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39살, 나 정말 괜찮을까?
때는 바야흐로 송년회가 집약적으로 몰려있던 2024년의 12월이었다.
월요일에는 막걸리, 화요일에는 맥주, 수요일에는 바이주, 목요일에는 와인으로 송년회를 마치고, 금요일에 가까스로 예약해 둔 건강검진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몸을 애써 사리던 한 주였다.
나와 남편은 2024년을 시작하며 둘째를 계획했다. 이유는, 마흔을 앞둔 내가 곧 둘째를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나이가 되기 때문. 둘째의 미련을 못 버리고 있던 우리 부부는 드디어 큰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사하실 수 있도록 ‘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미 노화된 몸뚱이 때문일까, 그 간 ‘작은 틈’조차 주지 않았던 우리 부부에게 하나님이 반성의 시간을 주신 것일까. 1년이 지나도록 둘째 소식은 없었다.
우리에게 둘째가 찾아올 것이란 희망이 점점 사라지고 있을 때, 건강검진을 앞두고 적은 가능성이라도 있을지 몰라 나는 ‘임신 테스트기’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임신테스트기의 선은 하얀 배경을 빠르게 지나 붉게 물들어버렸다. 너무나 선명한 두 개의 빨간 줄. 임신이었다. 둘째는 그렇게 우리 부부에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새벽 6시, “여보!!!!!!!!!!! 여보!!!!!!!!!!!!”를 첫째 임신을 확인했을 때와 동일하게 나는 자고 있는 남편을 다급하게 불렀다.
(남편은 두 번째 계엄령이 터진 줄 알고 너무 깜짝 놀랐다고 한다)
곤히 자고 있는 첫째도 나의 다급한 부름에 남편과 함께 잠에서 깨어 동그란 눈을 뜨고 나를 봤다.
“여보! 둘째가 생겼어! 동생이 생겼어!”
나는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동시에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남편은 2025년 첫째 아이를 데리고 캐나다에 2년간 머무를 계획이었고, 나는 한국에 남아 2년간 기러기생활을 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야심 찬 캐나다 유학행은 둘째 임신 소식과 함께 전면 백지화되었다.
이 날은 정말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최소한의 건강검진을 마친 뒤, 바로 산부인과로 갔고, 아직 아기집도 보이지 않을 만큼 극 초기라 피검사를 진행했다. 피검사 결과는 역시나 임신이 맞았다.
하나님이 정말 우리 부부에게 둘째를 선물하셨다.
앞으로 우리 가족의 미래는 어떻게 바뀔까? 내 커리어는? 아들의 유학 계획은? 캐나다행을 위해 2년이나 육아휴직을 낸 남편은? 둘째가 드디어 우리 가족에게 왔다는 기쁨과 감사함도 잠시, 무겁고 두려운 현실이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