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제주살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룩쥔장 May 09. 2023

돔베낭골에서 걷는 올레7코스

제주산책


제주에 살며 가장 친한 벗이자 동반자, 남편과의 대화를 기록해봅니다.

우리의 대화는 주로 가게가 쉬는 화요일,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일찌감치 나서는 드라이브와 나들이를 배경으로 합니다.

(나=나, 너=남편)




너: 오늘은 어디로 돌아볼까?

나: 당신이 원하는 대로. 어디로 가고 싶은데?

너: 우리 동쪽은 많이 갔으니까 오늘은 서귀포로 가 보자. 지난번 당신이 링크 보내준 기사에 나온 곳 찾아봐.

나: 잠깐만. 올레 7코스래. 대륜동인데?

너: 네비야, '돔베낭골'

(네비: 네, 이곳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나: 와. 여기 차박하기 좋네. 화장실도 가깝고 전망도 좋은데?

너: 그러네. 저기 올레코스 안내길있다. 따라 가보자.

나: 여보, 여기 정말 너무 멋지다. 바로 옆에 바다좀 봐. 물소리 들리는것도. 바다 옆인데 계곡물 소리가 나.

너: 와. 진짜 멋지네. 저기 바다에 섬 보인다. 길도 너무 예쁘고 바다색깔 좀 봐. 끝내주네.

나: 우리 제주에서 산지 10년 다 되어 가는데 이 길을 이제 처음 걸어보네.

너: 그니까. 맨날 차로만 다니니까 그렇지. 이렇게 걸어다니는게 정말 좋더라구. 올레길 참 매력있더라. 자주 걷자.

나: 그러자. 여보 여긴 진짜 외국인데? 제주시랑 서귀포시 차이가 정말 크지?

너: 그러게. 외국나갈 필요 없다니까. 사람들이 많이 몰라서 그렇지. 외국이 따로 없다.




나: 여보, 여기 외돌개였구나?

너: 그러네. 외돌개 코스였구나. 반대로 도니까 잘 몰랐네. 여기 정말 너무 멋지다.

나: 저기 절벽좀 봐. 장관이다.

너: 황우지 해변이 여기서 가까울 텐데? 황우지까지 가보자.




나: 좀 전에 봤어? 산책하는 노부부가 많이 보이네. 다들 여유있어 보이고 아직 짱짱하시네.

너: 확실히 여유가 있어보여. 티가 확 나네.

나: 다들 관절들도 좋으셔. 나도 이 계단은 힘들구만. 요즘은 나이든 분들이 더 짱짱한듯.

너: 힘 있으니까 여행도 다니는 거지.



나: 수학여행 온 학생들인가봐. 사복 입으니까 학생인지 아가씬지 모르겠다.

너: 요즘은 다들 빨리 성숙해서 얘들이 구분이 안가.

나: 오히려 대학생들이 화장이나 옷차림이 수수한 거 같기도 하더라.

너: 교복만 입다 여행오니 사복을 얼마나 입고 싶겠어.

나: 우리 집에도 조만간 수학여행갈 얘 있잖아. 옷 값까지 비용만 해도 부모 허리가 휜다더라. 에고.

너: 어쩌겠어. 얘들은 그게 또 추억인데.

나: 좀 전에 지나가는 얘덜 하는 말 들었지? 욕 없으면 대화 자체가 아예 안되는 걸까?

너: 난 요즘 애들 하는 말의 반도 못 알아듣겠다.

나: 혼자 있을땐 저렇게 쎄게 말하지도 못할 껄? 사람이란 단체로 있을땐 없던 힘도 나는 거 같애.

너: 그래도 애들은 애들이네. 귀엽다.



나: 당신은 수학여행 어디로 갔었어?

너: 우리는 강원도 속초. 가자마자 술먹고 정신 차려보니 2박 3일 지나 집이더라고.

나: 미치겠다. 기억나는게 없어? 난 경주로 갔었는데?

너: 서울에선 경주로 많이 왔지. 난 경상도니까 강원도로 간 거고.

나: 난 다 기억나는데.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보러가는 길이 참 길어서 다리 아프고 덥고 힘들었어.

너: 넌 참 기억도 잘한다.


나: 그런데 수학여행은 꼭 가야할까? 당신 생각은 어때? 좋은 기억이었어?

너: 술먹은 거 밖에 기억나는게 없다니까. 그냥 다 그런거지. 뭐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거.

나: 굳이 부모 허리 휘면서 수학여행을 가야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너: 나쁘지 않다면 가는게 낫지 않을까? 당시엔 그게 좋았던 거였을 꺼야. 그때 뭘 알겠어?

나: 그런가? 하긴 사진 속에선 좋아보이긴 했네.

너: 그때나 지금이나 뭐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거 같다. 세월이 변했어도.




나: 모처럼 오늘 많이 걸었다. 배고파

너: 나도 배고프다. 다리도 아프고. 우리 5km 정도 걸었을 껄?

나: 그것밖에 안돼? 6km는 되지 않을까?

너: 자꾸 거리를 늘려? 그건 그냥 당신 기분 탓일 수도 있어. 거리는 생각만큼 길지 않았을꺼야.

나: 그런가? 우리 맛있는거 먹자. 지금 먹으면 엄청 맛있을거 같애

너: 초밥 먹자.

나: 신난다. 빨랑 가자.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에 사는 모든 이들이 부러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