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이 문장은 러시아의 대문호인 레프 톨스토이Lev Nikolayevitch Tolstoy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인데요. 워낙 유명한 문장이라 소설의 제목을 딴 법칙도 하나 만들어졌어요. 바로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입니다. 행복한 가정이 유지되려면 부부 간의 사랑이 유지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밖에도 경제력, 건강, 종교관, 교육관 등 여러 부분에서 대립이 없어야 한다는 거예요. 모든 조건이 탁월해야 한다거나, 부부의 의견이 100% 일치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이러한 조건들이 모두 일정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반대로 불행한 가정이 만들어지는 건 여러 조건 중 하나만 어긋나도 충분합니다. 구성원 중 한 명이 도박을 한다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거나, 큰 병에 걸리거나, 외도를 한다면? 그날로 가정이 파괴되거나 구성원 모두가 불행에 빠지게 되죠. 즉, 행복은 불행을 초래하는 수많은 요인을 모두 피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에 담긴 핵심 내용입니다.
성공의 세로축을 이야기한다더니 갑자기 웬 가정의 행복 타령이냐면, 사실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은 우리 일상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우선 학교에서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이유가 비슷합니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고,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기출문제 꼼꼼하게 풀어보고, 오답 노트를 잘 정리하는 식이죠. 반면, 공부 못 하는 친구들은 이유가 제각각입니다. 누구는 친구 때문에 못하고, 누구는 부모님 때문에 못하죠. 선생님이랑 사이가 안 좋은 경우도 있고, 난독증이나 ADHD와 같은 질병이 있어서 어려운 경우도 있어요. 그러니까 ‘공부 잘 하는 이유는 모두 비슷하고, 공부 못 하는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고 할 수 있죠.
큰 기업을 이긴 ‘작은’ 사업
때는 2010년, 세상에 2개의 앱이 출시되었습니다. ‘카카오톡’과 ‘마이피플’이라는 앱이었죠.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개념이 아니었어요. 당시 아이폰은 고작 1년 전인 2009년 9월에야 한국에 출시되었고, 2010년 말에도 스마트폰의 전체 보급률은 14% 정도에 불과했죠.
그런 상황에서 시장의 미래를 눈치 챈 기업들이 있었습니다. 신생 스타트업인 ‘아이위랩’ 그리고 국내 2위 포털 업체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이었죠. 두 기업 모두 PC 환경에서 모바일 환경으로 IT 시장의 판도가 바뀔 거라는 사실을 예측한 거예요. 두 회사는 재빠르게 준비를 거쳐 같은 종류의 앱을 냈습니다. 바로 앞서 말한 카카오톡과 마이피플이었죠.
카카오톡은 그해 3월에 출시되었고 마이피플은 2개월 뒤인 5월에 론칭했어요. 두 달 늦게 출시되었지만, 마이피플은 더 많은 장점이 있었습니다. 안드로이드와 iOS 버전을 둘 다 빠르게 지원했고요. PC에서도 쓸 수 있었습니다참고로 카카오톡은 2010년 8월에야 안드로이드 버전을 지원했고, PC 버전은 윈도우 기준 2013년 6월에야 론칭합니다.). 심지어 데이터를 이용한 무료 전화도 가능했어요. 규모가 큰 기업에 만들었다 보니 충분한 자금을 활용해 광고도 열심히 돌렸습니다. 당시 제일 잘 나가던 걸그룹 소녀시대를 모델로 출연시켰고요. “카카오는 말을 못 해.”라는 문구까지 써가며 경쟁사를 강력하게 견제했죠.
두 기업은 비슷한 시기, 비슷한 아이템으로 서비스를 냈습니다. 게다가 그중 한 곳은 당시 기준으로 국내 2위 포털 업체였죠. 다윗과 골리앗의 경쟁은 결과가 자명해 보였어요. 카카오톡은 사라지고, 마이피플이 살아남는 그런 구도 말이에요. 하지만 두 기업이 낸 서비스의 앞날은 사람들의 예상과 정반대였습니다. 카카오톡은 폭풍 성장했고, 마이피플은 흥행에 실패한 끝에 서비스를 종료했죠. 심지어 몇 년 뒤, 카카오로 이름을 바꾼 아이위랩은 마이피플 제작사인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하고 우회상장까지 성공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점이 달랐기에 카카오는 남들이 얻지 못한 엄청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걸까요?
신사업이 ‘성공’하는 2가지 조건 : 나(우리), 그리고 고객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을 ‘신사업 버전’으로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죠.
"사업이 성공하는 이유는 모두 비슷하고, 사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
이중 성공하는 신사업은 모두 다음의 2가지 조건을 충족합니다.
즉, 우리가 앞서 살펴본 성공의 공식, S=tp의 세로축을 충족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죠. 2가지 조건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게요.
첫 번째 조건,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고객의 진짜 문제를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원칙에 사업의 크고 작음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애플’은 쓰기 편하고 아름다운 스마트폰을 만들어 수익을 내고, ‘네이버’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쓰는 검색 포털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부가 사업을 확장했죠. 지금 제가 원고를 쓰기 위해 앉아 있는 의자를 만든 회사는 일상생활에 유용한 가구를 판매해서 돈을 벌고요. 모니터 아래에 놓인 명함을 제작한 충무로의 어느 인쇄소는 언제 어디서든 디자인 파일을 업로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최초로 시작해 수많은 디자이너들을 열광하게 했죠. 우리의 신사업도 마찬가지예요. 고객은 자신의 문제를 가장 적절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해 줄 때 지갑을 엽니다.
