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나는 내가 큰 그릇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리 큰 그릇은 아니라는 걸 성인이 되고 나서 알게 되었다. 나는 생각보다 많이 작았고,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나는 유연한 그릇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것을 담아도 유연하게 모습을 바꾸어 담도록. 근데 본래 타고난 성격이 정석적인걸 좋아하고, 융통성이 모자란 내가 그렇게 계속 살았는데 갑자기 유연 해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다시 생각했다. 그릇이 크지도 않고 유연하지도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분명 현재 내가 생각하는 내 그릇은 작고 융통성 없이 단단했지만, 그 안에 무언가를 담고 싶은 내 욕심은 터무니없이 컸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나는 잘 비워보기로 했다. 비운다고 하니 마치 명상가나 속세를 떠난 스님 같지만 그런 정도는 내겐 무리고, 열심히 내 속은 채우되 만약 현재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자존심이고 뭐고 오기 부리지 않고, 빠르게 인정하고 비워낸 다음 다시 새로운 걸 채워 넣자고 생각했다. 더 많은 피드백을 스스로에게 요구하게 되었다.
이것이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비워내는 과정 자체도 나에게는 꽤 큰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남길건 남기고 버릴 건 버려야 하는 현명함을 가져야 하지만, 욕심에 비해 가진 게 많지는 않아서 전부 꽉 쥔 채로 있고 싶어 하는 욕심이 큰 것인지? 아니면 채우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들을 비워낸 후에 찾아올 공허함을 감당할 용기가 없는 것인지? 는 잘 모르겠다. 아마 둘다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