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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빠가 까를 낳는다

음악 이야기 : 누자베스에 대하여

by 오정민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빠가 까를 낳는다'는 정말 잘 만든 말 같습니다. 아이돌, 밴드, 힙합, 축구, 야구 등 팬덤이 유독 강한 몇몇 분야가 있는 것 같아요. 가끔 커뮤니티에서 아티스트나 스포츠팀들이 조롱당하는 이유의 80퍼 이상은 극성 팬들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예전에 <리버풀 돌풍의 1위> 라는 스포츠 기사에 뜬금없이 '그래도 아스날한테는 안됨' 이라는 댓글이 달린 걸 봤어요. 뜨어 하는 소리가 나오더라구요. 좀 밉상이죠? 예시일 뿐이니 아스날 팬들이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저한테 뭐라는거야 미친갱이야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극성팬들이 안티를 만드는 주범이라는 건 정말 대단한 진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야기 할 사람이 바로 극성 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 누자베스가 되겠습니다.


예전에 커뮤니티 게시판에 누자베스 관련 글이 있길래 읽다보니 이런 댓글이 있더라구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어요.

'누자베스 음악을 듣고 - 세상을 떠난 레전드를 아쉬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modal soul을 듣고도 이 앨범이 클래식인걸 모른다면 귀가 없는거죠 아이돌 같은 거나 듣고 사세요'

졸지에 귀머거리가 된 저는 (심지어 에프엑스 즐겨 들을 때 기도 했고) 왠만하면 온라인에서 말싸움을 하지 않는다는 다짐을 어기고야 맙니다. '누자베스가 좋은 뮤지션이긴 한데 안들으면 귀가 없다는 소리 들을 정도로 레전드인가요? 에프엑스 음악 들으면 안되나요?' 라고 댓글을 달아버렸어요. 바로 후회했습니다. 대체 왜 그랬나 모르겠어요. 달리는 댓글들이 아수라장이 됩디다. '뭘 모르시네요 modal soul 부터 차근차근 듣고 오세요' 등 점잖은 글 부터 해서 '병신이냐 모르면 닥치고 있어라' 등등 대단하더라구요. 아 내가 벌통을 건드리고 말았구나. 이래저래 조목조목 이야기를 해도 듣지를 않아요. 대체 뭘 얼마만큼 더 듣고 오라는거야, 예전에 인다큐알에다가 modal soul 앨범 리뷰를 쓴 적도 있는데..


저는 누자베스를 좋아합니다. 사고 소식을 듣고 슬퍼하기도 했구요. 처음 <aruarian dance>라는 곡을 듣고 충격받아 한동안 그의 대표작 [metaphorical music], [modal soul] 을 귀에 달고 살기도 했습니다. 편안하고 느낌도 좋았거든요. 작법에서의 센스도 있었고 고전 브라질 음악이나 보사, 쏠, 훵크 등에서 찾아낸 샘플들도 기가 막혔죠. 맥주 한 잔 하면서 듣기 참 좋다고 생각해요. 꽤 괜찮은 곡들을 가졌던 뮤지션이었습니다.

근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과연 누자베스는 음악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가?"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를 괜찮은 뮤지션 수준을 넘어 거의 신으로 모시는 빠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생겨난 의문입니다.



