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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정 Nov 07. 2017

#09. 애증의 피렌체

실패한 여행이란 없다







애증의 피렌체



뭔가 꼬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계획이랄 게 별로 없긴 했지만, 

그래도 몇가지 목표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우리가 정한 장소에서 

일몰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피렌체의 선셋 스팟은 

피렌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미켈란젤로광장'이었다. 


미켈란젤로 광장에 있는 다비드상 모조품


우리는 버스를 타고 광장으로 갔다. 

그런데, 너무 이르다. 

해가 지려면 2시간은 더 기다려야할 것 같았다. 


일단 카페에서 음료를 즐기며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하지만, 

해는 여전히 쨍쨍했고, 

우리는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속도로 지쳐갔다. 


저녁에 가보기로한 음식점이 있었는데, 

고민 끝에 일몰감상을 포기하기로 했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일몰을 감상하려면 아직 멀었다. 우린 끝내 일몰감상을 포기하고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지만, 

과정이 순탄치가 않았다. 

가는 내내 승차권 문제로 

승무원과 실랑이를 벌여야했다. 

피곤이 몰려왔다. 

그래도 맛있는 저녁식사를 기대하며

짜증을 견뎠다. 


드디어 음식점에 도착했다. 

그런데 음식점이 문을 닫았다. 

여름휴가를 떠난다는 쪽지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아내는 그 자리에 털석 주저 앉았다. 

절망스러웠다.


이런 게 여행 아니겠냐며 

낙망한 아내를 겨우 일으켜 

세워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저 멀리서 연주 소리가 들린다. 

걸음을 옮겼다. 

연주를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우리의 시선이 머물렀다.


흔한 관광지 풍경이다. 

하지만, 그 광경은 우리 여행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피치 미술관 출구. 사람들은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음악에 기대어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고대 로마의 찬란했던 역사와 

그 영광을 부활시키고자 부단이도 몸부림쳤을

중세 예술가들의 위대한 조각들을 뒤로 한 채, 


사람들은 거리의 악사가 연주 하는 음악에 기대어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음 일정 따윈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시공간을 충분히 소비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이탈리아에서 갈망했던

일탈의 진정한 가치였다. 


우리는 한참을 이곳에 머물렀다. 

그리고  조금 더 자유로워지기로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저녁거리를 샀다.


계획이 어긋나고,

일정이 취소되고, 

유명한 맛집을 가지 못하면, 

실패한 여행인가? 


여행의 모든 순간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새겨지기에 

실패한 여행이란 있을 수 없다.




여행의 모든 순간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새겨지기에 실패한 여행이란 없다.


피렌체의 벅찬 감동을 안고서, 이제 우리는 베니스로 간다.







2016년 여름, 두 아들 떼어놓고 
무작정 아내와 단 둘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에서 담아 온 여행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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