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번째 달리기 두번째 글
13번째 달리기. 서양에서 저주를 뜻하는 수만큼 달렸다. 달리는 거리를 조금씩 늘려 처음 시작할 때 4.5km였으나 오늘 7km를 넘었다. 6km 지점쯤 달렸을 때 오른 쪽 발목이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디 다친건 아니고 피로가 쌓였다고 해야 하나 아님 달리는 자세가 좋지 않아서일까. 신경을 써서 왼쪽에 힘을 주어 나머지 1km를 달렸다. 2주 연속으로 일주일에 여섯 번씩 뛰었으니 발목에 무리가 온다해도 이상하지 않다. 내일 한번 더 같은 거리를 달려보고 또 발목이 아프면 거리를 조금 조정해야겠다.
도봉구는 러너가 뛰기 좋은 동네다. 서, 북, 남쪽으로 중랑천과 실개천이 군데군데 뻗어 있어 제법 다양한 코스로 달릴 수 있다. 달리다보면 평소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과 마주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한번은 창동에서 방학동 방향으로 실개천을 끼고 달리다가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 작은 공원을 만났다. 그냥 사람들이 저녁먹고 나와 쉬기 좋을 적당한 크기의 공원이었는데 공원 안에 한 100m 정도 되는 '황토길'이 있었다. 처음에는 아직 다 포장되지 않은 길에 최근에 비가 많이 와서 흙길이 진흙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진흙길 위에 지붕이 있는걸 확인하고 이 길이 일부러 진흙을 보존하는 길임을 깨달았다 . 실제로 아이들 서넛이 진흙길에 다리가 쑥쑥 빠지는게 신기한지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놀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과 계속 달리고 싶은 마음이 서로 갈등하다 달리기로 결정했다. 멈칫했으나 레드벨벳이 계속 내 등을 밀었다. 나중에 아내와 함께 가서 우리도 진흙에 푹푹 빠지면서 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에이에 이에이에이 에이에 하고 뛰었다.
도봉구의 이런 정책들을 좋아한다. 환경과사람이 함께가는 정책들. 도봉구는 서울이라고 말하기 뭔가 애매하다. 행정구역상으로 서울에 속해 있기는 하나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에 있어 사람들에게 도봉구를 설명하려면 꼭 '의정부 가는 길에 있는 동네요' 하고 부연 설명을 해야 한다. 서울인데 서울 아닌 것 같은 느낌. 나와 아내는 그 느낌의 도봉구를 좋아한다. 수년전부터 이 지역 구청장인지 국회위원인지 계속 뭘 만들어서 외지 사람들을 끌어오려고 무리수를 던지는데 내 생각에는 이 환경을 잘만 가꾸면 머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서울 안의 힐링 마을 도봉구로 몰려 올 것이라 확신한다. 또한 도봉구의 자랑은 누가 뭐래도 북한산과 도봉산이다. 세계여행 할 때는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봉우리에 감탄하며 트래킹을 했는데 도봉산의 봉우리가 파타고니아의 그것보다 못하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왜 주말이면 어머님 아버님들이 관광버스 대절해서 도봉산역 앞에 운집하는지, 어머님들의 아웃도어는 왜 꼭 분홍아니면 주홍인지 여기 사는 사람은 대충 알 것 같기도 하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옷을 입는 이 산을 산 애호가들이 가만 놔둘 리 없다. 운 좋게도 우리 집에서 도봉산의 봉우리가 보이는데 특히 달리기를 시작하는 지점에서 보는 봉우리가 절경이다. 운동을 시작할 때 저 멀리 보이는 도봉산의 봉우리를 한 번 눈에 담으면 웬지 피구왕 통키가 되는 느낌이다. 도봉산에 꾸벅 인사 한번 올리고 오늘의 달리기를 힘차게 시작한다. 그런데 도봉산 봉우리도 사진을 안 찍어놨네...달리는 만큼 사진도 많이 찍어야겠구나.
제법 꾸준하게 달리고 있고 달릴 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서 참 좋다.
내일도 별 일 없으면 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