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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미루 Jan 11. 2023

[리뷰] [단막극] 보미의 방

#여성의 시각으로 말하다


2014, KBS 드라마 스페셜 <보미의 방>


 <보미의 방>은 어른스럽지만 아직은 어린 아이인 ‘보미’의 눈을 통해 ‘미성년 임신 및 출산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작가는 아이의 시선으로 무거운 주제를 따뜻하게, 감동적으로 표현했지만, 동시에 남성캐릭터들의 비중을 죽이는 것으로 여성이 아이를 혼자 키우며 감내해야 했던 어려움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표현하려 노력했다. 

 작품은 매몰찬 현실을 한 스푼 덜어 미화한 자리에 아이의 머릿속에서만 나올 수 있는 무모함과 당돌함을 채워넣었다. 특히 극 후반에는 교통사고로까지 이어지는 이야기의 시작이 ‘사생활을 보호받기 위해서 자신의 방을 가지고 싶다.’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발칙함까지도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보미’라는 캐릭터를 맡은 배우의 연기가 중요했을 작품인데, 이미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서 증명했다시피 다른 아역배우는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안서현 배우는 보미역을 찰떡같이 소화했다.     


 극의 주인공, 보미는 자신의 방을 가지기 위해서 언니를 시집보내겠다는 계획을 꾸미는 초등학생이다. 보미가 이런 발칙한 계획을 꾸민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바로 같이 방을 쓰는 친언니, 언주가 자꾸 보미의 일기장을 훔쳐보기 때문이다. 보미는 언주가 일기장을 본다는 증거를 잡기 위해 일기장 속에 은행나무 잎까지 끼워두지만 언주는 사과는커녕 시치미 떼기 바쁘다. 이 뿐만 아니라 맞지 않는 브래지어를 대보다가, 좋아하는 연예인 포스터에 말을 걸다가 들키는 일은 하루 빨리 언니와 방을 나눠야 할 가속제가 된다. 또래 친구로 나오는 '수철'과 비교했을 때 한참은 어른스럽고 똑부러지는 보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맘 때 아이들이 흔히 쓰는 방법인 '생떼'가 아닌 플랜을 세운다. 보미는 ‘1등을 할 시 창고 방을 수리해서 보미의 방으로 만들어 준다.’라는 계약서를 써 들이밀고, 그도 먹히지 않자 언주를 시집보내기 위해서 언니를 좋아하는 흥식을 언주만의 맞춤남편감으로 만들기 위해 트레이닝 시키기로 한다. 이런 보미의 어른스러움이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무엇보다도 ‘언주’의 정체를 알게 되는 장면이다. <평생을 언니인 줄 알았던 언주가 사실 학생 때 보미를 가져 미혼모로 저를 키운 엄마였다.> 이런 충격적인 출생의 비밀은 다 큰 성인도 뒷목 잡고 쓰러지는 연출이 허다하게 쓰이는데 보미는 태연하게 별 말 없이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막내 보미의 언니 시집보내기.’인 줄로만 알았던 <보미의 방>은 사실 ‘언니인 척 하고 사는 엄마 시집보내기.’였다. ‘미혼모’라는 소재는 흔한 소재는 아니지만 이 소재를 다룬다고 하면 대충 이야기의 틀이 어떨지 예상이 간다. ‘미혼모’ 소재를 다루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엄마가 얼마나 서글픈 인생을 살았고, 그걸 어떻게 이겨내면서 지금의 강인함을 얻었는지, 그럼에도 엄마가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순간은 언제인지를 몇 번에 걸쳐 조명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해결은 엄마도 한 명의 여자로 새로운 사랑을 이루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는 경우가 많다. 이 작품 같은 경우는 그 이야기의 전개를 언주의 눈이 아닌 보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이 특이점이긴 하나 전개로 따지면 큰 틀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럼에도 이야기 속에서 ‘남성 캐릭터’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성들은 이야기 속의 조연으로, 주연의 삶에 큰 영향을 줄 만한 선택은 좀처럼 하지 않고, 그들이 가진 배경에 대한 이야기도 크게 다뤄지지 않는다. <보미의 방>에서는 오직 ‘미혼모’인 여성과 그의 딸, 그의 엄마가 가진 생각과 그들이 겪어온 삶이 중심을 차지한다. 

 남성 캐릭터들의 비중을 미미할 정도로 대폭 줄였기 때문에, ‘대사’로 인한 설명이 다른 장면에 비해 불충분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들 또한 남성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발생한다. 특히 보미의 생물학적 아빠가 등장하는 부분이 그렇다. 작품은 ‘언주와 은호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언주의 노래와 함께 이어지는 과거 회상으로 대체한다. 회상 장면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언주와 은호가 육체적 관계를 나누기 직전의 상황뿐이다. 그러나 대사 없이도 장면을 곱씹어 보면 우리는 둘의 관계와 이 이야기의 전말을 알 수 있다. 보미가 은호를 찾아갔을 때 은호는 언주의 이름을 쉽사리 기억해내지 못했고, 언주가 임신 후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은호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걸 보면 두 사람의 관계는 일회성이었을 것이다. 일회성인 관계의 흔적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냈던 언주의 이야기는 길자와 언주의 나레이션과 함께 등장한다. 아이를 낳을지 말지 모든 걸 혼자 결정해야했던 언주였기에 사실 은호의 분량은 그 정도가 적절했다. 언주의 이야기에서 은호는 머릿속 한 시절에 대한 향수로는 남아있을지 모르겠으나 그의 삶의 어느 구석에서도 은호를 찾아볼 수 없다. 드라마<동백꽃 필 무렵>에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갑자기 애비랍시며 찾아온 강종렬이 감히 동백의 앞에서 함부로 아빠가 되면 안 되었듯이.

