마음만 차고 산 건 아닐까?

혼자만 들어갈 수 있는 과거. 누군가를 초대한 적도, 누군가에게 빌려준 적도 없는 그때의 기억과 생각과 당신.

그렇기에 감히 나는 당신을 상상할 수도, 지금의 당신을 ‘잘’ 알 수도 없다. 드러나는 표면과 얕은 교분으로 당신을 속단하는 일, 혹여 내게 그런 힘이 있다한들 당신을 바꿀 수 있을거라는 오만함 따위는 버려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당신의 말에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이고, 당신의 이름을 자주 불러 옆에 함께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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