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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차 Apr 22. 2020

퇴사 1년 후, 내가 유튜버라니?

끝내는 용기, 시작하는 용기

어느덧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가 5000명을 넘었다. 올해 1월만 해도 200명 남짓이었던 구독자 수가 석 달 만에 이렇게 증가하다니, 정말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구독자 5000명을 갓 넘긴 시점에서 생각해보니 퇴사한 지 1년이 지났다. 2019년 4월 1일부로 백수가 됐으니 말이다. 당시 회사를 나오며 가장 바랐던 점은 '부디 이직하지 않는 것'이었다. 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나로서 생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속감을 잃은 데서 오는 고립감, 어서 자립해야 한다는 초조함. 1년 동안 나는 벗어나기와 홀로서기를 동시에 진행했다. 스포츠나 게임이 아니고서야 우리 대부분이 겪어내야 하는 끝과 시작에는 선명한 지점이 없다. 끝까지 미련을 붙들고 또 시작에 엉거주춤거리며 그 사이에서 지난하게도 진통하고 성장한다.



#끝내는 용기


8년차 직장인으로서 나름 열심히 일하는 편이었지만, 한켠에는 늘 딴 생각을 달고 살았다. 글도 쓰고 싶고, 유튜브도 하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그릇도 만들고 싶었다. 종종 끄적였고, 실제로 그릇을 만들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서 판매도 해봤다. 조금 더 전진해볼 법도 했는데 늘 중간에 멈췄다. 진짜로 행동하고 나설 용기는 접어둔 채 '회사 때문'이라고 책임을 떠넘기는 게 조금 더 쉬웠다.


당연히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책임을 전가할 대상이 사라져버리면 어떡하냔 말이다. 허울뿐인 실제에 마주쳐 현타를 맞기보다는 그저 남들보다 꿈 있는 직장인인 척하며 자기위로하는 쪽이 속 편했다. 회사 상황이야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나 나를 둘러싼 여건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에서 비보인지 낭보인지 모를 소식이 날아들어왔다.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내가 늘 바랐던 '언젠가'라는 시점이 오아시스처럼 있기나 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물론 말 그대로 희망자에 한한 퇴직이었으나, '퇴사'라는 주제어 자체가 내 삶에서 이렇게 빠르게 오르내릴 줄이야. 처음엔 희망퇴직을 신청할 생각이 1%도 없었는데, 점차 이런 고민을 하게 됐다. 내 앞에 놓인 두 개의 갈림길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A) 30대 중반의 나이에, 기혼에, 직장 경력 8년차면, 커리어에 가장 박차를 가할 때가 아닌가?
B) 30대 중반의 나이에, 기혼에, 직장 경력 8년차면, 직장인의 한계점이 빤하지 않는가?


A와 B라는 정 반대의 선택지를 두고 머리가 갈라지도록 고민했다. 내 평생 처음으로 용하다는 사주집까지 예약하기에 이르렀는데, 너무 유명한 나머지 도움이 안 됐다. 한 달 뒤에나 예약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긴 고민 끝에 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백수가 된 첫 날 사주를 봤다.


퇴사를 결정한 이유는 '언젠가'란 오지 않는다는 진실을 마주하기로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회사 탓이 아니라 내 탓이었다.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해 있으면서도 주저앉아만 있다면 나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이보다 더 끔찍한 건 그 어떤 시작도 모른 채 살아가리라는 것이었다. 그래, 어디 한번 용기있게 끝내보자!


위로금이 있었기에 당장의 생활비 걱정은 덜 수 있었는데, 딱 1년만 마음껏 삽질하고 모험하자며 스스로에게 시한부 기회를 주기로 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이렇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이 시간을 귀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렇게 인생에 예기치 못한 파도가 친다면, 한 번쯤은 올라 타봐도 되지 않을까? 방향타만 내가 단단히 쥐고 있다면 말이다.



#시작하는 용기


어떻게 하면 이직이 아닌 자립을 할 수 있을까? 몸은 쉬고 있어도 마음 속 짐은 한보따리였다. 1년 뒤 또 다시 채용 사이트를 뒤적거리는 상상만 하면 낮잠 한 숨 자려다가도 벌떡 일어나졌다.


브런치 작가가 되는 일은 못해도 3~4년 전부터 계획했던 일이었는데, 막상 마음을 먹으니 3일 만에 해결됐다. 몇 달째 채널명만 고민했던 유튜브에도 에라 모르겠다며 영상을 올렸다. 개인사업자를 내고 비즈니스하는 법도 배우기 시작했다. 듣고 싶었던 강의들도 틈틈이 듣고, 15년째 숙원사업이었던 운전면허증도 손에 넣었다. 모든 게 서툴렀지만 몹시 흥분됐다. 하지만 작년 연말까지도 심지어 가족에게조차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모든 건 진행 중이었고, 조심스러웠고, 성과라기엔 내 만족뿐이었다. 그저 '시작'했다는 용기 하나만이 위안이었다.


그러다 지난 1월. 유튜브에 올렸던 한 영상의 조회수가 급증했다. 소위 말하는 '떡상'이었다. 연말까지만 해도 '내게 일어날까?'했던 일들이 석 달 사이에 마구 벌어졌다. 지금 생각해도 얼떨떨한 일이다. 많은 곳에서 광고와 협업 제안이 왔고, 수 년째 왕래가 끊겼던 친구들로부터, 전 직장 동료들로부터 유튜브를 봤다는 연락을 받았다. 소박하지만 온전히 내 힘으로 번 수입이 생겼고,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보다 명확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석 달 동안 너무도 즐겁게 전진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는데,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아래 세 가지를 절실하게 체감했다.


1. 진정한 동기부여는 오로지 내가 만든 성과에서 비롯된다.
2. 그 성과는 크든 작든, 내게 의미가 있다면 충분하다.
3. 그렇기에 절대로 작은 성과를 무시해선 안 된다.


이 세 가지로 인해 앞으로의 내 인생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이토록 강력하게 태도와 행동을 변화시킨 체험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분명히 이룰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작은 성과를 반복해서 얻는 것은 무엇보다 효과적인 동기부여가 된다. 이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가장 지속가능한 훈련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첫 단추는, 무엇이든 시작하는 용기가 아닐까.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우연히 생긴 일은 아니다.'
- 크리스 사카 Chris Sacca -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영상 하나가 떡상한 덕에 여태 채용사이트 안 뒤지고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 문장을 읽고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모든 건 내가 그동안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해 온 결과였다. 그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기까지 나는 수 년간 삽질을 했고, 나에 대해서 내 취향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렇기에 이 성취는 결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발생했을 '필연적인 행운'이었던 것이다.




무언가를 끝낼 때, 무엇이든 시작할 때, 나는 어쩐지 허공에 발을 딛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붙잡을 것 하나 없는 듯한 두려움이다. 하지만 겨우 용기를 내어 발을 디디면 언제나 발 밑에는 '투명한 디딤돌'이 있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꽤 차이가 있는데, 아마도 이 투명한 디딤돌을 밟으며 뚜벅뚜벅 걸어나온 만큼이 아닐까. 그 디딤돌은 간혹 끝이었고 또 시작이었다.


구독자가 5000명이라지만 아직 갈 길이 구만리다. 지금도 나는 퇴사 중이고 자립 중이다. 우리는 늘 계속해서 끝내고 계속해서 시작하며, 그 사이에서 진통하고 성장한다. 

다만 보탤 수 있다면, 조금 더 용기를 내어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포자기한 채 살아간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


*이 스토리를 올렸던 유튜브 영상을 덧붙인다 :)

https://www.youtube.com/watch?v=poAcnrzvs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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