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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회사 다니는 임산부가 된다는 것은

출산 후 다시 쓰는 임산부 일기

by 봉쥬

나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우울했다. 무기력의 파도가 나를 뒤덮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무기력한 와중에도 옆 자리 동료의 성장이 눈에 보였다. 그의 성장이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면서도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무기력해졌을까?


돌이켜보니 8년 전 첫째 임신 때도 나는 똑같은 감정을 느꼈었다.


내 무기력함의 8할은 아마도 입덧 때문일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토할 것 같고, 무언가를 먹으면 토를 한다. 먹고 싶은 음식도 없고, 어쩌다가 먹고 싶은 음식이 생겼을 때 기대하고 먹으면 역시나 토를 한다. 이렇다 보니 일상이 점점 피폐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에는 입덧약을 삼킬 수 있었다. 입덧약의 효과로 오후 4시까지는 아침과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오후 4시 이후부터는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토해냈다.


길을 가다가도 토하고, 버스에 내려서도 토하고, 먹다가도 토했다.


회사에서 나의 업무역량은 반의 반토막이 나는 게 당연했다. 얼굴의 생기를 잃어가니 당연히 팀에서도 나에게 많은 업무를 줄 수 없었다. 나는 그게 고마우면서 한편으로는 속상했다. 심지어 내 업무를 동료에게 뺏긴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를 위한 배려라고 느껴지지 않고, 배제라고 느껴질 정도로 피폐해진 일상만큼 내 마음도 함께 삐뚤어져갔다.


하지만,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내 안에는 생명이 자라고 있고, 그 생명을 키우기 위해 내 몸은 모든 에너지를 쓰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일 테니깐.


회사에서 나는 자꾸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잊고, 놓쳤다. 이런 내가 바보 같고 한심했지만, 내 안에 자라고 있는 생명을 키우는 것만큼 내게 중요한 건 없다고 세뇌하며 나 자신을 위로했다. 실제로도 그랬으니깐 말이다.


내가 잘못했다고 회사가 망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내 안에 있는 생명은 그렇지 않다. 내가 최선을 다해 붙들고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현듯 몰려오는 커리어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마흔이 얼마 남지 않은, 차장 승진을 앞둔 시점에서 나는 과연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일까? 아직 ‘전문가’로 불리지도 못하는 어설픈 커리어를 가지고 출산 후에도 나는 내 커리어를 잘 만들어갈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건 나에게 걱정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있을 때나 가능했다. 임신기간 중 대부분의 시간을 난 무기력하게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임신 중에도 회사를 다닌다고 하면 ’대단하다 ‘며 치켜세우지만, 사실 회사를 다니게 하는 힘은 ’ 두려움‘에서 온다. 남들보다 뒤처질 까봐 초조해하는 두려움, 이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봐 하는 두려움, 지금 휴직을 하면 앞으로 회사에서 승진을 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솔직히 말하자면, 커리어에 대한 열정보다는 이런 두려움이 매일 회사를 다니게 하는 동력이 된 것이다.


이런 두려움이 원인이 되어 나는 출산휴가만 쓰고 복직을 하기로 결심했다. 출산휴가만 쓰고 복직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에게 되묻는다.


“그게 가능해요?”


이렇게 묻는 이들에게 나는 다시 대답한다.


“저도 모르겠어요. 그게 가능한지, 한번 해보고 알려드릴게요.”


내 마음가짐이 실제로 이렇다. 그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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