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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쥬 Mar 01. 2024

아이의 선택은 늘 옳다

가끔 틀린 선택을 하는 부모와 늘 옳은 선택을 하는 자녀

아이의 유치원 수료식 날 아침이었다. 알림장의 글을 보고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가장 멋진 옷을 입고 등원하세요.”


마침 사이즈가 딱 맞는 어린이 정장이 있었다. 아이에게 그 옷을 제안했지만 아이는 역시나 거절하고 소방관 옷을 입고 가고 싶다고 했다.


내 기준에서는 소방관 옷은 ‘멋진 옷’이 아니었다. 세 번을 물었으나 아이는 완강했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제안을 했다.


“소방관 상의 안에 하얀색 셔츠를 입고 가자. ”

“싫어. “


다른 아이들은 멋진 슈트정장을 입고 왔는데 우리 아이만 새빨간 소방관 옷을 입고 가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걱정하는 나를 아들은 인생 2회 차인 것처럼 설득했다.


“엄마, 졸업하는 형아들은 이런 셔츠 입는 거고, 오늘 우리는 댄스파티를 할 거야. 그러니깐 이거 안 입어도 돼.”


아이의 말을 듣고, 나는 더 이상의 제안을 하지 않았다. 그래, 창피해도 네가 창피하지. 내가 창피하냐!


아이를 원에 등원시키며 내심 걱정이 되어 아이 옷에 대한 선생님들의 반응을 살폈다.


“우와. 엄청 멋진 옷을 입고 왔네!”


아이의 말이 맞았다. TPO에 맞는 옷을 아이가 선택한 것이다. 아이는 내가 절대 알 수 없는 아이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이처럼 나는 내가 아이의 세계를 온전히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아이는 걸음마를 막 시작한 때부터 선택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나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항상 어쩔 수 없이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곤 했다. 근데 결과적으로 내 선택은 늘 틀리고 아이의 선택은 항상 옳았다.


가끔 그 선택의 결과가 너무 신박하고 놀라워서 소름이 돋는 경우도 많았다.


아이가 장화를 신고 가고 싶다는 날 오후에 갑작스럽게 비가 왔다. 분명 쨍쨍한 아침이었는데도 말이다. 주말에는 교외에 있는 대형 키즈놀이터에 가자고 했는데 아이가 동네 키즈카페에 가자고 떼를 써서 갔더니 유치원 반친구가 놀고 있었다. 레고랜드를 가자고 했는데 아이는 집에서 놀고 싶다고 했다. 그날 오후 날씨는 기록적인 영하날씨의 가장 추운 날이었다. 식당에 가서 메뉴를 고를 때도 아이가 고른 메뉴는 다 맛이 있다. 심지어 장을 볼 때도 아이가 선택한 간식과 과일, 음식재료는 다 만족스럽다.


99.9% 확률로 좋은 선택을 하는 아이를 나는 존중해 주기로 했다. 그럼에도 가끔 난 아이의 선택에 딴지를 거는데, 그 근거는 내가 아이보다 산 날이 많기 때문이다. 내 기준과 경험치로 따져봤을 때 아이의 선택은 틀릴 때가 많다. 하지만 아이는 늘 좋은 선택의 결과로 나를 머쓱하게 만든다.


나와 남편은 성장해 가는 아이를 보며, 함께 다짐한다. 아이의 선택은 늘 옳았고, 우리의 선택이 틀릴 때가 많았다는 것을.


제 각기 다른 제일 멋진 옷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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