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중에 연극과 뮤지컬 대본을 쓰는 극작가가 있다. 보통 내가 보는 연극, 뮤지컬의 80%는 그 친구 작품인데 지인이기도 하지만 제법 괜찮은 작품들을 쓰기에 항상 지지와 응원을 보내며 그의 작품을 즐겨 본다. 그런데 보통 내가 이 친구의 연극을 볼 때는 크게 2가지 상황이다. 이 친구가 초대권을 주거나 아니면 내가 직접 돈을 내서 보거나. 나는 자본주의적인 원칙을 하나 세웠다. “초대권을 줄 때는 감사한 마음으로 평가하지 않고 연극을 본다. 그러나 내 돈 주고 볼 땐 하고 싶은 말을 다한다.” 돈을 낸 만큼 말할 권리가 있다. 콘텐츠에 대한 나의 대원칙이다.
모든 콘텐츠에는 가격이 있다. 돈 내는 콘텐츠에만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내 대명제에 꼭 동의하시라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공짜로 소비재를 이용하면서 덧말까지 붙이는 건 과하지 않나 싶다. 비약일 수 있겠지만 내가 선의로 사정이 좀 어려운 친구한테 밥을 한 번 샀는데 이 친구가 나한테 “난 스테이크가 먹고 싶은데 왜 넌 순댓국을 사줬니?”라고 말한다면 뭔가 그 친구가 파렴치하게 느껴지지 않나? 우리가 너무나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공짜 뉴스가 사실은 가격이 있는 콘텐츠’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에둘러 돌아왔다.
욕하기 전에...혹시 돈 내셨나요?
"우리가 광고 보는 게 다 돈 내는 거잖아?"
뉴스에는 가격이 있는데 우리는 광고를 보는 형태로 지불을 대신했다. 특히 디지털 뉴스는 종이 신문처럼 ‘구독’ 같은 형태로 독자들이 직접 지불하기보다 광고를 보는 것을 선택했으니 (선택보다는 그렇게 습관이 들여졌으니) 뉴스 제작자들이 뉴스를 광고주 입맛에 맞게 만드는 것은 일정 부분 당연하지 않을까? 물론 광고주가 파는 물건은 또 독자가 사게 되니까 독자를 아예 배제한 뉴스를 생산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일본 불매운동이 한참이던 시기에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조선일보 광고주 제품을 불매하자는 운동이 있었던 것도 이러한 언론 생태를 독자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벌인 운동이다.
더구나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뉴스 구독에 있어 포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특이한 상황은 뉴스 유통구조를 더 희한하게 변질시켰다. 구글에선 첫 화면에 검색어나 뉴스를 노출시키지 않는다. 뉴스도 우리나라 포털 같이 인링크(뉴스 링크를 해당 언론사 페이지가 아닌 포털 페이지로 연결시키는 것) 시키지도 않는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사실 중에 하나인데 많은 언론사들이 포털에 뉴스를 보내면 포털로부터 돈을 받는다. 다른 나라와 달리 이 나라 언론은 눈치 볼 곳이 또 하나 늘었다. '포털'이라는 괴물. 포털에 익숙한 우리나라의 상황은 디지털 뉴스 유료화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최경영 KBS 기자 페북
'공짜 뉴스를 없애야 하는 EU'
이렇듯 뉴스 생산자와 독자의 관계가 복잡하게 꼬일수록 언론은 저널리즘 본연의 가치를 실현하기 어려워진다. 광고주의 눈치를 보다 보니 기업 비판적인 기사 쓰기 어렵고, 포털의 트래픽에 목매다 보니 자극적인 제목이 넘쳐난다. <공짜 뉴스는 없다>에서 주장하는 바도 결국 ‘뉴스 유료화를 통해 저널리즘 가치를 지켜내자’는 말이다. 기레기라고 욕만 할 게 아니라 기레기가 기레기일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알고 좀 바꿔보자는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기레기들이 쓰는 저급한 뉴스를 돈까지 내고 보라고?” 하는 반응이 예상된다. 충분히 인정하고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기레기 논란은 뉴스 품질에 대한 지적이지, 디지털 유료화 자체에 대한 거부의 논거로 사용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뉴스가 유료화된다면 시장 논리에 따라 가치 있는 뉴스에 정당한 원고료가 지급되고 쓰레기 같은 기사들이 정리되는 상황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공짜 뉴스는 없다>는 한겨레신문의 권태호 기자가 뉴스통신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쓴 책이다. 단순히 뉴스를 소비재로써 접근하는 것을 넘어 ‘저널리즘을 다시 독자에게 돌려주자’라는 주장이다. 주인이 되고 싶다면 돈을 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매우 단순한 이야기다. 책은 매우 충실하게 작성됐다. 디지털 유료화를 통해 저널리즘 원칙을 지켜낸 해외 사례, 대부분 실패의 역사지만 우리나라 매체들이 어떻게 디지털 뉴스 유료화를 실험해 왔는지 추적했다. 또한 기존 언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뉴스 콘텐츠 유료화에 뛰어든 퍼블리, 뉴닉, 닷페이스 같은 새로운 큐레이션 미디어 기업의 미래를 예측하기도 했다. (나는 이 부분이 특별히 좋았다)
밀레니얼 대상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뉴닉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 서비스 퍼블리
'돈을 낸 사람이 주인이다'
책을 읽은 후 내린 결론은 “결국 디지털 뉴스 유료화 시대는 온다 “였다. 불법 영상 콘텐츠가 판을 치는 이 나라 상황에서도 넷플릭스는 결국 안정적으로 안착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콘텐츠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 이전 세대보다 더 자연스럽다’는 설문 결과들도 뉴스 유료화에 희망을 보게 한다. ‘좋은 콘텐츠가 먼저냐, 유료화가 먼저냐’ 하는 논쟁도 남아있지만 결국 좋은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열망이 ‘뉴스 유료화’라는 새 시대를 열지 않을까? 돈 내고 뉴스를 보자. 판이 바뀔 것이다. 품질로 승부하지 않고 꼼수를 부리는 몇몇 기레기들을 돈으로 망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