아마 2003년, 제가 고등학생일 때 처음 누자베스가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던 것 같아요. 들어오자마자 국내 음악 애호가라 자칭하는 사람치고 그를 언급하지 않는 경우는 흔치 않을 정도로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생소한 일본 아저씨의 음악이 이렇게나 유명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현상을 이른바 '있어 보이는 음악'이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포저들을 향한 성공적인 포지셔닝. 누자베스라는 아티스트 이름부터 해서, 앨범을 틀어놓으면 느낌이 좀 살았죠. 야마가 좀 있는 곡들이었어요. 게다가 그때 무신사나 힙합퍼 등 스트릿의류 커뮤니티에서 활약하던 네임드들, 씬에서 한 따까리 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자베스 음악을 즐긴다고 자주 말하고 다니고 싸이월드 BGM도 많이들 깔았어요. 그들만의 취향을 뽐내기에 적정했던 거죠. (사운드 프로바이더스의 The Field 같은 곡들도 그런 맥락에서 많이 소비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있어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의 심리는 똑같잖아요? 하기야 10~20대 초반의 스트릿 포저(저도 포함) 들의 우상이었던 그 사람들이 "저 에스지워너비 들어요" 이러면 멋이 좀 상했을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그들은 있어 보이는, 느낌있는 외국 아티스트를 찾다가 결국 누자베스를 만나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특히 그때 당시 유행했던 시부야 케이 장르나 하라주쿠 스타일 역시 일본 아티스트인 그를 더욱 국내 씬에 알리게 해준 기폭제 역할을 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때 젊은이들 사이에서 멋 좀 부린다 싶은 사람들은 누자베스! 이러면 오오 그냥 짱 짱 이런 도식을 파블로프의 개 처럼 머리속에 형성하게 된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포지션으로 나왔던 DJ Mitsu the Beats 앨범의 놀라운 퀄리티는 무시하면서 말이죠. 거기서 이제 딱히 다른 음악을 더 찾아듣지는 않는 그들은 누자베스에 대한 찬양이 거의 신앙 수준이 됩니다. 그리고 그 젊은이들은 누자베스 빠를 넘어 '재즈힙합' 이라는 정말 보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단어의 신봉자가 되더라구요. (저는 재즈힙합 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습니다)


그때 당시 멋쟁이들의 예시)

"아 저는 재즈힙합을 좋아하구요, 특히 누자베스를 좋아합니다.

신발은 당연히 조던이구요. 베이프 후드를 깔별로 사는게 꿈이에요"


뭐 대강 이랬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학습되어버린 스트릿 취향과 누자베스에 대한 신앙이 (안타까운 사고로 고인이 된 그라 더욱 그러는지도 몰라요) 꼴 보기 싫었던 또 다른 몇몇 사람들은, '과연 누자베스가 전설로 추앙받을 정도의 뮤지션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며 그를 거품이다. 통샘플링이나 하는 쭉정이다 뭐다 부르며 오히려 안티가 되어버리기도 했지요. 즉 빠가 까를 낳은 셈입니다.


그럼 누자베스는 어떤 뮤지션일까요?

사실 전 누자베스를 레전드 뮤지션이라고 부르기도 뭐하지만 그렇다고 쭉정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누자베스는 '괜찮은 음악을 만들던 음악매니아 & 뛰어난 샘플 디거' 라 생각해요. 확실히 샘플 소스를 고르는 능력은 발군이긴 했어요.

음악을 진짜 많이 듣고, 애정이 있었기에 그 정도의 디깅을 할 수 있었던 거겠죠. 누자베스가 소개하지 않았다면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좋은 소스들이 정말 많아요. 그걸 이렇게 저렇게 비벼내는 센스도 괜찮구요. 비유가 좀 이상할 수도 있는데 막 뛰어난 스킬이나 레시피를 가진 요리사는 아니지만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찾아내서 그 맛을 그대로 살려내는 타입이랄까요?


워낙에 샘플 원곡들이 좋기 때문에 나오는 곡들이 괜찮을 수 밖에 없지 않느냐? 거품이다 라는 시각도 있어요. 하지만 그 근거로 누자베스가 구리다고 폄하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샘플을 찾는 것도 실력이고 그걸 잘 살려내는 것도 실력이니까요 (이건 DJ Okawari의 지옥같은 똥 드럼을 들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작법은, 대부분 재즈나 소울, 펑크(Funk) 에서 따온 샘플을 마디 통으로 따고 거기에 혼, 스트링, 피아노, 드럼에다 가끔 랩이나 스캣을 얹는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 트랙의 소스 운영 자체는 상당히 센스가 있습니다. 그렇게 소스를 다듬어서 전체 곡의 큰 느낌을 빚어 내고 나면, 곡들이 약간은 러프할지언정 전반적으로 꽤 따뜻한 느낌으로 다듬어져 있어요. luv sic pt.2나 aruarian dance 같은 것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게다가 battlecry 같은 곡을 들어보면 그가 재즈풍만 잘하는게 아니라 터프한 느낌도 잘 살릴 수 있는 역량이 있는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누자베스는 대단하다! 신이다! 라고 말하기엔 부족합니다.

