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달리기 첫번째 글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뭔가에 홀린듯이 달리고 난 뒤 6번을 더 달렸다. 그 책을 읽고 남긴 서평에 달리면서 생각한 이것저것을 적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조금 더 많이 달리기 위해서 나에게 리워드를 주는 방식을 써야겠다.' 였고 그 첫번째 리워드가 '5번을 연속으로 달리면 달리기 관련 매거진을 만들어서 글을 써야지' 였는데 나하고 한 그 약속을 지켰다. 오늘로 7번 달렸고 고로 이제 글을 쓰기로 했다. 그런데 이 매거진의 제목을 하루키의 책 그대로 갖다 쓰려고 했으나 그렇게까지 긴 제목을 허락하지 않는 브런치의 이상한 배려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까지 밖에 못 쓰게 됐다. 브런치의 정책이 맘에 안들기는 하지만 '하고 싶은'에서 끊는 것도 제법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베리에이션이 가능한 것 같은 크리에이티브가 느껴지는 제목.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욕> 이랄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그새끼>같은 그런 재미없는 농담도 가능하게.
글쓰기가 리워드라니. 사실 글도 꾸준히 쓰고 싶어 핑계를 댄 것이다. 글쓰기와 달리기가 서로 만나 시너지를 낸다. 달리기 위해 글을 쓰고 글을 쓰고 싶어 달리는 선순환을 기대해야지. 선순환이라니 뭔가 정부시책 같은 말이다. 아내는 달리는 나를 부러워하면서도 아직 함께 뛸 용기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늘 그렇듯 나는 부러 권하지 않는다. 대신 아내한테 러닝송 리스트를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아내는 신나서 작업하기 시작했다. 록키 OST부터 시작해서 스티비 원더와 ABBA같은 올드 팝을 넘어 블랙핑크의 휘뚜루마뚜루 뚜두뚜두와 레드벨벳의 파워업까지. 도저히 뛰지 않고는 못배길 리스트를 만들었다. 오늘 그녀가 만든 리스트를 들으며 처음 뛰어봤는데 '가장 나를 잘 달리게 하는 노래'는 레드벨벳의 Power up이었다. 바 바나나나 바 바 나나나나 하는 통통 튀는 리듬에 내 무릎도 같이 통통 튀다가 '이에이에 이에이에' 할 때 뭔가 나도 같이 따라 부르고 싶어졌다. 곧 죽을것 같은 콧구멍과 레드벨벳 노래에 흥분한 콧구멍이 하모니를 이뤄 절정에 다다르면 괴짜가족 같은 얼굴 표정이 생성되는데, 그 얼굴을 보고 반려견과 산책하며 지나가던 아주머니 한 분이 공포에 휩싸이는게 보인다. 저 그렇게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만.
달리는 내내 계속해서 정신승리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정신승리는 생각보다 중요한 것 같다. 특히 구직을 하는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이력서를 내 보지만 오지 않는 전화를 하루 종일 쳐다본다. 취업은 수능이나 토익과는 달라서 오답노트를 쓰기 어렵다. 왜 면접에 가지 못한건지. 내 자소서가 그렇게 엉망이었는지... 그럼 다음에는 좀 더 공들여 써 보리라. 내가 가진 기술이 형편없는지... 그럼 길게 보고 기술을 좀 더 연마해 보리라. 혹시 너무 늙어버린 내 나이 때문인지... 그럼 다시 태어나 보리라. 취업이든, 공모전이든, 정책사업이든 가장 효율적인 접근방식은 서류를 내면 일단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다음으로 접근해볼 회사를 알아봐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다. 자소서를 내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아 안됐구나' 여겨야 하는 시기가 온다. 떨어진 사람들까지 챙겨줄 정도로 서울 기업들의 리크루팅팀이 그렇게 한가하지는 않으니까. 아 안됐구나 여기고는 신발과 핸드폰을 챙겨 중랑천으로 나간다. 나는 또 한번 떨어졌지만 슬기, 아이린, 예린, 조이, 웬디가 나한테 힘을 준다. 오빠 힘내서 잘 뛰시라고. 쓰고 나니 너무 변태같다. 뛸 때는 '아 취업하면 이렇게 뛰는 것도 못하잖아. 다행이다.' 하고 정신승리를 한다. 이 정도면 병이야 병.
내일도 별 일 없으면 뛸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