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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주, 잠재력, 가능성 있음'에 중독되지 않으려

지속적인 산출물로 저항 중인 매일

내 업무 책상에는 이런 글귀가 붙어 있다.

'앞으로 나가야 뿌리가 커져 주연아.'

'집중해라. 삶이 짧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주저함이 나를 덮칠 때 다른 것 다 차치하고 '본질'에 집중하면 답이 보인다는 생각에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두었다.


내게는 매일 아침저녁 수시로 읽고 쓰는 작은 노트가 있다.

근 5년간 심리상담을 받으며 매주 일기를 쓰는 습관이 생겼는데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사람은 취약해질 때 특정 사고 회로로 돌아가려는 회귀본성이 있다는 점이다.

"나는 안돼, 나는 원래 ~해. 나는 ~한 사람이야."


나의 실체와 상관없이 살면서 우연과 필연에 의해 형성된 '디폴트' 값.

그 값은 유전적일 수도, 양육 환경 때문일 수도 있다. 크고 작은 본인의 경험으로 형성한 자기 모습을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다. 그것은 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습관처럼 생각이 쏠릴 때, 알아채고

'아니야 너 그런 모습만 있는 거 아니야. 사실 넌 이런 것들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야.'

이렇게 다시 새로운 중심으로 돌아오게 도와주는 것이 내 작은 초록 노트의 역할이다.



세상에는 무언가를 해야 될 이유보다 안 해야 될 이유가 훨씬 많다.

한 10000:1의 싸움일지도 모르겠다.

콘텐츠를 만들고도 부족한 것 같고, 적절한 타이밍이 아닌 것 같고, 좀 더 만지면 괜찮을 것 같다며 수만 가지 미룰 수 있는 이유들이 떠오르며 가능성의 늪으로 데려가려 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떠올린다.

안 해야 될 이유보다 숫자는 적지만 보통은 메가급으로 강력한 '해야 하는 이유'.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 부사가 중요한 것 같다.


스타트업, 자영업, 연구를 하다 보면 가능성의 늪에 빠지기가 아주 쉽다.

몇 년째치고 올라가지 못하고 구상 중이라며 얼버무리는 상태, 현재의 삶이 아닌 건 알겠지만 그다음으로 이동하지 못하는 두려움. 다 너무나 아는 감정이고 그게 어쩌면 인간의 기본값이라는 생각도 든다.

마찰력을 이길 정도로 중력에 저항해서 앞으로 나가는 것은 사실 굉장히 힘든 일이다.

화려하고 진취적인 말보다 쪼렙이라도 작은 거 하나를 직접 시도하는 것은 위대한 일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작지만 온전히 내 책임으로 무언가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지나가는 말이라도 "말만 하고 못 하네?"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


정신 차리고 집중하지 않으면 가능성만 이야기하다 끝나는 삶이 되는건 순식간이라는 걸 느낀다.

그래서 매일 0.5cm라도 앞으로 나가려고 저항을 한다. 외부의 마감기한 없이 내가 세운 일정을 나의 감으로 결정해나가다 보면 미루면 그만, 내일 올리면 그만이지만 그러다 늪에 갇혀버리면 도전을 하겠다고 나온 시간과 노력, 지지받은 모든 것을 저버리는 게 되니까.


들어간 투자금이 얼마인데(!). 비효율적인 투자로 끝낼 순 없기에 오늘도 산출물을 내든 말로라도 내가 하려는 것, 한 것을 내뱉으며 컴포트존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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