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자영업하기
오래만에 인사드립니다.
제주에서 여전히 자영업을 하고 있지만, 관광객을 대상으로 했던 지난 3년간의 바닷가 매장을 떠난 이후로 저희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기존 고객의 99%가 관광객이었다면 지금은 반대로 99%가 도민 대상이 되었으며,
바닷가 작디 작은 창고를 주방으로 사용했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운동장만큼이나 넓게 느껴지는 큰 주방과 홀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과,
고객 한명, 한명을 불러들이기 위한 매일의 작은 몸부림(소소한 소식들을 전했던 sns 활동과 마케팅 고민등)과는 다른 입점사의 규제와 규칙에 충실하려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큼지막한 변화는 그토록 오랫동안 꿈에 그려왔던 '주3일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마장 자체가 금,토,일만 경기가 열리기에 속해 있는 업장들도 그에 맞춰 영업을 할수 밖에 없기 떄문인데 초기 입점 제의를 받았을 때는 조금 망설였습니다. 본 매장이 따로 있으면서 분점식으로 여는 게 아니었기에 마침 기존 매장의 계약기간이 다 되어 새로 매장을 얻어야 하는 상황으로 매장을 이중으로 오픈한다는 건 경제적으로나 인력적으로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경마장점을 먼저 오픈하고 어느 정도 안정된 후에 다른 매장을 여는 것으로 하고 지난 6월 경마장에 입점을 하였습니다.
6월부터 10월까지 지난 4개월 동안 느낀 점은 참 많습니다.
첫번째는 '제주에도 특수상권이 있구나' 였습니다.
지난 10년간의 요식업 경험에서 저와 남편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왔습니다. 일반 로드 매장뿐 아니라 특수상권이라 불리는 곳도 많이 다녔었지요. 백화점, 마트, 몰, 공원, 지하철까지 다양한 상권에서 매장을 열고 닫고 팔아봤습니다.
상권은 참으로 다양하여 우리의 의도와는 달리 장소를 이용하는 이용객들의 특성은 저마다 달랐습니다. 사람을 직업으로 평가할수 없고, 사는 동네로 평가할순 없지만 적어도 그곳을 이용하는 이들의 특징들은 장소마다 분명하더군요.
그야말로 '특수한 상권'이 존재하는 곳이었습니다. 장단점이 극명하여 사실 어디가 좋다라고 말할수는 없겠지만 저희같이 남 간섭을 싫어하는 사람 입장에선 로드매장이 심정적으로 편하긴 했습니다.
그런 저희가 지금은 제주에서 특수상권에 입점해 있습니다.
백화점도 없고, 지하철도 없는 이곳 제주에서 말이죠. 그리고 그곳이 경마를 하는 경마장이란 건 사실 지금도 몹시 신기하게만 여겨집니다.
오랜 제주살이 중인 육지 지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현지 도민들도 경마장 안에 이런 특수상권이 형성되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경마가 범대중적인 오락거리나 스포츠는 아니니까요.
지난 4개월동안 저희가 맞은 고객들 대부분은 경마가 열리는 날이면 거의 출퇴근 도장을 찍듯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 게임에 빠짐없이 베팅하는 엄청난 충성고객들이었습니다. 결혼전 남편과 데이트할때 몇번 가봤던 과천 경마장 이후 처음 경마장에 발을 들인 저로선 참 흥미로운 광경이긴 했습니다.
매 게임마다 베팅을 한다는 건, 엄청난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돈이 걸린 만큼 아무 경주말이나 찍을 순 없으니까요. 충성고객들은 마치 수능을 앞둔 학생들이 참고서를 끼고 다니며 공부하듯 정보지를 끼고 다니며 사인펜으로 줄을 치고 꼼꼼히 메모를 하며 모니터를 예의 주시했습니다. 말들이 결승전을 향해 질주하는 순간엔 마치 시위대의 함성처럼 고함소리가 커졌구요. 격려와 함성 속엔 욕설과 저주 또한 난무했습니다.
승부가 갈리고 돈이 오가는 이런 곳에서도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한끼를 해결할 식당을 찾습니다.
점심시간을 허용하는 잠깐의 경기 간주 타임이 되면 우루루 몰려드는 고객들을 맞이하는 것, 그것이 지금 현재 저희의 임무입니다.
그 어느 바쁜 직장인보다 더 바쁜 그들을 위해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내어줄 때는 그런 혼돈도 옵니다.
'이곳은 학교 급식실인가?, 식당인가?'
길어야 한 시간, 그 점심시간 동안은 시장바닥을 연상케 할만큼 식당 입구에 대기줄이 서고 음식을 기다리는 이들의 눈빛이 초조합니다. '한 그릇의 정성'을 담아내기엔 기다리는 이들의 인내심이 짧습니다. 그들에겐 정성어린 음식보단 허기짐을 달랠 정도의 빠른 음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고객이 오면 주문을 받고 조리를 시작하고 서빙을 하고 다 먹은 그릇을 치우고 평가를 받던 시스템에 익숙했던 저로서는 지난 4개월동안의 이런 변화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그 누구보다 적응만큼은 빠르다고 자부했던 저와 남편이었지만 이번에는 적응하는 과정이 꽤나 오래 걸렸습니다. 운동장만큼이나 넓어진 주방을 오가는 동선과 종잡을 수 없는 고객들의 성향, 주3일이라는 영업시간, 육지인이 아닌 도민의 입맛등 많은 변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3일이라 해도 영업일만 그렇지, 그 3일을 위한 준비과정이 만만치 않습니다.
주 5일은 경마장으로 출근하여 재료준비와 청소를 하며 본격적인 3일의 영업일에는 한주 내내 영업하는 것 못지 않은 정도의 노동의 강도로 일을 합니다. 실질적으로 온전한 쉼은 기존처럼 한주에 하루나 이틀정도인 것 같네요.
그럼에도 다행으로 생각하고 감사하게 여기는 건, 요즘같은 불경기에 고정적으로 찾아주시는 고객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제주의 소상공인들은 엄청난 어려움이 처해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로 해외로 나간 관광객들과 그로 인한 비행기 값의 인상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업종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수학여행이나 단체 관광들이 재개되면서 덩어리가 큰 호텔이나 식당등은 붐비고 있지만, 사실 저희같은 소상공인들은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에 개별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할수 밖에 없습니다. 가장 기본 문턱이라 할수 있는 교통비가 비싸졌단 건 어찌하든 답이 없는 겁니다. 이게 제주살이의 한계인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참 생각이 많아집니다.
제주는 가만히 있는데 잊을 만하면 도배되는 언론들의 제주에 대한 안좋은 기사들을 볼때면 제주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이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사실, 어느 관광지나 마찬가지듯 물가가 비싸고 바가지 상술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본 제주는 오랜 대표 관광지답게 선택의 기회가 많은 곳입니다.
비싼 곳이 있으면 싼 곳이 있고, 인테리어의 취향을 반영하여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으며, 다양한 음식문화와 체험활동을 누릴수 있으며 숙박지 또한 그 선택의 폭이 넓습니다.
그럼에도 가끔 육지에서 오랜만에 온 지인들을 안내하며 원하는 곳을 물으면, 이런 요구들을 합니다.
"바다가 쫙 보이고 맛있으면서 잘 알려진 근사한 곳.
TV보면 좋은데도 많더만 그런 유명한 데는 가줘야 제주 갔다 왔다하지."
바다뷰에 고급 요리 나오고 언론 많이 탄 곳은 제주도 아니라 어디라도 비쌉니다. 헉.
제주 소상공인님들 힘내시고 화이팅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