두 번째 조건인 “나 또는 우리가 잘 하고, 꼭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사업의 지속 가능성과 폭발력을 결정하는 요소입니다. 애플이 뜬금없이 만두 장사를 하면 어떨까요? 아니면 만둣가게 사장님이 스마트폰을 출시한다면?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실제로 신사업을 준비하는 분 중에는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그 시기에 유행하는 아이템을 그대로 사업화하려는 경우가 많아요. 음식에 재능이 전혀 없는데 대왕 카스테라 가게를 연다거나, 디저트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탕후루 가게를 여는 경우가 대표적이죠. 카페나 음식점뿐만이 아니에요. IT 분야에서도 요즘 잘 나간다는 서비스를 모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20년대 초, 거의 모든 외주 개발사가 최소 한 번 이상 ‘당근 같은’ 앱을 만들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사업은 절대로 만만한 과정이 아닙니다. 계획은 늘 틀어지고, 예상하지 못한 변수와 매일 마주하게 되죠. 이런 과정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그 일을 잘 하고, 또 좋아하지 않는다면 성공이라는 목적지에 가기도 전에 고꾸라지고 말 겁니다.
이 두 가지 요소 외에 상황에 따라 성공 조건이 하나 더 추가되기도 합니다. 바로 “경쟁자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조건이죠. 빠른 성장세로 해당 시장의 경쟁이 매우 치열하거나, 이미 절대적 우위를 차지한 경쟁자가 존재할 때 추가되는 조건입니다.
저희 동네에는 유명한 곱창전골집이 있어요. 그 주변으로 일종의 낙수효과를 얻어 보려는 전골집도 두 군데나 문을 열었는데요. 늘 원조집만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저는 남들이 좋다는 걸 곧이곧대로 못 믿는 성격이라 세 집 음식을 모두 먹어봤습니다. 다 먹고 난 뒤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당연히 ‘맛’이었죠. 원조집이 제일 맛있더라고요. 다른 집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말이죠. 그 결과, 다른 두 집 중 한 집은 얼마 전 문을 닫고 말았어요. 물론 남은 한 집도 여전히 파리만 날리고 있고요. 우리는 우리가 사업을 영위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합니다. 최고가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고객이 우리 제품을 선택할 ‘뛰어난 요소’ 하나 이상은 꼭 갖추고 있어야 하죠.
아이템이나 시장 상황, 팀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따라 중요도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위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이유가 외적인 요소인지, 내적인 요소인지 관계없이 말이죠. 좋은 아이템을 발굴했음에도 시장 상황이 받쳐 주지 않아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사업을 시작해 결국 중도 포기하기도 하죠. 이를 두고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의 저자 알베르토 사보이아(Albert Savoia)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성과나 결과는 대개 다수의 핵심 요소 간의 상호작용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성공적 결과를 얻으려면 모든 핵심 요인이 적합하거나 적합한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중략) 반면에 실패하려면 그 많은 핵심 요인 중에 딱 하나만 잘못되면 된다. 딱 하나만!
왜 카카오톡은 성공하고 마이피플은 실패했을까?
그러면 왜 카카오톡은 성공하고, 마이피플은 실패했을까요? 2010년,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메신저 앱에서 무엇을 원했을까요? 아마도 크게 2가지였을 거예요. 첫째, 피처폰 시대에 보편적으로 사용했던 문자메시지 기능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을 것. 둘째,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을 것.
카카오톡과 마이피플은 이 문제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해결했습니다. 무료로 쓸 수 있었고, 데이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사용 가능했죠. 하지만 딱 하나가 달랐어요. 바로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조건 말이죠. 두 달 먼저 세상에 나온 카카오톡은 경쟁 앱이 나오기 전 빠르게 사람들을 연결해 나갔습니다. iOS 버전 사용자를 대부분 선점했고, 그해 8월에는 안드로이드 버전을 출시하며 사용자를 더 빠르게 늘려 나갔죠.
한창 때는 하루에 10만 명 넘게 신규 가입자가 생겨났어요. 주변 사람 모두가 카카오톡을 쓰니 나도 카카오톡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네트워크 효과’가 발휘된 거예요. 그뿐만 아닙니다. IT 분야에 대한 이해도와 열정이 높은 사람들이 모여 서비스를 만들었고, 경쟁 앱들이 잘 신경 쓰지 않았던 기능 외적인 편의성도 높았죠.
반면 마이피플은 당시 카카오톡이 해결하지 못한 여러 문제를 해결해 주었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답장 없는 메신저 앱, 받는 사람 없는 무료 통화 기능은 고객이 원하는 문제 해결 방식이 아니었어요. 그 결과 서비스는 점점 더 외면받게 되었고 결국 실패했죠.
마이피플도 다음이 잘 하는 ‘IT 분야’ 아니었냐고요? 경쟁 앱인 카카오톡보다 뛰어난 점도 많지 않았냐고요? 물론 그렇죠. 그걸 부정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대답 대신 다시 한 번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신사업 버전을 되새겨 보면서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신간 <그로스 프로덕트(Growth Product)>에 담긴 내용을 일부 편집한 원고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