   

 아쉽게도 가족 드라마이기 때문에 <보미의 방>은 드라마보다 잔인한 현실은 많이 반영하지 못한 것 같다. 드라마를 제작한 2014년에 인접한 2015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실태조사에 따르면 미혼모의 월 평균 소득은 92만 3천원이었다. 이 마저도 근로소득 45만원에 복지급여 37만원을 합친 금액이다. 당시 기혼 여성의 월 평균 자녀양육비 지출액이 평균 65만원이었던 걸 생각하면 생활하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한 금액인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보미의 방>에서 언주는 엄마의 집에 산다는 이점이 어느 정도 작용하긴 하지만 사는데 특별히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시청자는 언주를 쉽게 ‘언니’라고 믿을 수 있었다. 나는 미디어에는 좋던 나쁘던 힘이 있고, 그 힘으로 작은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꼬집어야 할 현실은 사실적으로 반영해야 하고, 그것이 후에 복지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미혼모 언주 인생의 해결책은 결국 건설업 사장인 흥식에게 시집을 가는 것이었다. 왜 언주는 언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을까. 

 아이의 아빠인 흥식은 혼자서도 잘나가는 감독이 되어 방송에도 나오는데 엄마인 언주는 이름 모를 시골 동네에서 그 모습을 티비로 본다. 이런 장면은 사실 미디어에서나 현실에서나 흔하다. 몇 해 전 핫했던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한주도,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도 잘나가게 된 아이의 아빠를 방송으로 본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그 장면은 미혼모들이 진짜 세상이 아닌 작은 세상에서 아무도 몰래 홀로 눈물 훔치며 살아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 장면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저출생이 가장 큰 문제라며 결혼과 출산을 종용하는 사회에서 사실 미혼모는 혼자서라도 아이를 키우겠다는 결심을 한 가장 용감한 사람들인데 누구보다 박수 받아야 마땅한 게 아닐까. 아이를 낳지 않는 비혼, 비출산 여성을 이기적이라며 손가락질 하는 세상은 왜 미혼모에게마저 손가락질 할까. 둘이서도 힘든 일을 혼자서 해본다는 건데, 사회가 신성시하는 모성이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인 건데, 왜 미혼모들은 세상이 아닌 방구석으로 숨어야 했을까. 


 더불어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넣은 설정이겠지만 ‘언주는 아직 은호를 못 잊었다.’는 설정 또한 개인적으로 비현실적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설정 또한 앞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미혼모’를 주제로 다루는 수많은 드라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설정이다. 아이를 혼자 고단하게 키운 지 10년 가까이 되어가는 여성들이 너무 잘 살고 있는 상대를 TV를 통해 볼 때 느끼는 감정이 ‘그리움’, 과 ‘그 시절의 향수’라니. 아이가 다 자라고 나서 그 시절을 회상한다면 아름답게 그릴 수도 있겠지만 육아 10년 차, 아직 한창 전쟁 중일 시기에 느끼기에는 상황을 너무 미화시킨다는 느낌이 든다. 하루하루가 전쟁일 텐데 분노보다 그리움이 더 클까. 정말? 

 

 <보미의 방>은 2014년도에 방영한 작품이기 때문에 당시 사회에서는 문제 삼지 않았던 장면들이 지금에는 불편하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14년도에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보미는 나와 서너 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내가 자라던 시절에는 잘못을 하면 매를 맞는 게 당연했고, 또래 남자애들 사이에서 포르노가 유흥거리로 공공연하게 퍼지는 게 문제가 아니던 때였다. 그러나 여러 건의 아동학대 사건이 대서특필 되고, 각종 매체를 통해 훈육이란 이름으로 아이를 체벌해서는 안 된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퍼지고, 남아들이 너무 쉽게 접하는 포르노가 얼마나 여성혐오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인지가 뜨거운 감자로 수면 위에 떠오른 지금은 두 장면이 조금 불편하게 다가왔다. 당시에는 문제되지 않았을 일들이기 때문에 <보미의 방>은 아무런 죄가 없다. 그러나 한국의 미디어 콘텐츠 속에는 2021년인 지금도 ‘훈육’을 넘어 아이를 유괴하고, 폭행하고, 살인하는 장면들이 시청률을 위해 끊임없이 생산되고, ‘남아가 포르노를 보는 건 자연스럽고, 건강한 일.’이라는 발언 또한 대수롭지 않게 뱉어지고 있는 건 조금 씁쓸한 일이다. 


 감상과 함께 몰아쳤던 많은 의문과 질문, 불편함을 뒤로하고 작품의 총평을 내리자면 즐거웠다. 원래가 해리포터 시리즈,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페어런트 트립, 마틸다, 패딩턴 등 어린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들을 애정하기 때문도 큰 이유가 되겠지만, 보미와 언주의 케미를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보미와 같은 귀엽고 발칙한 아이의 시선으로 그린 세상을 만나고 싶다면, 기꺼이 이 단막극을 추천한다.


* <보미의 방>은 '시리즈온'에서 2,200원에 감상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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