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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느니 쓰지 Jan 06. 2019

어머님 90년생을 회사에 꼭 들이셔야 합니다

No.25<90년생이 온다>_임홍택

#제목에 관하여

책의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쿵쾅이들' 이라는 단어였다. 쿵쾅이들 이란 페미니즘을 혐오하는 -주로 남성들이- 만들어낸 단어인데 '대부분의 페미니즘 하는 여자들은 뚱뚱하고 못생겼다' 라는 가정하에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체중이 실린 걸음으로 '쿵쾅거려서 쿵쾅이들' 이라는 의미로 페미니스트들을 비꼬는 말이다. 초기에는 주로 페미니즘을 혐오하는 남성들에 의해 사용 되었으나 이제는 미러링되어 한남 쿵쾅, 김치녀 쿵쾅으로 확대됐다. 이 책의 제목에 전제된 타자화를 말하고 싶어 쿵쾅이들이 생각났던게 아니었을까? 90년생이 온다라는 제목에서 무언가가 '온다'는 것은 어떤 객체가 주체의 범위 안으로 '들어온다' 혹은 더 나아가서 '침범한다'는 말이다. 90년생들이 이제 '돈 버는 현장으로, 돈 쓰는 현장으로' 침범한다는 것이다. '돈쓰고 돈버는건 우리 기득권층의 것인데' 90년생들이 '우리' 나와바리로 들어온다니.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데 어쩌지? 하는 전제 속에 출발하는 책이라 생각했다. 역시 나놈 비비 꼬였네.


#9급 공무원 세대

"그러다보니 기업은 청년의 성장이나 미래의 이익을 따지기보다, 현재의 이익만을 따지게 되었다. 기업은 청년 세대의 고용보다는 본인들의 단기 이익에 도움이 되는 선택만 할 뿐이다. 기업은 늘 조급하다. 조금이라도 속도가 떨어지면 경쟁 기업에 뒤쳐지거나 따라잡힐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은 점차 참을성을 잃고, 이에 따라 일종의 자비심도 기대할 수 없다"(p.31)

90년대생들을 표현하는 말들 중 가장 흔히 쓰이는 말인 '9급 공무원 세대'. 힘들게 들어간 대기업은 사람을 부품같이 취급해 마르고 닳도록 굴린다. 그마저도 정직원 TO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계약직, 비정규직이다. 그나마 인간답게 살 수 있고, 공정한 방식으로 채용되는 9급 공무원에 몰리는 지금의 세대를 그 누가 비난하랴. 기업이 먼저 청년의 손을 놓았다. 그나마 의리있는 정부로 청년들은 달려가지만 과연 정부의 의리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정부는 5년에 한번씩 얼굴을 싹 바꿀 수 있다. 물론 모든 세대가 시대의 허들이 있었다. 전후세대, 민주화 세대, IMF 세대. 어떤 세대의 허들이 더 높았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는건 아니고 이들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설명 차원이다. 왜 그들이 간단함, 병맛, 솔직함을 추구하며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지를 알기 위한 매우 기초적인 단계. 왜 인지 알고 싶다면 책을 사서 읽읍시다.  


#꼰대포비아

나는(85년생) 지금 회사에서 인턴들과 일하고 있다. 오랜만에 연락온 내 친구가 어떻게 지내냐기에 90년대생들 5명이랑 일한다니까 바로 꼰대질 말라고 한다. 그에게 나는 "존재자체가 꼰대" 라고 카톡을 보냈다.


꼰대포비아라는 말이 실제로 쓰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내리는 '포비아'의 정의는 자기검열이다. '나는 절대꼰대가 되지 않을거야' 하는 강박. 실제로 그 누구도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 하나, 행동 하나에서 '혹시 이거 되게 꼰대적인가?' 자기검열을 한다. 회사에서 갖춰야할 예의에 대해 말하면, 선배한테 말할 때 써야할 단어들에 대해 말하면 어김없이 그들의 두 눈에 "꼰 대" 라고 써 있는 것 같아 아찔하다. 꼰대이고 싶지 않으나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이 조직이 개판이 될거 같아 말을 입 밖으로 내려는 순간 '아차! 꼰대질할 뻔했네' 속으로 삼키고 빙그레 웃지만 입 맛은 씁쓸한. 그러고서는 팀내 다른 선배랑 밥먹으면서 "요즘애들은 쯧쯧..." 하는 그런 정신분열증 같은 증후들을 내 사전에 꼰대포비아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이런 내 고통을 지인에게 토로했더니 "우리 그냥 꼰대가 되어버리자! 이렇게 괴로워할 바에야!" 하고 껄껄 거렸지만 다음날 또 입밖까지 나온 내 꼰성을 다시 삼킨다. 아 다행이다. 하마터면 꼰대가 될 뻔했잖아.


#90년생이 온다

늘 그렇듯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 책을 핑계로 내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은 사실 되게 좋은 책이다. 책이 타자화를 전제로 하든, 젊은이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든 한가지 확실한건 책 자체가 탁월하다는거다. 작가는 90년생들을 이해하기 위해 무려 6년 동안 취재를 하며 글을 고치고 고쳤다. 그가 성실하게 인용한 책과 자료들 하나하나에 꼰대이자 스카이캐슬 강예서급 질투력을 보유한 나는 '90년생을 되게 신화적으로도 써놨네' 하고 틱틱거렸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의 저자는 90년생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동정이 아닌 애정. 함부로 제단하지 않는.


"90년생은 불안해 보일지 몰라도 엄청난 가능성을 지닌 존재다."


내가 이해한 이 책의 주제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봐주지 마라.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 된다" 라는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의 말을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들은 지킬 것은 지켜야......(아 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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