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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책방 Sep 24. 2021

그대로다, 너.


5년 만에 만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옛날 그대로다, 너.”

어릴 때부터 같이 교회에 다니며 본 사이지만 각자 결혼하면서부터 못 보다가 만났다. 그 사이 나는 가슴까지 오는 긴 머리에 파마도 했다가 탈색, 염색도 했다가 숏컷으로 잘라서 외적 변화가 컸는데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나보고 그대로라고 한다.


최근에 알고 지낸 친구에게 우연한 기회에 네 살 때 사진을 보여주었다.

“오, 지금 얼굴이 있어. 신기해.”

손바닥을 마주치면서 웃고 있는 3등신의 아이 얼굴에 지금의 내 얼굴이 있다니. 내 눈에는 그 아이와 지금의 나는 많이 변해있는 것 같은데, 친구의 눈에는 그 아이와 나의 닮은 점이 더 잘 보이나 보다.


핸드폰 파일 정리를 위해 지울만한 사진이 뭐가 있나 살펴보던 중에 face app으로 나의 얼굴의 노화를 연도별로 추측해서 만든 영상이 있었다. 70이 넘어가자, 내가 어릴 때 본 할머니의 얼굴이 내 노년의 얼굴에 있었다. (외조부모님과 할아버지는 뵌 적이 없어 모르겠다.) 어릴 때 할머니와 자주 싸웠던 것 같다. 엄마가 있으면 할머니와 나는 서로 잘못한 것에 대해 이르기 바빴다. 할머니는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집에서 돌아가셨다. 내 얼굴에서 할머니의 얼굴을 발견한 뒤로, 할머니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함께 해서 그런지, 인간의 삶이란 참 쓸쓸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면, 몸이 떨린다.


임그림 작가 <산책>

나는 내가 어떤 점에서 변했는지 몇 가지 안다. 그리고 어떤 점은 유지하고 있는지 몇 가지 안다. 혼자 뭔가를 하는 건 익숙하지만, 예전처럼 사람을 피하진 않는다. 여전히 불안을 잘 느끼지만, 이제는 내 불안에 대해 관대해서 그런지, 강박 행동으로까지 이어지진 않는다. 불안할 수도 있지, 뭐. 집중하면 오른쪽으로 혀를 씹는 버릇은 예전에 비해선 빈도수가 줄었지만, 그래도 무방비할 때 나와버린다. 신랑은 “뭘 그렇게 골똘히 혼자 맛있는 걸 먹는 거지?”라고 말한다. 이 버릇은 진짜 여든까지 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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