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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강요다 Oct 19. 2015

코스모스

칼 세이건 / 학원사



내가 고등학교 때 가장 재미있었던 과목은 '지구과학'이었다. 그 때는 잠깐이지만 천문학자가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지금이야 천문학과는 100만 광년정도 떨어진 일을 하고 있지만 가끔은 내가 천문학자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황홀하다.


고등학교 때 지구과학이 재미있었던 것은 이 책 때문이었다. 

생각의 속도로나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저 먼곳에 있는 별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고나 있을까 할 정도의 먼 곳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이어주는 어떤 신비로운 힘에 의해 하나의 아름다운 나선을 만들고 있다는 것에 마음을 빼앗겼었다. 종교로나 설명이 가능할 법한 그 신비로운 힘들에서 어떤 규칙을 찾아내는 과학자들이 위대해 보였다. 그 당시의 나에게 우주는 한없이 거대했고 그 거대함에 도전하는 인간은 더 거대해 보였다.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을꺼다. 우주를 꿈꿀 수 있었다는 것은.

하지만, 지금의 고등학생들은 우주를 꿈꾸기보다는 안정된 직장을 꿈꾼다고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이런 꿈을 가지게 된 것은 지금의 사회가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꿈이 없는 사회.

그 때 우주를 꿈꾸고 있던 우리는 왜 이런 세상을 만들게 되었을까.

다시 아이들에게 꿈을 되찾아 줄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1980년대의 책에도 이런 총천연색 화보가 있었다.







아이들에게서 우주의 꿈을 빼앗은 지금의 사회를 생각하면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책이 떠오른다.



사진의 창백한 푸른 점은 우주로 떠난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다.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에서 사진에 대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 작은 무대이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던 역사 속의 수많은 정복자들이 보여준 피의 역사를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을 생각해 보라. 서로를 얼마나 자주 오해했는지, 서로를 죽이려고 얼마나 애를 써왔는지, 그 증오는 얼마나 깊었는지 모두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을 본다면 우리가 우주의 선택된 곳에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암흑 속 외로운 얼룩일 뿐이다. 이 광활한 어둠 속의 다른 어딘 가에 우리를 구해줄 무언가가 과연 있을까. 사진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까?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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