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일 하고 싶은 리더 vs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리더
어느새 8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꼭 만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리더'이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보통 반년에 한 번은 조직개편을 했고, 1년에 한 번쯤은 바로 위 리더가 바뀌었다. 그렇게 경력이 쌓이면서 지금까지 적어도 10명 내외의 리더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과 적어도 2-3번 이상 면담을 진행하며 깊은 대화를 나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대화 속에서 어떤 리더는 업무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반대로, 어떤 리더와 면담 후에는 기분이 찝찝하고 '누굴 위한 면담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 경험을 바탕으로 리더들 중 인상 깊었던 말들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회사에서 분기별로 성과 달성 면담을 진행했을 때 일이다. 먼저 직전 분기에 진행한 업무와 내가 잘한 점, 못한 점을 정리하여 팀장님께 제출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면담이 진행된다. 이번에도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고, 마지막에 팀장님이 나에게 물었다.
oo님이 업무에 더 집중하기 위해,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게 있을까요?
그 질문을 들었을 때, 내가 도구가 아니라 한 명의 존중받는 팀원으로 팀장님께 서포트 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 한마디에 더 성과 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다음 분기에도 나는 내 목표를 달성했다. 그리고 연말에 소속된 팀/실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승진까지 할 수 있었다.
최근에 회사가 인수 합병되는 과정에서 내 조직이 변경되고 리더가 교체되었다. 나는 새 소속의 사람들과 함께 있었고, 그들 무리 속에서 리더와 조직원들 사이의 Q&A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 질문으로 나온 내용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고인물이 많은 회사와 왜 합병해야 하나요?”였다. 내가 직전에 소속되어 있던 곳을 무시하는 발언에 마음이 상하기도 했고, 그 안에서 나 역시 안일하게 일하지 않았나 괜한 생각이 많아졌다. 그들 속에서 내 생각을 티 낼 수 없어 조용히 있었는데, 그때 새 리더에게 DM이 왔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막 던지는 말은 신경 쓰지 말아요. 누구보다 잘 해왔고 가치 있는 분이라는 걸 내가 알고 있어요
그 말이 ‘나'라는 존재를 인정해 주고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이 쉽게 던진 말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해왔는지 아는 분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더욱 힘이 났다.
당시엔 잘 몰랐었지만, 이후에 주변 기획자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모두가 좋아하는 리더였다. 또한, 대표에게도 빠르게 인정받아 자기 자리를 견고히 한 리더들 중 한 명이었다. 나 역시, 내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내가 담당하는 프로젝트를 책임감 있게 이끄는 중이다.
입사한 지 오래되지 않은 주니어 시절이었다. 당시 팀장님은 그 위 실장님이나 팀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분이었다. 하루는 둘이 점심을 먹고 있는데 표정이 너무 안 좋았다. 그는 고민이 많은 상황인 걸 온몸으로 티 내고 있었고, 무슨 일 있냐고 질문했다.
오픈하지 말라고 해서 아직 자세하게 말은 못 해요. 근데 큰 변화가 있을 거예요.
이때 팀장님의 답변에 실망했다. 자신의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데, 팀원에게 상황을 설명해주기는커녕 애매모호한 말만 했다. 다시 생각해 봐도 팀원에게 자신이 아는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해 주고, 지금 진행하는 업무에 집중하면 달라질 건 없다고 다독이는 게 낫지 않았나 싶다.
여담으로, 그날 오후에 애자일 조직으로 개편될 예정이고 나는 다른 팀장님 밑으로 이동된다는 사실을 ‘예비 팀장님’에게 들었다. 그리고 당시 팀장님만 팀원들에게 직접 말을 안 했을 뿐, 모두 다른 데서 소문을 듣고 알고 있었다. 조직 개편 후엔, 새로 맡게 된 팀에서도 인정받지 못했고 팀원들의 불만을 많이 받는 팀장님이었다.
회사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리더와 승진자 면담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당장 퇴사를 하거나 이직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상태는 아니었다. 회사의 상황도 안 좋고 승진자는 그해 이직한 사례가 많아서인지, 리더는 계속해서 요즘 회사 생활은 어떠냐는 질문을 했다. 그냥 잘 지내고 있고 업무와 관련된 가벼운 고민들이 있을 뿐이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리더는 아래와 같은 대화를 계속 이어나갔다.
이 회사에 오래 다녀요. 다른 회사에서도 인정받을지 어떻게 알아요? 다른 회사가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인지도 알 수 없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지금 가스라이팅 당하는 건가?’ 싶었다. 팀원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는 그저 팀원이 오래 남아있길 바라고 쉽게 던진 말이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앞으로 그를 더 오래 보지 않도록 내가 빨리 이직해야겠다고 다짐하던 순간이었다.
당시 면담을 진행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리더에게 들었고, 대부분 그 리더 밑에서 벗어날 생각뿐이었다. 이후에, 일 잘한다는 사람들은 빠르게 퇴사하고 신규 채용은 하지 못했다. 나 역시, 퇴사는 아니었지만 다른 조직으로 이동해 더 중요한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됐다.
내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기억에 남는 리더들의 말들을 정리해 보았다. 이렇게 리더의 말 한마디에 따라, 팀원들은 업무 의욕이 올라가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말 한마디의 위력을 몸소 느끼고 있기에, 나도 회사 사람들과 업무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가벼운 농담을 나눌 때에도 조심스럽다. 내가 가볍게 던진 한 마디에도 상대방이 기분 상하거나 상처받지 않고, 반대로 기분 좋고 업무 의욕을 올릴 수 있는 대화로 기억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