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두 번째 제왕절개이다. 첫 번째에는 서른한 살 초산맘답게 호기롭게 자연분만을 고집했다. 결국 진통을 하루 넘게 하고, 24시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두 손 두 발 다 들고 의사 선생님을 찾았다. ”저를 이 무자비한 고통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게 해 주세요. “ 외치면서 말이다.
자연분만 포기선언과 함께 맞이한 수술대라 그야말로 내 정신이 아니었다. 그저 우렁차게 울어대는 아기가 내 뱃속에서 드디어 나왔다는 환희의 순간만 기억날 뿐이었다.
8년 만에 나는 다시 그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의 나는 제정신이었다. 수술날짜가 다가오면서 나는 첫 번째 수술을 복기하며 공포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첫 번째 수술 때, 간호사선생님이 내 혈관을 못 찾아 내 팔을 5번 넘게 찌른 기억, 하반신만 마취 중에 내 배를 칼로 가르고 있는 끔찍한 장면… 이런 공포스러운 상황을 맨 정신으로 맞아야 한다니… 수술 날짜가 다가오자 나는 악몽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를 만난다는 기쁨과 설렘은 이 모든 공포를 덮고도 남았다.
맨 정신으로 맞이한 수술치곤 꽤 참을만했다. 이번에는 간호사선생님도 한 번에 혈관 찾기에 성공했고, 수술대는 내 생각만큼 공포스럽지 않았다. 새우등 모양으로 척추마취를 할 때 움직이지 말라고 마취선생님한테 또 혼났던 건 이전과 똑같았지만 말이다. 등에 두꺼운 바늘을 꽂는데 어떻게 움찔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수술실에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온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이런 깨알 같은 디테일도 알아차릴 만큼 나는 제정신이었다.
수술 시작의 알림은 모두가 내 담당주치의를 향해 “안녕하세요”하는 인사로 알 수 있었다.
“000님, 빈혈수치가 아주 좋아졌어요.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수술 시작합니다.”
시작과 동시에 내 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찬양을 계속 부르며, 하나님을 찾았다.
얼마쯤 흘렀을까, 간호사가 내 배를 세 번 정도 사정없이 눌렀다. 의사 선생님이 아이를 한 번에 못 꺼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인지했다. 마취 때문인지 아프지는 않았다. 바로 들리는 의사 선생님의 짧은 탄식 “으.. 아이가 이거 엄청 튼실한데”, 연이어 아이가 내 뱃속에서 나오는 느낌이 전해졌고, 혹여나 38주 차에 세상 밖에 나와 호흡을 못하는 건 아닐지 엄청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이는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내 앞에 등장했다.
내 눈앞에 나타난 아이는 어딘가 익숙한 생김새, 첫째랑 생김새가 너무 같았다.
“안녕, 반가워! 엄마야! 사랑해! “
제정신 차리고 내가 계획했던 모든 단어를 다 내뱉었다. 어딘가 연결성이 없는 어수선한 내 인사가 끝나자 아기는 아빠에게 가고, 나는 후처치를 위해 잠들었다.
수면마취의 꿀잠에서 깨어나보니 회복실이었다. 이상하리만큼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덜덜덜 떨리는 몸이 신기해서 몸에 힘을 줬다가 뺐다가 여러 번을 반복했다. 여러 번의 테스트 끝에 발견한 사실은 몸에 힘이 들어갈 때 떨리고, 풀 때는 안 떨렸다. 간호사선생님들은 이런 나를 두고 밖에서 즐거운 수다 중이었는데, 그들의 이야기 주제가 재밌어서 나도 한참을 라디오 듣는 것처럼 듣고 있었다.
마침내 간호사선생님이 내가 있는 회복실로 들어오자 몸이 너무 떨린다고 말하니, ”몸에 힘을 빼보세요. 그럼 안 떨려요. “ 나는 내 막간의 실험이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해결책이라는 게 고작 이런 게 맞나 싶어 어이없었다. 회복실에 얼마나 누워있었을까. 다른 산모가 수술실에 들어갔고, 얼마 되지 않아 아기 울움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대기 중인 산모의 남편은 탯줄을 자르고, 아기상태에 대해 꼼꼼히 브리핑을 받았다. 우리 남편도 저기에서 저렇게 아기를 만나겠구나 상상했다.
내가 회복실을 거쳐 분만실에서 나오자 남편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기가 나온 지 2시간이 훨씬 지났는데, 내가 나오지 않아 엄청 긴장했다고 한다. 나를 회복실에 두고 남편에게 내가 회복 중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니! 이 병원 ‘고객경험저니맵’ 좀 다시 그려봐야겠어라고 생각했지만,
“메리(태명) 코가 당신 코랑 똑같이 생겼던데! “로 첫인사를 대신했다. 나오자마자 메리는 건강한지, 사진과 영상은 잘 찍었는지 숙제점검을 했다. 남편은 내게 숙제를 제출하고,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안부연락을 했다.
나도 마취에서 방금 깨어난 사람답지 않게 해맑은 정신으로 직접 출산소식을 전했다.
하아, 이제 온전히 건강하게 회복하는 일만 내게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