왜냐면 가끔씩 날로 먹을려는 트랙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기복이 심한 편이고, 발전이나 연구도 잘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의 모든 정규와 비정규 앨범에는 앞에서 이야기한 '고전 샘플 프레이즈 잘라서 딴거 얹는 그 작법'이 대부분 들어가 있는데요. 새로운 시도나 발전은 없이 계속 자기복제를 한다는 이야기로도 들립니다. J Dilla 와 비교를 많이 하는데, 이 부분에서는 정말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있어요. 이 부분만 해도 이미 레전드 평가를 듣기엔 힘든 약점인데, 거기에 심지어 그 비슷한 작법에서도 곡마다 편차가 존재합니다. 누자베스의 트랙들은 그래도 다른 누자베스 아류 (=오카와리) 들의 자기복제에 비해선 그래도 나름 일관되고 맛깔스러운 편이긴 하지만, 어떤 곡들의 경우엔 가끔 샘플 위에 그 얹혀진 드럼이나 소스들이 조화롭지 못하거나 엉성한 경우가 있어요. 아무리 비싸고 맛있는 재료라고 해도 막 한 냄비에 다 넣어버리고 냅다 탕으로 끓여버리면 뭐하나요? 비정규앨범이야 뭐 그러려니 하겠는데 정규앨범에도 그런 곡들이 많아요. 전 luv sic pt.3를 듣고 이게 럽씩 시리즈가 맞나 했습니다. 1,2에 비해 너무너무 구렸거든요. 혼이랑 피아노랑 랩 모두 지 맘대로 따로 놀아요. pt.3 타이틀만 달았지 엉성하고 대충이에요. 같은 앨범에 실린 eclipse나 flowers, sea of cloud, light of the land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제목을 봐선 자연의 풍경을 소리로 표현하고자 의도한 것같은데, 솔직히 제목이 다 곡끼리 바뀌어도 저는 못 알아들을 것 같아요. 반면에, 같은 앨범에 실린 곡들인 feather나 music is mine같은 건 또 너무나 잘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modal soul] 앨범은 좋은 곡들은 가지고 있지만 좋은 앨범은 아닌거 같아요. 클래식은 어림도 없습니다. 편차가 심하니까요. 대충 만든 티가 아직 귀가 덜 열린 저한테도 나는데 오죽할까요. 왠지 몇 개 만들어 놨던거 대강 묶어서 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근데 극렬 누자베스 결사대들은 그걸 이야기해줘도 듣지를 않아요. 왜 그렇게 맹목적이고 편협된 충성심을 가지게 되었나 몰라요? 그런 과도한 빠심이 결국 반대급부로 작용하여 누자베스의 안티들을 만들어 낸게 아닐까 싶습니다.


까놓고 하는 말이라 좀 그렇지만 누자베스는 안티들이 그렇다고 통샘플 거품이라고 깔 수는 없는 뮤지션이긴 해요. 곡들간의 편차와 가끔 나오는 구린 소스 운영도 있지만, 누자베스는 정말 음악을 사랑했다는 점은 확실했으며 완성도 높은 트랙도 많이 남겼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2005년 즈음의 우리 젊은이들이 60년대 브라질리안 음악을 접해볼 기회가 있었을까요? 비록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재창조한 따스함은 아직 그의 트랙들에 군데군데 서려 있습니다.


#.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들어볼까요?

Nujabes - Aruarian dance

원곡) Laurindo Almeida - The Lamp Is Low



#. 사실 이글은 제가 예전에 페이스북 노트에 써놓은 글인데 살짝 다듬어서 브런치에도 올려봅니다. 다음에는 잠깐 이야기가 나온 그 끔찍한 단어 '재즈힙합'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로 여행, 음악 을 중심으로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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