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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느니 쓰지 Dec 05. 2018

유튜브, 혁신과 혁명 사이.

No.23 <유튜브 레볼루션>_로버트 킨슬, 마니 페이반


어쩌면 유튜브를 키운건 TV가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TV가 '관찰 예능'으로 가득찼다. 동상이몽, 슈퍼맨이 돌아왔다, 전지적 참견 시점 등등 채널 어디를 틀어도 비슷한 포맷과 비슷한 출연자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관찰이라고 쓰고 관음증이라고 읽는 프로그램들. 우리 집에는 TV가 없어서 가끔 엄마 집이나 처가를 가서야 TV를 보는데 나는 아직도 동상이몽과 미운 우리 새끼를 단번에 구분하지 못한다. 최소 5분은 봐야 신동엽이 나오는게 동상이몽이고 서장훈이 나오는게 미운 우리 새끼 구나 하고 판단한다. (맞나?)


유튜브의 인기 채널의 포맷이 관찰예능과 통하는 지점이 있다. 관찰예능의 핵심은 리얼리티인데 (그렇다고 방송사들은 '주장'하는데) 인기 있는 대부분의 유튜브의 핵심 또한 리얼리티다. 유튜브를 통해 먹방을 하든, 게임을 하든, 택배 언박싱을 하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고 사람들은 그 생생함에 반응한다. 개인적으로 유튜브의 컨텐츠들이 방송사의 그것들보다 훨씬 리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프로그램의 질로만 따지면 거대 방송사의 잘 짜여진 프로그램과 유튜버의 어설픈 영상들은 비교가 안된다. 그러나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 중 '타인을 훔쳐보는 컨셉'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그나마 경쟁이 되는 무대다. 마침 이 소재가 어디서나 인기여서 참 다행이다 방송이든, 뉴스든, cctv든. 그리고 유튜브는 유튜브 나름대로 무기가 있다.


유튜버의 무기

유튜버의 가장 큰 무기는 '방송심의위원회 심의규정'이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규정을 따르지 않으니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그딴걸 알 필요도 없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모든 컨텐츠는 한국의 실정법을 따르지 않고 오직 유튜브의 업로드 원칙만 따른다. 욕설, 폭력적 묘사, 야한 컨텐츠에서 확실히 방송사보다 훨씬 자유롭다(물론 유튜브도 폭력성과 음란성에 대한 규제가 있다). 'ㅈㄴ, ㅅㅂ, 존맛탱' 이 유튜버들이 가진 가장 큰 무기다. 사람은 누구나 도덕적이면서 동시에 음흉하다. 원색적인 표현에 눈은 인상을 쓰지만 가슴은 쿵쾅거린다. 미디어 산업에서 이 '규제되지 않음'의 힘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치트키다. 이 치트키가 거대방송사와 유튜버의 간극을 확 줄여준다. 물론 특정 유튜버들의 너무 간 표현은 독자들의 외면을 당할 것이나 크리에이터들은 영리하게 그 선 위에서 논다. 살짝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한국과 미국의 유튜브는 완전히 다른 플랫폼이다

<유튜브 레볼루션>이 미국에서 나온 책이다 보니 유튜브에 관련된 예시가 대부분 미국 것들 뿐이다(물론 강남스타일 얘기는 여러번 나옵니다). 저자의 예시를 보다보면 뭔가 괴리감이 느껴진다. 미국과 한국은 유튜브를 소비하는 방식이 굉장히 다르다. 미국 유튜브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이다. 성소수자들이 유튜브를 통해 커밍아웃을 하거나, 생태주의자들은 환경을 지키는 다양한 캠페인을 재미있는 영상으로 만들어 업로드한다. 몇몇 유튜버들은 함께 모여 동시에 방송을 시작해 '가장 많은 구독자들이 보는 방송'의 이름으로 기부하는 챌린지를 기획하기도 한다. 유색인종 차별정책에 대한 항의, 잘못된 정책에 대한 비판 모두 유튜브를 통해 방송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내 생각에 한국유튜브는 재미, 자극, 육아 대용 이 세가지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유튜버의 다른 이름이 크리에이터인데 유튜브를 보면서 진짜 크리에이티브 하다고 느껴진 적은 별로 없다. 하나의 포맷이 대박치면 뒤늦게 달려드는 후발주자들만 있을 뿐. 거기에 더해 현재 한국 유튜브 순위 상위권이 대부분 미디어사나 연예기획사에서 운영하는 채널들인데 이런 '이미 시스템화된 채널들'에서 과연 창조적인 컨텐츠를 기대할 수 있을까? 물론 "한국 유튜브 구려 미국 유튜브 쩔어"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건 아니다. 그냥 이건 문화이 차이다. 다만 다양성 측면에서 쪼끔 아쉬울 뿐.


유튜브, 혁명일까? 혁신일까?

<유튜브 레볼루션>이라는 책 제목에 대해 처음에는 그냥 과장된 의미로 '혁명'이라는 표현이 쓰였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기준에서 혁신과 혁명의 기준은 '사고방식의 변화' 라고 생각한다. 아이폰의 등장이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변화시켰지만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바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평소에 생각하던 결 그대로 진보한 테크놀로지를 소비할 뿐이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이제는 신분제도대로 살지 않아도 돼!' 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거대한 전환을 이끌어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내 맘대로 아이폰은 혁신, 프랑스 혁명은 혁명이라고 규정했다. 글쓰는 사람의 사고방식과 디자인 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은 너무 다르다. 그리고 이제 영상으로 표현하는게 자연스러운 세대가 왔다. 유튜브가 혁신인지 혁명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확실한건 나하고는 바닥부터 다르게 생각하는 세대와 나는 적어도 반세기는 더 같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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